세상의 모든 여인을 유혹할 수 있지만
‘절대 사랑할 수 없는’ 천재 가수의 잔혹 로맨스

“오르가슴이 일종의 죽음이라면 어쩌면 죽음은 범우주적인 쾌락일 것이다.”_트리아스 데 베스

《소리 수집가》는 제목이 암시하듯 소리에 대한 재능을 타고난, 그러나 자신의 재능이 저주였음을 깨닫는 한 사내의 비극적인 삶과 죽음을 일대기처럼 다루고 있는 잔혹한 스릴러이다. 스페인의 경제학자인 동시에 베스트셀러 작가인 트리아스 데 베스는 《소리 수집가》를 통해 사랑의 한계성과 진정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시도한다. 소설의 주인공 루트비히는 ‘남녀노소로 하여금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게 만드는 재능’을 소유한 천재 오페라 가수이다. 그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나 《오디세이》의 세이렌처럼 사랑의 소리를 노래하여 사람을 지배하는 천부적 재능의 소유자지만 그의 목소리와 정낭에는 치명적인 독이 있어,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 모든 여자들은 사랑에 빠지는 동시에 그와 사랑을 나누면 죽게 된다. 루트비히는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계속 여인들을 찾아다니며 살인을 한다. 그러던 중 운명의 여인 마리안네 가르를 만나면서 사랑과 죽음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 하는데…….
작가 트리아스 데 베스는 이 소설에서 연애담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과 19세기 독일 음악의 거장인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얽힌 실화를 토대로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결합시켜 비극적인 운명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재탄생시켰다. 또 실제 바그너의 서간문과 글을 수집해 실음으로써 현실감을 느끼게 해주며, 작품 중간에 실려 있는 아름다운 오페라 대사와 극적 긴장감을 통해 마치 한 편의 대작 오페라를 감상하는 듯한 짜임새 있는 작품이다.


《향수》보다 광적이고 《오페라의 유령》보다 가슴 시린 러브스토리

“에로스와 타나토스. 내 소설에서 테너 오페라 가수는 자신의 목소리와 정액에 각각 관능과 죽음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이다.”_트리아스 데 베스

천상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살인을 하게 만드는 ‘사랑의 소리’. 주인공 루트비히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사랑의 소리’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 트리아스 데 베스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주인공을 통해 보여준다. 《향수》의 그르누이가 단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향수’를 만들기 위해 무고한 여인들을 죽였다면 《소리 수집가》의 루트비히는 천상의 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부족한 소리를 채우기 위해 살인을 일삼는다. 하지만 죽임을 당하는 여인들은 모두 루트비히의 목소리에 빠져 사랑을 느끼게 되고 결국 사랑을 나누다가 쾌락의 절정을 맛보는 순간 죽음을 맞게 된다. 그야말로 황홀하고 아름다운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여인들을 죽이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던 루트비히는 운명의 여인을 만나게 되면서 고통의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저자는 절정의 쾌락의 순간은 다른 삶으로 전이되는 순간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상기하면서 사랑과 죽음의 양면성을 설명한다. 그는 프랑스인들이 섹스를 ‘작은 죽음’으로 여기거나 오르가슴을 느끼는 순간에 뉴런의 활동이 정지되는 것을 확인한 네덜란드 신경학자들을 예로 들어 “그것은 죽음의 순간과 같다.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것은 삶을 죽음이 있는 곳으로 부추기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이 소설은 그야말로 에로스적인 사랑, 즉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사랑에 대한 단면을 잘 표현한 수작이라 할 만하다.


18세기 낭만주의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의 대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비극적인 로맨스의 원형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의 부활

원래 켈트족의 전설에서 비롯된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은 코르누알레스의 마크 왕인 숙부와 결혼시키기 위해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를 호위하던 트리스탄이 공주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된 왕에게 트리스탄이 죽임을 당하고 이졸데 역시 죽는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12세기 초부터 영국, 프랑스, 독일, 북유럽 등지에서 구전되다가 1170년경 프랑스에서 그의 용기와 비극적인 사랑은 서사시로 다시 태어나 지금의 형태로 정리된 이야기로 그 극적인 성격과 비극적 결말로 인해 기사 연애담의 전형이 되면서 전 유럽으로 전파된다. 이 전설은 후대에 수많은 책에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19세기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로 재탄생되었다. 작가 트리아스 데 베스는 실제 19세기 독일 음악계에서 활동했던 루트비히 슈노어 폰 카를스펠트가 아내인 소프라노 말빈 가리구에스와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공연한 후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은 것을 모티프를 삼았다. 세간에 그의 죽음이 트리스탄의 저주로 인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 한동안 가수들이 출연을 거부하는 소동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 속 주인공이 마치 실존했던 인물인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
바그너의 글과 편지글 역시 독자들이 혼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장치 중 하나이다. 그는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면서 전체적으로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또한 중간에 삽입되는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를 오페라 가사로 대치한 것은 실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가사에서 발췌한 것이라고 ‘작가 노트’에 밝히고 있듯이 작가는 철저하게 음악 소설이자, 역사 소설로 완성도 있는 작품을 구현해내고 있다.


똑같은 형식의 팩션은 가라!
극적 긴장감과 현실감을 주는 액자식 구성, 음악과 역사의 크로스오버!

이 소설은 모두 세 명의 화자(話者)를 통해 전개되는데 주인공 테너 루트비히와 노트를 발견하고 추적하는 위르겐 신부, 루트비히의 고해성사를 기록한 슈테판 신부가 그들이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세 권의 노트 속 주인공인 루트비히로 대부분의 소설이 그의 기록과 고백으로 전개된다. 중간중간 슈테판 신부에게 고해하는 대사를 넣어 실제 루트비히의 감정이 어떠했을지 잘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이 세 사람의 목소리를 활용해 긴장감과 현실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소리 수집가》는 대중에게 낯설게 느껴질 만한 ‘음악’을 소재로 오페라와 연애담의 전형인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을 결합시켜 고전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스릴 넘치는 소설로 독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것이다.

나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천상의 음악에 나의 부모님뿐만 아니라 이웃 주민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바이에른 지방의 밤하늘 아래, 달빛을 받은 소년의 내부에서 조율된 선율이 주민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그 선율에 이윽고 모든 시내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그 선율을 듣고서 촛불을 켜고 호롱불을 켰다. 뮌헨 시 전체가 불을 밝혔다. 꼭두새벽에 수천 명의 주민들이 지상의 선율을 좇아 그 선율이 흘러나오는 우리 집 지붕을 향해 귀를 쫑긋 세웠다. 뮌헨은 금세 몽유병자의 도시로 변했다. 뮌헨은 마법에 홀린 사람들처럼 나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아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아픈 사람이든, 신앙인이든 무신론자이든 내 목소리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어떤 소리보다 순수하고 어떤 소리보다 완벽한 소리의 샘에 빠져 허우적거렸다._〈첫 번째 노트〉 58쪽

나는 정신을 집중하며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사랑의 소리를 끄집어내어 폐부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차가운 석조 테이블 위에 누워 교장을 똑바로 응시하며 노래를 불렀다. 모든 인간을, 여자든 남자든 모든 이들의 의지를 꺽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을 지닌 사랑의 소리를, 죽음이 아닌 삶의 충동에서 분출되는 선율을. 사랑의 소리를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교장이 살아오면서 들은 가장 위대한 선율을 능가하는 선율이었다. 사랑의 소리가 그의 귀에 닿았고, 그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으며, 치명적인 독이 되어 그의 의지를 꺾었다._〈첫 번째 노트〉 131쪽

그것은 목을 통해 나오는 사랑의 아리아가 아니라 내 몸속에서 터져버린 아리아였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로 분출된 사랑의 아리아였다 이어 형언할 수 없는 짜릿한 감흥에 흠뻑 젖은 내 몸으로부터, 내 입으로부터 이런 말이 새어나왔다. 내 자신도 모르게. “사랑해!”
그런데 이상했다. 우리의 몸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마치 추위에 떨듯, 무어신가가 그녀의 몸을 얼려버리기라도 하듯. 그녀의 눈꺼풀이 빠르게 안쪽으로 말려 올라가고 있었다.
“마르티나!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돌연 경련이 멈추었다. 그녀의 입꼬리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나오고 그 핏줄기가 마치 붉은 눈물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얼굴이 하얀 바탕에 붉은 장식을 한 베네치아 가면처럼 변했다._〈두 번째 노트〉 165쪽

세 권의 노트에 대한 위르겐 신부의 서문_1905년, 겨울………………009
첫 번째 노트_소리를 마시는 아이……………………………………………035
두 번째 노트_다시 뮌헨으로……………………………………………………145
세 번째 노트_오직 사랑을 위해………………………………………………257
위르겐 신부가 덧붙이는 글_완벽한 사랑의 진실…………………………359

작가 노트……………………………………………………………………………387
옮긴이의 글_신화와 오페라가 절묘하게 차용된 낭만적인 스릴러…………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