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맑고 신실한 열정이 넘치는 청춘시절, 단 한번 다가왔던 사랑을 상실한 한 남자가 자신에게 부딪혀오는 현실의 운명과 싸우는 처절한 내면의 기록이다. 저자는 고위공직자인 주인공의 시선을 빌어 공직사회의 이면을 꼼꼼히 들추어내기도 한다. 사랑과 삶에 대한 통찰이 두루 어우러진 독특하고 매력 있는 연애소설이다.

출판사 서평
이 짧지 않은 장편소설의 저자 임석규는 직업적인 소설가가 아니다. 그는 명문대를 졸업한 후, 행정고시에 패스하고, 경제기획원과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부처 및 기관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온 현직의 고위공직자이다.(그의 현재 공식 직함은 공정거래위원회 내 \"경쟁제한규제개혁작업단장\"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미덕은 이처럼 저자가 명문대 출신의 고위공직자라는 작품 바깥의 수사적인 조건으로부터 자유롭다.
저자의 오랜 경륜에서 나오는 삶에 대한 통찰과 사람에 대한 순정한 열정, 기교가 아니라 내용으로 승부하는 데서 얻어지...
이 짧지 않은 장편소설의 저자 임석규는 직업적인 소설가가 아니다. 그는 명문대를 졸업한 후, 행정고시에 패스하고, 경제기획원과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부처 및 기관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온 현직의 고위공직자이다.(그의 현재 공식 직함은 공정거래위원회 내 \"경쟁제한규제개혁작업단장\"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미덕은 이처럼 저자가 명문대 출신의 고위공직자라는 작품 바깥의 수사적인 조건으로부터 자유롭다.
저자의 오랜 경륜에서 나오는 삶에 대한 통찰과 사람에 대한 순정한 열정, 기교가 아니라 내용으로 승부하는 데서 얻어지는 문학적 품격은 오히려, 급속하게 천격으로 떨어지고 있는 기존 소설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순일한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담백하면서도 간결한 문장에 담아낸 촌철살인의 혜안과 예지는 소설을 읽는 재미와 함께 지적 충족감까지 느끼게 해준다.
갈수록 직업소설가들의 매력과 위상이 감퇴되는 오늘의 시점에서 보자면 더더욱이 신인이면서도 행정전문가이며, 고위 공무원이라는 저자의 신분이 작가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기존 소설가의 작품이 허구에 집착해 \"소설적인 현실\"을 창조해 내는 데 그친다면, 임석규의 이 작품은 그 어느 작품보다도 \"현실적인 소설\"이다. 그 리얼리티는 기교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꾸밈없는 관찰과 절제된 묘사, 그리고 삶에 대한 온건한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더욱 빛난다.
소재의 참신성 또한 이 소설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소설 속에서 저자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데, 그 미려한 논리들은 독자들의 공감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공직사회의 이면에 대한 꼼꼼한 관찰이라든가, 가족과 신세대에 대한 저자의 견해 등은 삶에 대한 저자의 폭넓은 관심과 애정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착한 사람들의 성실한 삶을 옹호하고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연애소설, 멜로소설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청춘 시절, 환한 햇살처럼 가슴 설레게 다가왔던 첫사랑의 기억. 그리고 뜻하지 않은 이별의 아픔. 절치부심 학업에 전력을 해서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고 헤어진 첫사랑과 스치듯 해후한다는 소설의 기본 스토리는 일면, 기존 멜로소설의 정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표면적인 스토리의 상투성을 훌륭하게 극복하는 여러 가지 함의적인 층위를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이 부분에서 기존의 소설들과 변별적으로 구분되는 특장이 발견된다.
우선 이 소설은 지나간 한 시대의 풍속에 대한 섬세한 복원으로 읽는 것이 가능하다. 현대적 공간에서, 현재형의 보법으로 씌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소설은 기본적으로 모두 지나간 시공에 대한 복원일 터이다. 이 소설 역시 저자가 살아온 지나간 시공간을 세밀하게 복원해 놓고 있다. 특히 저자는 자신이 건너온 학창시절인 1960~70년대의 향수를 고스란히 펼쳐 보이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위험한 병이었던 장질부사와, 정미소의 베루또(belt) 돌아가는 소리, 온돌방과 별채의 묘사, 일본제 선박용 디젤 엔진, 싱가 재봉틀에 대한 묘사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대학 시절 원서강독 강의실에서 만난 첫사랑 정현과의 연애 묘사 역시 그 시절 일반적인 대학생들의 연애 풍속을 충실히 재현해놓고 있는 부분이다. 그들은 그 시절의 젊은 연인들의 거개가 그랬던 것처럼 클래식을 틀어주는 다방에서 만나 베토벤의 교향곡 4번이나 존 바에즈의 〈도나도나〉 따위를 함께 듣거나 캠퍼스의 숲길을 걸으면서 사랑을 속삭인다. 그들은 수줍어하며 손목을 잡거나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는 초인종을 눌러주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주인공 민형이 정현의 아버지로부터 사윗감으로 부적격 판정을 받는 대목에서도 독자들은 그 시대만의 민감한 시류적 풍속을 엿볼 수 있다. 정현의 아버지가 민형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민형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정현의 언니는 민형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빠가 민형 씨 지역 사람들을 싫어해요. 신의를 모르는 사람들로 알고 있어요.\"
당시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하의 첨예했던 지역감정의 골이 이런 에피소드 위에서 리얼하게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두 번째 특장은 저자 자신이기도 한 주인공이 부박하고 타락한 현실과 세태에 대해 강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표면적인 줄거리 속에 배치된 전혀 표면적이지 않은 개성적인 인물들로 하여금 격렬한 사회비판을 수행하게 했던, 발자크나 에밀 졸라의 소설들을 떠오르게 한다. 주인공 민형은 소설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내부적인 요구도 달라지고 있다. 오늘의 공직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양심과 인품이다. 윗사람일수록 직원 하나하나를 존중하고 일을 바르게 보는 인품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다스리는 위엄은 인품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다. 구시대의 중요한 능력이었던 요령과 전횡은 이제 장애가 될 뿐이다.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믿음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불만이나 반목이 발붙일 여지가 없다. 아직도 공직을, 아는 사람이나 자기에게 도움되는 사람을 위해 영향력이나 행사하며 즐기는 자리쯤으로 아는 일이 있다면 작은 일이 아니다.\"
주인공 민형의 입은 저자 자신의 입이다. 저자는 주인공의 입을 빌어 바람직한 선진 공복의 자세와, 고위공직자의 윤리와 정신자세 등에 대한 오연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첫 장편소설로 기록될 『하얀 손길』은 맑고 신실한 열정이 넘치는 청춘시절, 단 한번 다가온 사랑을 비극적으로 상실한 한 남자가 자신에게 부딪쳐오는 현실의 도저한 운명과 맞써싸우는 처절한 내면을 기록한 연애소설인 동시에 공직사회의 황폐한 이면, 현실 사회의 부조리한 세태 등을 꼼꼼하게 들추어내는 훌륭한 사회소설이다. 사랑과 삶에 대한 통찰과 예지가 두루 어우러진 이 소설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개성으로 등재될 만하다.
소설의 줄거리
주인공 민형은 경제기획원에 근무하는 국장이다. 젊은 시절 잃어버린 사랑 때문에 그는 여전히 때때로 가슴이 시리다. 대학시절 그는 『폭풍의 언덕』 원서 강독 시간에 운명적으로 정현이라는 국문학과에 다니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그 시절의 젊은 연인들이 모두 그랬던 것처럼 다방에서 함께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고 캠퍼스의 숲길을 거닐면서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들의 달콤하고 향기로운 사랑이 2년째로 접어들던 어느 날 민형은 정현이 자신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갑자기 자취방 주소를 옮긴 것을 알게 된다.
캠퍼스에서 우연히 만나도 그녀는 민형에게 냉담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민형은 몹시 괴로워하던 중 정현과 정현의 언니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는다. 세 사람이 만난 자리에서 정현의 언니는 민형에게 엄격한 법관 출신의 정현 부친이 정현의 이성교제를 극구 반대하기 때문에 동생과의 관계를 그만 끊고 헤어지라는 말을 건넨다. 청천벽력 같은 정현 언니의 말에 민형은 깊이 절망하지만 이를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는 사랑으로부터 버림받고 절망 끝에 군입대를 한다. 군대에서 그는 현실의 고통을 잃고 생존의 논리를 익히기 위해 애를 쓴다. 휴가를 받아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군부대 근처에 방을 얻어서 혼자서 잠만 잔다.
제대 후 대학에 돌아온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행시에 패스하고 공직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꽉 짜인 공직사회에서 그는 겸손하면서도 소신 있는 자세로 일을

목차
추기경 ... 11
비오는 날의 청사 ... 25
모정 ... 37
수요일 회의 ... 55
이모의 방 ... 71
...
신에 대한 살의 ... 241
작품을 마치며 ... 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