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의 시간을 넘어 찾아간 고향, 안동에 대한 시랑고백. - 나는 다시 안동으로 돌아올 날 반드시 큰 꿈을 이루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한 내 열여섯 청춘백서를 낙동강 백사장 속에, 그것도 용상이라고 부르는 유원지 포도원 앞 모래둔덕 한 구석에 깊이 파묻어 두었었다 ...... 나는 그것을 내 소망의 별로 여기고 하늘에 새겨두었다. 밤하늘이면 선명하게 나타나는 오리온 별자리의 가운데 별 세개, 삼태성이 내 청춘백서의 상징이었다. 그 별의 하나는 이육사 님 같은 훌륭한 시인이 된다는 것, 둘은 현숙이와 결혼하는 것, 셋은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께 보답라는 것이엇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서평
금모래 빛깔로 아스라이 되살아오는 유년의 세계, 그 원형의 아름다움
『별을 묻던 날』은 아스라이 되살아오는 유년의 세계와 그 원형의 아름다움을 서정적인 문체와 세밀한 기억력으로 복원해낸 가슴? 따뜻한 소설이다. 단내 나는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에게 전하는, 추억으로 가는 마음 여행이 될 이 작은 소설은 작가 박기현의 현재의 회한과 자전적인 기억이 맞물린 한 어른의 고백록이자 애틋한 고향(안동) 예찬을 담고 있는 아련한 동화와도 같은 추억 소설이다.
지은이는 27년만의 귀향길 버스에서 잠시 잠깐 지나온 삶을 회상하면서 주마등처...
금모래 빛깔로 아스라이 되살아오는 유년의 세계, 그 원형의 아름다움
『별을 묻던 날』은 아스라이 되살아오는 유년의 세계와 그 원형의 아름다움을 서정적인 문체와 세밀한 기억력으로 복원해낸 가슴 따뜻한 소설이다. 단내 나는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에게 전하는, 추억으로 가는 마음 여행이 될 이 작은 소설은 작가 박기현의 현재의 회한과 자전적인 기억이 맞물린 한 어른의 고백록이자 애틋한 고향(안동) 예찬을 담고 있는 아련한 동화와도 같은 추억 소설이다.
지은이는 27년만의 귀향길 버스에서 잠시 잠깐 지나온 삶을 회상하면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자신의 인생이 너무도 덧없고 짧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슬픔에 겨워한다. ‘만약이라는 말이 지금도 가능하다면 나는 어떤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일까?’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아가면서 꿈을 위해 가쁘게 달려온 많은 우리네 기성세대들. 생의 반환점을 훨씬 지나 그들이 느끼는,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상실감, 가슴속의 별은 어느덧 사라지고 허상만 남아 있다는 허망감,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다시 시작한다 해도 아마도 지금보다 더 잘살 자신이 없다는 망연자실함. 이때 ‘돌아갈 수 없는 자의 슬픔’은 기억의 회로를 뒤지고 추억으로 위안을 삼기 마련이다. 그러나 『별을 묻던 날』은 결코 그러한 과거지향의 퇴행적 서사에 머무는 익숙한 회상 소설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다양한 놀이와 우정, 방학숙제와 여행에 얽힌 우여곡절, 어린이회장에 출마한 사연, 할머니와 형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육친의 정과 사연들, 안동의 전통과 자연에 대한 회상, 60년대 사회상을 반영한 사건들, 사춘기를 지나는 순수한 자아의 호기심과 고뇌, 그리고 서울로의 유학 등을 잔잔하고도 정감 가득한 눈으로 되돌아보는 한 남성의 회상을 담은 이 책에는 안동을 배경으로 한 60,70년대의 시대상과 박물지적 생활사, 산업화 속에서 상실한 미덕과 풍속의 복원이라는 사회적 기억력의 미덕, 삶과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고 개인의 윤리를 다듬어 가는 자의식의 발로, 고향과 부모 그리고 공동체의 대한 사색이라는 원형의 질문들이 차분하고도 정갈한 문체에 실려 곳곳에 뿌려져 있다.
그리하여 지은이는 독자로 하여금 이제는 사라졌으되 아직도 보편적인 호소력를 갖는 사람 관계의 참 모습을 곰곰이 되새기게 만든다. 그것은 분명 건강한 이야기의 힘이자 순수를 그리워하는 자기갱신의 다짐이 갖는 솔직함의 매력이다. 작가가 느꼈을 아뜩함 덕분에 따뜻한 위안을 얻을 독자, 여기에 좋은 이야기가 갖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본문 속으로
단내 나는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에게 전하는, 추억으로 가는 마음 여행
나는 다시 안동으로 돌아올 날 반드시 큰 꿈을 이루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한 내 열여섯 청춘백서를 낙동강 백사장 속에, 그것도 용상이라고 부르는 유원지 포도원 앞 모래둔덕 한구석에 깊이 파묻어 두었었다. 사이다병 하나를 비워 그 속에 깨알같은 내용을 적고 편지를 넣어 봉해둔, 요즘 같으면 타임캡슐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 병을 내 별로 여기고 하늘에 새겨두었다. 밤하늘이면 선명하게 나타나는 오리온 별자리의 가운데 별 세 개. 삼태성이 내 청춘백서의 상징이었다. 그 별의 첫째는 이육사 님 같은 훌륭한 시인이 된다는 것, 둘째 별은 현숙이와 결혼하는 것, 셋째 별은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께 보답하는 것이었다.
“이제 10킬로쯤 온 것 같데이. 야, 이거 장난이 아이구마. 얼매나 남았으꼬?”
덩치가 적은 호열이는 이미 지쳐가고 있었다.
“가는 데만 칠십 리라 카더라.”
“그라믄 28킬로 아이가. 아이고, 큰일이다. 언제 가노?”
햇볕은 뜨겁고 등짝에선 땀이 흐르고 다시 마르기를 되풀이하더니 남방셔츠에 허연 소금기가 묻어나왔다. 저 앞에서 제일 잘 달리는 인식이 등은 아예 물에 젖은 염전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야들아, 도저히 못 가겠다. 점심이나 해 묵고 어떻게 가 보든지…….”
“그라자.”
약속이라도 한듯 합창을 하며 우린 주저앉았다.
하지만 마땅한 그늘도 없고 고개와 산골짜기만 그득한 시골길에서 우리는 지쳐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삶은 계란 두 개씩을 대충 먹어치우고는 사이다로 목을 축였다.
“가자!”
“아이고……. 언제 가노!”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 눈앞에 서 있는 아버지는 영화에서나 보던 독립군 모습이었다. 머리에는 군모를 쓰고 목에는 태극무늬가 선명한 머플러를 둘렀다. 가슴에는 X자로 총탄집을 찼는데 거기에는 노랗게 반짝거리는 총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 총알들이 갓 씌운 백열 전구에 반사되어 빛이 닿지 않는 방안 천장을 둥그렇게 둘러쌌다. 별들이 천장을 가득 메운 느낌 그대로였다.
다시 허리에는 카빈소총에 들어가는 초승달 모양의 탄창들이 대여섯 개 꽂혀 있었다. 그 오른쪽으로는 아버지가 즐겨 쓰시던 묵직하고 둔중한 45구경 권총이 권총지갑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총알을 장전한 카빈총과 권총이 그렇게 무서운 적이 없었다.
\"수호야, 참, 많이도 변했데이. 니 그때 공부 정말 잘했제? 요즘 뭐 하노? 나는 마 이래 산다. 그때 선택을 잘 했어야 하는 긴데……. 내사 마 아가 다섯이나 된다. 순간의 선택을 잘 해뿌러서 요새 이 모양 이 꼴 아이가. 이 나이에 아직도 운전이나 해 묵고 산다. 욕하지 마라!”
택시운전을 한다는 명태는 말과 달리 세상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내 자존심을 부끄럽게 했다. 사실 그건 내가 할 소리였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이다. 공부 좀 잘 한거? 그거 아무 것도 아이더라. 니가 잘 사는 기다.”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아닌가.
줄거리
그토록 고향 안동을 꿈에 그리던 중년의 주인공은 출분의 뜻을 이루지 못한 자괴감에 27년 동안 고향에 들르지 못했다. 친구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마침내 고향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마음 속으로 문득 어린 시절 아스라한 추억들이 땅거미처럼 되살아 나오기 시작한다.
주인공에게 어린 날들은 화려하던 시절로 기억된다. 동네에는 철이 되면 서커스단이 들어와 신기한 볼거리를 펼쳤으며, 숨어 들어간 극장에서 훔쳐본 이미지는 강렬했다. 60년대는 나병 환자에 대한 공포의 신화가 끈끈하였고, 서울에서 온 전학생은 시샘의 대상이었다. 자식은 부모를 닮고, 부모는 자식이 누굴 닮았나 혀를 찬다.
나 이외에 또 다른 존재를 느끼기 시작한 그 어린 시절 항상 갖고 싶은 것이 많았으며, 폭설이 내리면 눈밭에서, 폭우가 내리면 빗속에서 열심히 싸움박질을 하며 놀았다. 그리하여 방학은 늘 짧았고, 무서운 아버지와 형들의 야단으로부터 숨어지내야 했다. 그 시절 벌어진 울진 삼척 공비 사건은 아버지의 정을 새삼 깨닫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욕심을 부려 고향땅 자전거 순례를 나가고, 커서 결혼할 여자를 점찍어 두기도 했다. 꿈을 향해 도전했던 서울 유학 시절…… 실패와 좌절…… 그리고 문득 되돌아 본 고향!! 먼 여행에서 돌아갈 곳 없는 자의 슬픔을 느끼는 중년의 주인공은 마침내 어린 날 낙동강 금모래 사장에 사이다병 하나를 주워 그 속에 자신의 맹서와 꿈을 써넣고 묻어두었던 추억을 생각한다. ‘그 병이 무사히 있을까? 27년이나 지났는데…. 모래 한가운데 묻어두었던 내 인생의 청춘백서. 내 별이 거기에 아직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저자 소개
박기현
안동에서 중학교까지 마쳤다. 일어를 전공했으며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배웠다. 잡지사, 대기업과 신문사를 거쳐 겨우 글쓰기의 기초를 익혔다. 1991년에 정책비평서

목차
27년 만의 귀향
화려하던 시절
완장
서커스와 나병환자
천형
왕자와 거지
선거
밥상 던지기
할머니와 양밥
시겟도
폭설과 간고등어
금모래
먹구렁이
방학숙제
공비
핏줄
유괴범
자전거 순례
별을 묻던 날
돌아갈 곳 없는 자의 슬픔
작가의 말 - 안동땅, 안동의 삶, 안동의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