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소설 <민꽃 소리>의 작가 유익서의 소설집. 7편의 중 · 단편에서 작가가 다룬 인물들은 대개 현실에서 절망한 자들이다. 그들은 비록 현실에서는 패배하고 절망을 체험했지만, 상상적 탈주 공간에서는 새로운 비전을 탐문하는 탐색 영웅이 되고자 한다. 많은 소설들에서 현실적 고난의 풍경과 낭만적 황홀경들이 대조적 겹무늬를 이루고 있는 까닭도 이런 맥락에서 짐작할 수 있다. 표제작 <바위 물고기>는 시위 현장에서 사진을 찍다가 사망한 딸의 영혼 결혼식을 전후한 슬픔의 행적을 다룬 서사다.
현실의 불모성에 맞서는 상상적 탈주-유익서 신작 소설집 『바위 물고기』『민꽃소리』의 작가 유익서가 신작 소설집을 발간했다.1980년대의 끝 자락에 발표된『민꽃소리』는 김동인의 「광화사」와 이청준의 「서편제」의 맥을 잇는 예술가소설이다. 주인공 정명재의 추한 용모와 신기에 가까운 대금 소리를 놓고 전개되는 소설은 예술가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날카로운 문제 의식을 제기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유익서는 이데올로기가 현실을 압도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예술혼으로 승화하고자 노력하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어 독자적인 소설 세계를 창조해 냈던 것이다. 신작 소설집 『바위 물고기』 는『민꽃소리』의 또 다른 변주로 읽힌다. 7편의 중, 단편에서 유익서가 다룬 인물들은 대개 현실에서 절망한 자들이다. 그들은 비록 현실에서는 패배하고 절망을 체험했지만, 상상적 탈주 공간에서는 새로운 비전을 탐문하는 탐색 영웅이 되고자 한다. 많은 소설들에서 현실적 고난의 풍경과 낭만적 황홀경들이 대조적 겹무늬를 이루고 있는 것은 그러한 연유에서다.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인 중편 「바위 물고기」는 \"슬픔은 나를 키워낸 자양분\"이라고 담담하고 반추하는 인물의 슬픔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은 시위 현장에서 사진을 찍다가 사망한 딸의 영혼 결혼식을 전후한 슬픔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딸의 결혼 얘기에 복합적인 서글픔의 심사를 드러내는 사내의 모습에서 시작된 소설은 공장을 청산하는 중년 사내의 애환 이야기와 딸의 이야기가 병치되면서 전개된다. 이 과정을 통해 유익서는 50대 존재론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다. 4 · 19세대와 유신세대 사이에 위치했던 그들은 다른 세대들처럼 뚜렷하게 변별되는 역사적 표징이나 명분을 갖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고통과 절망의 뿌리까지 내려가야 했던 새대라는 의식, 그럼에도 다음 세대들에게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는 억울함을 유익서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렇지만 유익서의 세대의식은 자기 세대의 알리바이 확보를 위한 담론 전략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특히 현실에서 무엇인가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오히려 유익서가 추구하는 것은 현실의 부조리함과 근본적인 역설의 드러냄이다. 소설의 결미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바위 물고기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딸의 영혼 결혼식이 치뤄지는 공간은 만어사(萬魚寺)다. 그 연기설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존재의 역설을 새삼 일깨워준다. \"저 바위들은 원래 동해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던 물고기들이었는데, 언젠가 아득한 옛날, 육지가 바다가 되고 바다가 육지가 될 때, 즉 천지가 개벽할 때 저렇듯 이곳에 불쑥 올려져 바위로 굳어졌답니다. ?? 저 바위들은 아직도 동해 바다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저곳에 누워 있답니다.\" 그런 수만의 바위 물고기가 있다 해서 만어사다. 바다로 돌아갈 꿈을 꾸며, 근원 회귀의 욕망 속에서 바위 물고기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욕망과 절망 사이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소외 의식 혹은 불안 의식의 뿌리는 의외로 깊은 법이다. 유익서가 자기 세대의 역사적 현실적 경험의 총체를 바탕으로 근원적 존재론을 탐구한 것은 바로 그러한 지점이다. 소설집에 수록된 또 다른 작품「경희의 섬」 또한 주목을 요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러시아 여행 중에 만났던 경희라는 여성 인물의 실종 8주기를 계기로 그녀와 함께 했던 여정과 고뇌를 다시 반추하고 정리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유익서는 이 소설에서 세계사적 지각 변동의 현장을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 삼으면서 이데올로기와 현실, 그리고 예술과의 관계망 등 여러 중층적인 요인들을 탐문하는 서사를 추구한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다른 작품들은 유익서가 새로운 시대적 조류에도 민감하게반응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경해사 통신」은 짧지만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또한 신비체험의 심미성과 버추얼 리얼리티의 대화성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읽힐 수 없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금석문 전문가인 주인공이 경해사라는 절에서 새롭게 해독한 비명을 따라 옛 가인의 재주를 담아 두었다는 탑 속의 항아리를 파헤치는 과정의 이야기를 신비체험처럼 제시하고 있다. 항아리에서 나온 것은가인의 생애를 기록해 두었다는 목판이었다. 하지만 목판은 밖으로 나오자 마자 여러 형태로 변환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가인이 불렀던 아름다운 노래의 형태로 전환되는 것이다. 목판의 글씨가 다각적으로 변환하는 환시와 텅 빈 항아리에서 들려오는 환청을 통해 독자의 심미체험은 더욱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현실의 불모성을 견디며 상상적 탈주로 넘어서려는유익서의 서사 담론은 기본적으로낭만적이다. 그러나 그 낭만적지향 의식은 언제나 현실과의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독자들은 이 소설집을 통해 낭만적 탈주가 절망을 넘어 서사의 새로운 희망을 일구어 내는 현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