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 사라진 시대에 묻는 인간과 사회의 순정과 순수. 북파공작과 무장공비 침투가 일어났던 60년대에 체포된 무장공비와 그를 취조했던 형사 간의 40년 간의 대결과 신의를 통해 이념 대립에서 남북화해로의 전환을 그리고 있는 소설가 김용만의 작품으로, 1989년 월간 ‘현대문학’에 발표한 등단작 단편 ‘은장도’를 장편으로 풀어놓았다. 구성진 구성과 유려한 문체를 통해 20세기 중심에 놓인 남북 분단 문제의 해결점을 생각해보게 한다.
출판사 서평
▶ 전후 반세기만에 만나는 이념 탈색의 분단소설
『칼날과 햇살』은 제목이 암시하듯 남북 이념 대립의 예리한 칼날에서 남북 화해라는 휴머니즘적 햇살로 나아가고 있는 작품이다. 김신조등 무장공비들의 청와대 습격과 이에 맞서 영화 '실미도'등으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김일성 등 북한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남한의 북파 공작, 그리고 울진, 삼척의 대규모 무장공비 침투가 벌어지던 1960년대. 그 당시 체포된 무장 공비와 그를 취조했던 형사의 40년간의 대결과 신의를 통해 이 작품은 우리는, 남북은 이념 대립을 어떻게 극...
▶ 전후 반세기만에 만나는 이념 탈색의 분단소설
『칼날과 햇살』은 제목이 암시하듯 남북 이념 대립의 예리한 칼날에서 남북 화해라는 휴머니즘적 햇살로 나아가고 있는 작품이다. 김신조등 무장공비들의 청와대 습격과 이에 맞서 영화 '실미도'등으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김일성 등 북한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남한의 북파 공작, 그리고 울진, 삼척의 대규모 무장공비 침투가 벌어지던 1960년대. 그 당시 체포된 무장 공비와 그를 취조했던 형사의 40년간의 대결과 신의를 통해 이 작품은 우리는, 남북은 이념 대립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는가를 구체적 실감으로 제시하고 있다.
남북한과 남북의 체제를 처음으로 동시에 올려놓은 작품은 4.19 직후 반공 이념에서 잠깐 자유로웠던 사회적 기운에서 나온 최인훈 씨의 『광장』. 그러나 반공포로 주인공은 남북 어디도 택하지 않고 제3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투신자살로 끝을 맺는다. 그후 30년 가까이 흘러 87 민주화대운동등으로 역시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남파 간첩을 다룬 홍상화씨의 장편『피와 불』이 89년에 나온다. 남한에서 전향해 다시 장가들고 사업가로 변신한 남파간첩은 그러나 끝내 자살하고 만다. 주인공들이 남북한의 분단상황, 그리고 그 체제와 이념의 벽을 넘지 못해 자살로 끝맺을 수밖에 없었던 것.
또 반공, 우익 이념에 의해 가려진 역사, 현장, 시각을 바로 잡으려한 일련의 분단소설도 작가의 그러한 의도에 의해 좌,우 이데올로기로부터 공평하고 자유스러웠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런 분단 문학에서 이데올로기는 더욱 기승을 부리며 인간과 사회의 보편성, 휴머니즘을 훼손시켰다는 혐의에서 자유스러울 수는 없다.
『칼날과 햇살』에서 젊은 어민 두 사람에 의해 붙잡힌 무장공비 배승태는 자수가 아니라 체포된 것임을 한사코 주장한다. 고도의 훈련을 받았고 권총과 대검을 휴대하고 있던 배승태가 어리숙한 어부 2명의 작대기에 당했을 리 만무한 것. 그런 판단을 한 대공형사 강동호는 체포가 아니라 자수라는 논리를 집요하게 펴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자수였다는 진술을 배승태에게서 받아내며 둘의 화해로 결말을 짓는다. 이념이 아니라 시종일관 휴머니즘 시각에서 작품을 이끈 것이 해피엔딩에 이르게 한 것이다.
꼼꼼히 읽고 작품집에 해설을 붙인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 이 작품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저 지랄 같은 20세기 중심에 놓인 이른바 분단 상황을 21세기에 접어든 오늘의 시점에서 어떻게 소화해 갈 수 있을 것인가. 소설적 화해란 어떠해야 할까? 김용만씨에 의해 그 유려한 소설적 방식이 창출되었다”고.

▶ 줄거리 - 남북 체제 수호 두 전사의 대결과 화해의 역정
행려병자로 쓰러진 초로의 여인의 소지품에서 수첩이 발견된다. \"배승태씨가 내 손을 잡고 이상한 말을 했다. 내레 자수한 기 아니었디, 어드러케 김일성 수령님을 배신하갔어.\" \"서울에 가서 동호씨를 찾아야겠다. 헤어진 지 30년이 넘었지만 언제나 그이는 내 남편이다.\" 경찰은 수첩에 수시로 이름이 올라 있는 동호를 찾아 그 여인을 인계한다.
34년 전에 그 여인, 나연주에게서 아들을 얻고 나서 즉시 헤어진 강동호. 지금은 중견 기업 사장인 된 동호가 그 당시 정보과 형사로서 자신이 취조한 무장공비 배승태를 찾아가 첨예했던 남북대결의 과거와 남북정상회담과 교류의 오늘을 교직시켜나가고 있는게 이 작품이다.
강릉 인근 외딴 바닷가에서 횟집을 내고 있는 배승태. 남한 빈농 출신으로 6,25때 의용군에 자진 입대한 승태는 그 전공으로 북한에서 대학도 나오고 남파 요원으로 선발된 최정예로 당간부 딸과 결혼한 후 남파돼 체포된 뒤 수감 몇 년만에 사면된다. 그 후 남쪽에 있는 누나의 도움으로 결혼도 하고 식당 경영을 맡아 날로 번창시킨다.
아들도 낳고 자본주의 생활에 안착하는가 싶었던 승태는 그러나 아내와 아들의 방탕과 가출로 가정은 파탄되고 만다. 북녘에 있는 처와 자식들만 사무치게 그리워할 뿐 자신들에게는 정을 안 준다며 떠나버린 가족들은 미련 없이 털어버리고 자신이 침투했던 강릉 인근의 지역에 횟집을 내고 떠돌이 여인 나연주와 순정한 사랑에 빠지나 실성기가 있는 그 여인도 자신의 첫 남자 동호를 찾아 어느 날 홀연히 떠나 지금은 홀로 외딴 바닷가에서 지내고 있다.
강간 당해 미쳐버린 처녀 연주를 동호 어머니가 거둬 한 집에서 딸처럼 키운다. 실성기가 거의 치유돼가던 연주는 대학생인 동호를 연모하게 되고, 욕정을 참지 못한 동호가 덮쳐 아들을 낳는다. 미친 여자를 자기 아내로 삼을 수 없다는 동호는 아들만 취하고 연주를 내쳐버린 채 30여 년을 죄책감에 산다.
무장공비로 체포된 승태는 자신은 자수하지 않고 체포되었음을 강변한다. 혁명전사로서의 순수성, 즉 자신의 존재이유와도 같은 이념을 져버릴 수 없고 또 북한에 있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동호의 증언으로 체포된 것이 아니라 자수한 것이란 정황을 안 법정도 당시 반공제일주의 시국상 체포로 언도하면서도 경량의 형벌을 내린다.
그러다 34년만에 만난 승태는 동호에게 검거 당시의 정황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외딴 어부의 집 부엌을 찾아 밥 한 덩어리 뒤져먹고 따뜻한 아궁이 앞에서 잠깐 졸은 사이 꿈속에서 어머니가 나타났다. 예리한 은장도를 갖고 놀던 어린 승태에게 위험하다며 어머니가 달라고 해 그냥 넘겼다는 것. 그러다 화들짝 깨어나보니 자신도 모르게 작대기를 든 두 어부에게 권총을 넘겨주었었다는 것이다.
34년간 지키고 있던 이념이 어머니의 마음으로 휴머니즘화 되는 순간이다. 34년 전 그 바닷가에서 다시 만난 초로의 승태와 동호가 술잔을 나누며, 이념을 지우며, 화해로 나가고 있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이와 같은 기둥줄거리와 함께 승태의 진술과 회상을 통해 북한에서의 생활과 연애, 특히 혁명 전사로서 만인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겠다는 젊은 시절의 순정한 이념태가 그려진다. 또 그와 대비된 오늘의 북한의 독재와 관료화 사회, 그리고 남한의 타락한 자본주의 사회도 그려진다. 동시에 동호를 통해 60년대 살벌했던 남북 이념 대립과 남한의 이기주의 사회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이념이 사라진 우리 시대, 인간과 사회의 순정과 순수는 어떻게 지켜내야할 것인가를 독자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목차
미친 소녀
체포 논리와 자수 논리
옹근 달빛
낯선 세계
춤과 제의
은장도
에스컬레이터
새로운 만남
파도야 파도야
작품 해설: 옥비녀와 은장도 사이에 낀 실성기 - 김윤식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