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가는가? 그렇다면 회초리를 잊지 말게나." 극단적인 여성혐오를 표현하는 니체의 이 말은 동시에 여자에 대해 남자가 가지는 원초적 두려움을 이면에 깔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 두려움에서 남자는 요부라는 존재를 창조해냈다.

아담과의 시들한 부부생활에 질려 낙원을 박차고 나간 릴리트에서부터 대제국을 뒤흔든 클레오파트라, 자유의 여전사 마돈나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신화, 대중문화를 지배해온 대표적 요부 이미지를 각 시대와 사회 인식의 맥락 속에서 재조명한 이 책은 곧 우리들 욕망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출판사 서평
인터넷에 ‘요부’라는 단어로 검색해보니, 조선시대 3대 요부가 누구인지 묻고 답하는 질문들이 의외로 여럿 눈에 들어옵니다. 장녹수, 정난정, 김개시, 장희빈 등을 놓고 누굴 포함시키고 누굴 빼느냐?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모두 음모와 계략이 횡행하는 사극에서 오랜 세월 주역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여인들이지요. 기생, 서출, 첩, 상궁 등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경직된 조선사회에 감히 자신의 목소리를 낸 이들은 조선 왕궁을 나아가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를 뒤흔든 요부로 미움을 받아왔습니다. 임금의 폭정과 무능도 이들 탓이고, 관료들의 부...
인터넷에 ‘요부’라는 단어로 검색해보니, 조선시대 3대 요부가 누구인지 묻고 답하는 질문들이 의외로 여럿 눈에 들어옵니다. 장녹수, 정난정, 김개시, 장희빈 등을 놓고 누굴 포함시키고 누굴 빼느냐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모두 음모와 계략이 횡행하는 사극에서 오랜 세월 주역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여인들이지요. 기생, 서출, 첩, 상궁 등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경직된 조선사회에 감히 자신의 목소리를 낸 이들은 조선 왕궁을 나아가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를 뒤흔든 요부로 미움을 받아왔습니다. 임금의 폭정과 무능도 이들 탓이고, 관료들의 부패도 이들 탓이고, 혼미한 당쟁도 이들 탓이 되어버렸습니다. 올해 국내 문학의 최고 화제작으로 꼽히는 《미실》의 주인공은 이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대접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빼어난 미모와 지력의 소유자로 신라시대의 권력을 좌우했던 요부 미실의 대담한 사랑관과 일생에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요부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은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브, 클레오파트라, 엠마 해밀턴, 마타 하리 등 서양 역사와 문화에도 내로라하는 요부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들은 사악한 유혹으로 인류를 낙원으로부터 몰아냈으며, 대제국의 뿌리를 뒤흔들었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적과의 거래도 서슴지 않았으며, 하나같이 남성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그들을 쥐락펴락했다 합니다. 역사의 모든 문제들을 이들에게 뒤집어씌우기에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들은 인류의 안녕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세력인 것이지요.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요부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신화와 역사, 대중문화 속의 숱한 사례들을 놓고 그 이면의 시대배경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요부라는 이데올로기를 읽어낸 저자는, 매력적인 유희의 대상에서 돌연 모든 혼란을 야기하는 냉혹한 약탈자로 변모하기를 거듭해온 요부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남성의 욕망과 시대·정치적 필요성이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요부에 대한 생각은 지난 세기와는 많이 다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적극적으로 요부가 되고자 하며, 남자들은 그러한 요부를 경계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즐겁게 매혹당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드러진 위치에 있는 여성들을 향해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으며, 마녀사냥 식의 여론몰이가 성행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렇듯 모순되는 시대의 가치관 속에서 그동안 전형적으로 등장해온 요부의 이미지, 그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곧 지금도 진행되는 우리들 욕망, 그 시선의 변천사를 마주하는 일일 것입니다.

1. 책소개
태초부터 존재해왔다고 하는 위험한 여자들. 교태 가득한 웃음 뒤에 음습한 계략을 숨기고 있으며 남자들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이들 요부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역사와 신화, 대중문화 속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춰보면, 요부의 많은 이미지들이 남자에 의해 창조되고 가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자들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원형적 요부 이야기에서부터 시대와 권력의 양상에 따라 그 이미지가 어떻게 변모되어왔는지, 그리고 요부의 이미지를 여자들이 어떻게 이용해왔는지에 대해 풍부한 사례를 통해 면밀히 살펴보는 이 책은 곧 요부라는 이미지에 담긴 우리들 욕망의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2. 이 책의 특징과 의의

1. 역사와 신화, 관념 속에 뿌리박힌 요부 이미지를 파헤치다
역사와 이야기의 전승은 주로 남자들의 몫이었으며, 그들은 요부 이야기에도 지속적인 관리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 책은 신화와 역사적 사실, 영화 등 대중문화 속에 표현되는 요부들의 이미지와 그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어떤 의도와 해석을 통해 사회적 수용을 거치게 되었는지 고찰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클레오파트라의 경우이다.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관심은 그녀의 통치력이 아니라 성적 취향이나 화려한 생활 등에 대해서만 집중되었다. 이는 옥타비아누스와 이야기꾼들의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홀려 로마를 버렸다고 여론을 몰아간 옥타비아누스로서는, 위대한 로마인 안토니우스가 탈선하려면 적어도 그녀가 훌륭한 요부이자 빼어난 기교의 여인임을 강조해야 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에게 카이사르나 안토니우스 말고 다른 연인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다. 그리고 그녀는 오랜 기간을 그 두 사람과 떨어진 채 자신의 왕국을 다스리며 보냈다. 그들 두 사람의 로마 장군은 둘 다 여성편력이 심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 음탕함의 업보는 클레오파트라가 온통 감내하게 된 셈이다. 이렇듯 요부는 남성이 여성에게 투사한 하나의 이미지, 혹은 공유된 욕망의 모험담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즉 요부란 남성이 창조하고 여성이 요령껏 활용해온 사실과 공상의 합성물이라는 것이다.

2. 시대에 맞게 변형되며 등장하는 요부의 원형에 대한 진지한 접근
고대 신화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요부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치는가 하는 문제는 곧 남성들이 자신의 우월성과 지배력에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있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억압에 직면하여 생존의 투쟁을 벌이던 고대 히브리인이나 초창기 기독교인들은 릴리트와 이브의 예를 들며 여자를 멀리하고 경계하라고 끊임없이 남자들에게 강조해왔다. 대조적으로 뛰어난 문화와 경제적 여유를 향유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악한 요부를 만나 쾌락을 맛보고도 무사히 살아남는 이야기에 주목했다. 진정한 영웅이라면 승리를 거둘 것이므로 모든 남성들에게 언젠가 그들도 두려움 없이 그러한 쾌락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전해준 것이다.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요부는 델릴라, 살로메, 비비안, 클레오파트라에 이어 영화와 문학 속 뱀프, 팜므 파탈, 비치 등으로 계보를 이룬다. 쾌락을 약속하는 요부들은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제약된 시기에 명성을 떨친 정부(情婦)들과 은막의 밤쉘, 섹스 키튼 등으로 이어진다. 전쟁과 경제, 사회적 통념 등에 영향을 받으며 치명적인 여인과 어수룩한 여인 사이를 오가는 순환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신화와 역사적 사실, 대중문화의 이면에 감춰진 성적 욕망을 읽다
이 책에는 신화나 역사 속에 익히 알려진 이야기들을 재해석하며 거기 담긴 성적 욕망들을 읽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릴리트가 아담을 떠난 것은 다름 아닌 성적인 이유에서였다. 한 가지 체위에 만족하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자신의 성적 자유를 찾아 낙원을 떠난다. 마녀 키르케와 오디세우스의 대결 역시 성적 의미를 담고 있다. 키르케가 마법지팡이를 흔들려 할 때 먼저 검을 뽑아 덤벼들면 그녀가 항복할 것이라는 헤르메스의 귀띔은 곧 오디세우스가 요부의 기대보다 더 많은 성적 쾌락을 그녀에게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었다는 것이다. 유혹의 게임에서는, 상대에게 최고의 욕정을 유발하는 쪽이 이기는 패를 쥐게 된다.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 잘린 메두사의 핏줄에서 페가수스와 크리사오르가 출현했다는 사실은, 페르세우스의 검 말고도 또 다른 무언가가 잠자고 있는 고르곤의 달콤한 육체를 관통했음을 암시한다. 또한 사이렌의 치명적인 유혹은 아름다운 목소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익히 잘 알려진 신화의 이야기와 영화 이야기에 가해진 새로운 해석들은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이다.

4. 예술과 영화 속 요부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눈으로 확인하다
글과 그림으로 요부의 이미지들을 함께 볼 수 있는 이 책은 좀처럼 보기

목차
옮긴이의 글_“여자에게 가는가? 그렇다면 회초리를 잊지 말게”
머리말_남성의 욕망이 빚어낸 산물, 요부
Chapter 1 태초의 악녀들
아담의 첫번째 여자: 릴리트 | 금단에 맞선 유혹의 피조물: 이브
￭ 필리스와 아리스토텔레스
Chapter 2 신화 속의 여인들
신은 세상을 벌하기 위해 그녀를 만들었다: 판도라 | 욕망의 근원을 건드리는 매혹: 사이렌 | 화해와 파괴의 양면적 존재: 메두사
￭ 중세의 인어들
Chapter 3 클레오파트라
역사가 만든 요부: 클레오파트라
￭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Chapter 4 권력과 쾌락의 거래, 정부(情婦)
앳된 정부에서 상류사회 여걸로: 엠마 해밀턴 부인 | 국왕의 진정한 사랑으로 남은 정열의 무희: 롤라 몬테즈
￭ 비비안
Chapter 5 파멸의 씨앗
죽음을 집행한 베일 뒤의 관능: 살로메 | 시대의 덫에 걸린 희대의 요부: 마타 하리
￭ 델릴라
Chapter 6 흡혈 본능, 뱀프
억압된 여성상의 반격: 테다 바라 | 약한 남성들의 포식자: 블루 엔젤
￭ 빅토리아시대 그림 속 여인들
Chapter 7 쾌활한 섹스심벌, 밤쉘
달콤하고 고분고분한 요부:진 할로우
￭ 클라라 보우
Chapter 8 길들여진 악녀, 팜므 파탈
교활한 요부의 위험한 게임: 디트리히슨 부인 | 팜므 파탈 이미지의 전형: 질다
￭ 스핑크스
Chapter 9 백치미의 유혹, 섹스 키튼
관능 속 천진함의 매력: 마릴린 먼로
￭ 그리고 신은 여성을 창조했다
Chapter 10 완숙과 조숙, 극단의 미혹
쾌락을 위한 노련한 게임: 로빈슨 부인 | 욕망의 시선이 만들어낸 환상: 롤리타
￭ 제임스 본드의 여인들
Chapter 11 진실 외에 모든 것을 가진 악녀
주도권은 그녀에게 있다: 〈원초적 본능〉의 캐더린 트러멜
￭ 위험한 정사

Chapter 12 성적 권능의 정상에서
성적 독립을 보여준 시대 아이콘: 매 웨스트 | 스스로 선택하라, 맘껏 변신하라: 마돈나 | 일상까지 파고든 요부의 힘
￭ 브리트니 스피어스
참고문헌
그림 및 사진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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