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노동운동가, 때밀이, 개도살꾼, 시장 상인, 경비, 농민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민주화의 진전과 노동운동의 확장 이면에 여전히 남아 있는 민중 현실의 어둠과 모순에 천착한다. 때로는 참담한 지옥도가 그려지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끈질긴 민중의 힘을 풍성하고 해학적으로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마음의 가난을 문학의 혼으로 키워낸 작가
_불의 시대 80년대, 비로소 그 시절이 힘이 된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는 1990년 계간 『사상문예운동』에 중편 '새벽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윤동수의 첫번째 소설집이다. 15년 만의 첫 소출인 셈이다. 발문을 쓴 동료 작가 안재성의 표현을 따르면 “정말 징한 친구다.” 충북 음성에 내려가 자그마한 시골 농가에 작업실 겸 생활터를 꾸린 지도 벌써 10년이다. 안재성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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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가난을 문학의 혼으로 키워낸 작가
_불의 시대 80년대, 비로소 그 시절이 힘이 된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는 1990년 계간 『사상문예운동』에 중편 '새벽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윤동수의 첫번째 소설집이다. 15년 만의 첫 소출인 셈이다. 발문을 쓴 동료 작가 안재성의 표현을 따르면 “정말 징한 친구다.” 충북 음성에 내려가 자그마한 시골 농가에 작업실 겸 생활터를 꾸린 지도 벌써 10년이다. 안재성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마흔여섯 살이 되도록 어떤 직장도 정식으로 다녀본 일이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남들 다 가진 운전면허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다(휴대전화는 소설집 출간 과정에 장만했다. 그러나 지금 있는 시골집이 통신 사각지대인지 잘 터지지 않는다. 여전히 그냥 전화가 더 유용하다―인용자). 막노동자의 이삼


일치 일당 정도의 원고료 수입으로 매달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도 논술 과외 같은 돈벌이조차 시도한 적이 없다. 소설가들이 눈 돌리기 쉬운 영화니 대학 출강 같은 일에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소설 창작뿐이다. ―발문 ?나의 친구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서

‘불의 시대’ 80년대에 젊음의 정의와 열정을 쏟고, 마침내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속으로 자신의 삶과 글이 녹아들기를 바랐던 세대의 문학을 우리는 기억한다. 윤동수는 80년대를 그렇게 보낸 작가다. 안재성, 방현석, 정화진, 김한수 등의 이름이 겹쳐 떠오른다. 다소 뒤늦은 등단에서, ‘현장’에서 살아낸 그의 시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가 문단에 나온 90년은 ‘민중문학’ 혹은 ‘노동자문학’을 서둘러 후일담의 영역으로 넘기기 시작하던 무렵이 아니던가. 나름의 변신이나 또 다른 긴 호흡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마도 윤동수는 후자의 길을 택했던 것이 아닐까. 동료 작가 안재성이 발문에서 전하는 작가의 면모는 그 긴 호흡의 한 풍경이지 싶다. 생활의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바닥에서 마음의 가난을 문학의 혼으로 키워내면서 살아온 시간들이 거기에는 있다. 15년 만에 첫 소설집을 내는 작가의 감회가 다소 뜨거운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도시를 벗어나 움막에 깃들면서, 작품을 썼다 하면 80년대로 돌아가는데 참 갑갑했다. 이제 안다. 저 불의 시대에 청춘을 겪은 자는 영원히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비로소 그 시절이 힘이 된다. 군불을 때며 버텨냈듯이, 소설이 세계와 인간을 담는 그릇임을 잊지 않으리. ―‘작가의 말’에서

오늘의 노동 현실과 소설 혹은 소설가의 무력감을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는 수록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는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데, 그 제목은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1999)에서 따온 것이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이 제목을 이란의 시인 파로흐자드의 시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여전한 민중 현실의 어둠

소설집에는 노동자, 노동운동가, 때밀이, 개도살꾼, 시장 상인, 경비, 농민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민주화의 진전과 노동운동의 확장 이면에 여전히 남아 있는 민중 현실의 어둠과 모순에 천착한다. 때로는 참담한 지옥도가 그려지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검질긴 민중의 힘을 풍성하고 해학적으로 보여주는 데서 작가의 중층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식욕식당?은 개를 먹이는 최달식이라는 인물이 식욕식당에서 짬밥을 얻으면서 일어나는 미묘한 알력을 그리고 있다. 식욕식당의 과부댁은 유부남과 동침해야 아이를 얻는다는 점쟁이의 말에 짬밥을 빌미로 최달식에게 자꾸 달려들어 그를 곤란하게 만든다. 게다가 과부댁의 동생 껄떡이는 짬밥과 누나를 핑계로 개를 싼값에 넘본다. 그리고 밀도살꾼 고길평은 새끼도 못 낳는 암캐를 팔아넘긴 최달식이 못마땅하다. 어려운 농촌 현실 가운데서도 해학을 잃지 않는 인물들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개꾼'의 오동춘은 연료탱크에서 다친 후로 지독한 어지럼증에 시달린다. 강씨네 과수원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어지럼증으로 자꾸 실수를 저지르자 단박에 잘리고 만다. 개꾼이라는 사내는 맘에 안 드는 군의원의 연설을 마을 회관 확성기로 방해하는 못 말리는 인물이다. 개꾼은 강씨네에게 오동춘


이 부당하게 해고당했다는 소리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가 트랙터로 복숭아나무를 뽑아내며 결국 다시 고용하겠다는 다짐을 받아온다. 오동춘은 이 일로 인해 개꾼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표제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는 움막집에서 홀로 살고 있는 소설가에게 주갑진이라는 사내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갑진은 과거 극동섬유의 노동자였다. 당시에 소설가는 투쟁속보에 조합원들의 삶을 연재하면서 그와 가까워졌다. 주갑진은 대뜸 자신과 아내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한다. 집을 나가 단란주점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의 마음을 돌릴 길은 소설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소설가는 끝끝내 소설을 써주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이 소설 속에서 주갑진과 그의 아내가 가장 행복했던 극동섬유 시절의 몇 장면을 되살려놓고 있다. 작가는 주갑진의 바람대로 소설을 통해 잃어버린 것들을 되살려낸 것이다.
?내 안에 든 짐승?에는 이황화탄소 중독 증세로 앓다가 돈 몇 푼만 받고 일을 그만둔 뒤 자살한 사내가 화자로 등장한다. 이미 죽은 그는 인간의 몸값이 과연 얼마냐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한국 노동자 역사의 가장 비극적인 한 부분으로 남을 원진레이온 중금속 사건을 모델로 한 이 소설은 환상적인 기법으로 그 비극의 심연을 극대화시킨다.
?바람 속의 거미집?은 인권운동센터에서 일하는 화자에게 고두식이라는 사내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부광시장의 경비였다. 당시 부광시장에서 화자의 아버지는 식육점을 가지고 있었다. 상조회 회장이었던 아버지는 고두식과 손병학을 시장의 경비로 고용했고 그들은 부광시장의 경비를 본다는 핑계로 노점상들의 잔돈푼을 뜯어내곤 했다. 시장에서 노점상들을 괴롭히던 손병학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는데 사실은 아버지가 그를 삼청교육대에 보낸 것이었다. 역사 속에서 자신의 아버지 또한 가해자였음을 깨닫고 화자는 괴로워한다.
?신성한 직업?에서 김무배는 이리저리 팔려다니는 신세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옮겨다니며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할 뿐이다. 이번에는 천장에 요상한 벽화가 그려진 목욕탕의 때밀이로 팔려왔다. 결국 목욕탕은 무너지고 그는 밖으로 나오지만 그건 잠시뿐이다. 알레고리적 수법으로 자본이 인간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세상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깊은 샘?의 시현은 노동상담소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다. 보다 못한 그의 아내와 가족들이 그를 들볶는다. 남들을 위해서 살기 전에 가족을 챙기고 밥벌이를 하라는 것이었다. 불운 속에서 평생 가난하게 살아온 아버지에게 대의란 곧 생존을 의미했다. 경비직에 있는 아버지는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관리사무소에 쳐들어간다. 시현은 그런 아버지의 눈에서 깊은 샘을 발견한다. 그것은 가족들을 먹여살린 가장의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그가 평생 지지해온 노동자들의 힘이기도 했다.
'불에 구운 영혼'에서 스타중공업의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박충식은 꽃을 배달하던 중 괴한에게 납치된다. 익명의 사내는 끊임없이 그의 과거를 들추고 전적을 비난한다. 박충식은 노동운동을 함께한 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념도 사라지고 결국은 자기 자신도 잊혀진 존재가 될 것만 같은 불안에 사로잡힌다. 노동운동의 곤경과 타락이 고문과 자백이라는 연극적 장치 속에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마흔여섯 살이 되도록 어떤 직장도 정식으로 다녀본 일이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남들 다 가진 운전면허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다(휴대전화는 소설집 출간 과정에 장만했다. 그러나 지금 있는 시골집이 통신 사각지대인지 잘 터지지 않는다. 여전히 그냥 전화가 더 유용하다―인용자). 막노동자의 이삼 일치 일당 정도의 원고료 수입으로 매달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도 논술 과외 같은 돈벌이조차 시도한 적이 없다. 소설가들이 눈 돌리기 쉬운 영화니 대학 출강 같은 일에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소설 창작뿐이다.

―발문 ｢나의 친구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서

도시를 벗어나 움막에 깃들면서, 작품을 썼다 하면 80년대로 돌아가는데 참 갑갑했다. 이제 안다. 저 불의 시대에 청춘을 겪은 자는 영원히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비로소 그 시절이 힘이 된다. 군불을 때며 버텨냈듯이, 소설이 세계와 인간을 담는 그릇임을 잊지 않으리.

―‘작가의 말’에서

목차
내 안에 든 짐승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
불에 구운 영혼
깊은 샘
바람 속의 거미집
개꾼
식욕식당
신성한 직업
발문 | 안재성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