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현대 시각문화의 위기를 짚어내는 새로운 저널 창간!
얼마 전 유명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인터뷰가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와 한 인터뷰에서 스탁은 “디자인은 죽었다. 내가 디자인한 것은 쓸데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물질주의의 생산자였고, 그 사실이 부끄럽다”고 털어놓으며 2년 안에 디자인을 접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금 세상 모든 것은 디자인이 되었고, 거의 모든 이가 디자이너가 된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이는 관심을 끌기 위한 몸부림 되어버린 디자인과 온갖 쓸모없는 물건들로 ...
현대 시각문화의 위기를 짚어내는 새로운 저널 창간!
얼마 전 유명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인터뷰가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와 한 인터뷰에서 스탁은 “디자인은 죽었다. 내가 디자인한 것은 쓸데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물질주의의 생산자였고, 그 사실이 부끄럽다”고 털어놓으며 2년 안에 디자인을 접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금 세상 모든 것은 디자인이 되었고, 거의 모든 이가 디자이너가 된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이는 관심을 끌기 위한 몸부림 되어버린 디자인과 온갖 쓸모없는 물건들로 가득 찬 세계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며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플레 속에서 과연 우리가 긍정할 수 있는 것은 “비즈니스를 위한 디자인”과 “위로 치솟아 올라가는 판매곡선”이라는 경제적 명제뿐인 것인가?
나날이 변모해가는 시각문화의 지형을 디자인의 시선으로 살펴보기 위해 《디자인플럭스 저널》이 창간되었다. 실무 디자이너, 디자인 교육자와 연구자, 문화 비평가가 참여하는 《디자인플럭스 저널》은 봄과 가을, 1년에 두 번씩 단행본 형식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디자인플럭스 저널》은 깊은 호흡으로 시각문화에 관한 정보들의 흐름을 응시하며 다양한 의제와 쟁점을 제기하는 비평 담론의 전진기지 역할에 주력할 것이다.
자본에 갇힌 디자인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암중모색의 기록
《디자인플럭스 저널》이 정한 첫 호의 제목은 “암중모색”이다. 디자인은 전에 없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듯 보인다. 문화컨텐츠 산업이나 창조 산업의 성장 엔진으로 주목받기도 하고, 문화기술의 핵심 분야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열기가 진정 디자인의 성장에 촉매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인가? 《디자인플럭스 저널 01-암중모색 상편》은 다가올 미래의 호황을 예견하기보다는, 그 뒤안길 어딘가에서 흐릿하게 점멸하고 있을지도 모를 위기의 신호들에 주목하고 있다.
첫 번째 신호는 신자유주의와 그에 따른 제조산업의 재편에 관한 것이다. 지구촌에 몰아닥친 신자유주의의 열풍으로 인해 금융자본의 투기 대상이 된 제조산업은 분할이나 합병, 매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거나 제3세계 국가로 주요 활동처를 옮겨야 했다. 1990년대까지 전 세계 대도시에서 활발하게 움직였던 영미권의 디자인 스튜디오들은 자국 제조산업의 몰락과 함께 하강 국면에 들어갔다.
두 번째 신호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팽창과 관련되어 있다. 대중화된 각종 디지털 미디어들은 여러 네트워크와 접속하면서 문화컨텐츠 시장을 급속도로 팽창시켰고,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나 미디어 인터랙션 디자인 같은 분야를 디자인의 새로운 분과로 등재시켰다.
《디자인플럭스 저널 01-암중모색 상편》은 이 신호들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나름의 시각을 제시하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의 글들은 매스미디어의 후광을 받으며 대중적 관심사로 부상 중인 유명 디자이너들의 활동상이나 디자인 관련 국제 전시의 내막, 그리고 최근 그래픽 디자인 조직 모델의 지속가능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네덜란드의 소규모 스튜디오의 현황을 다루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필자 고유의 비평적 시선으로 브랜드 디자인, 디자인경영 담론, 디지털 건축, 컴퓨터 모델링 인터페이스 같은 주제들에 천착해 해당 주제의 사회 문화적 맥락을 짚어내고 있다.
애플에서 ‘슈퍼 노멀’까지, 오늘의 디자인을 바라보다
홍승표(잭슨홍)는 에서 세계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와 디자인 관련 회사들의 지형도를 직접 작성한 다이어그램과 함께 점검한다.
이재희는 를 통해 2007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와 4회 ‘디자인 마이애미(Design Miami)’에서 목격한 세계 디자인계의 움직임과 대안적인 디자인 활동들을 조망한다.
를 통해 최성민은 네덜란드 특유의 소규모 스튜디오의 생존 방식과 신자유주의에 노출된 북유럽 디자인계의 위기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는 대기업들의 CI, 브랜드 홍보 전략과 기업디자인 컨설팅업계의 현재를 점검한다. 필자 강현주는 역사적으로 볼 때 디자인의 문제는 산업과 경제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이와 더불어 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선택의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극도의 시장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디자인의 이상과 현실 간의 모순이 극대화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는다.
서동진은 를 통해 디자인경영 담론과 결합한 자본주의의 전략과 욕망을 파헤친다. 디자인을 가치화하기 위해 디자인경영 담론이 디자인을 경제현실에 내재적인 대상으로 포섭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이 다음 호에 이어질 것이다.
의 마리오 카포는 1920년대와 1990년대의 기술 열풍이 지닌 유사점과 그 함의를 풍부한 자료와 함께 제시한다. 그는 반세기 전 기술에 대한 낙관과 기대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러했듯이, 혁신적인 건축가들은 사회적 욕망과 기술의 새로운 연합을 찾아 움직일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에서 박해천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이 인간의 인지체계와 결합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손과 눈의 협응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또한 그 협응의 습득 과정과는 전혀 다른 경로로
CAD 소프트웨어와 호흡을 맞추며 자신의 몸을 사용하는 방법과 디자인 대상을 제어하는 방식을 체득하는 새로운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출현을 진술하고 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부의 디자인의 지정학적 전개상을 엿볼 수 있는 “세계 디자인 아틀라스 1”, 그리고 21세기 제품 디자인의 문법을 조립해가고 있는 애플 컴퓨터의 변화상과 조형 실험을 정리한 “애플 연대기”가 다이어그램 형식으로 첨가되어 있다.
창간호의 암중모색은 2호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디자인플럭스 저널》은 “암중모색” 하편으로 명명될 2호에서도 첫 호의 연장선상에서 위의 문제의식들을 더욱 심화해나갈 것이다.

디자인경영 담론은 변화된 자본주의를 재현하고 또한 이를 관리하고 평가, 조정하는 데 헤게모니적 담론으로 구실하는 경영 담론과 디자인을 유착시킨다. 그리고 이를 통해 디자인의 정체성을 변형한다. 다시 말해 디자인경영 담론은 디자인이라는 사회적 실천을 새로운 경제 현실의 재현과 결합시키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디자인을 자본주의가 관리하고 동원하여 착취할 수 있는 경제적 대상으로 객관화하고 또한 측정과 평가, 보상 등을 통해 지배할 수 있게끔 만든다. 특히 무엇보다 디자인경영 담론은 신경영 담론의 언어 혹은 경제적 가상(economic imaginary)을 통해 디자인을 새롭게 경제적으로 가치화(valorization)한다.
- 본문 75쪽 중에서

반면 비판자들은 인간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감각하고 행위한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이 은유가 가정하는 정신과 신체의 위계적 이분법을 부정하며, 인지, 감각, 행위의 상호 연관성에 주목한다. 이들에 따르면, 고도의 인지적 행위의 대부분은 두개골 내부의 정신적 과정이 아니라 특정 미디어와의 인터랙션이 제공하는 신체적 경험의 물질성 내부에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터랙션의 사건이 촉발한 두뇌, 신체, 인공물의 이질적인 배치로부터 창발한다. 이 배치에는 위계나 중심이 없으며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합되어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준자율성을 지닌 복수의 작인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인터랙션은 행위의 일부가 아니라 오히려 사고의 일부인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신체와 외부의 미디어는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손쉽게 환원되곤 하지만, 사실상 인지적 차원에선 인터랙션의 감각적 사건들로 인해 서로 접속하는, 경계가 불분명한 상호 침투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 본문 117~118쪽 중에서

블롭젝트 형제 중 가장 가련한 존재는, 항상 필립 스탁을 자신의 경쟁자로 의식하고 견제했던 카림 라시드다. 그는 세인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인지 일관되게 과장된 제스처를 보여주는데, 이에 대해선 러시아 농노처럼 일했던 무명시절의 보상심리가 수반된 일탈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디자인계는 그가 자신의 디자인 모토이자 도록의 제목으로 제시한 “세상을 바꾸고 싶다(I want to Change the World)”라는 말을 일종의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얼마 전에는 한국의 모 출판사를 위해 단돈 3,000만 원을 받고 울룩불룩 책꽂이를 디자인해준 바 있는데, 이 푼돈으로 뉴욕 맨해튼의 스튜디오 월세를 감당하고 1970년대 신발공장 재봉틀 돌아가듯 3D 모델링을 돌리는 직원들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사실 라시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주적인 디자인’을 설파하는 그의 디자인 철학과 그 결과물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 본문 19~20쪽 중에서

한편 일본의 소니는 이전 세기까지 전자제품의 모든 영역에서 누려왔던 영광을 반납하는 수모를 감내하고 있다. 전자제품을 둘러싼 매체환경이 급격히 비물질적인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일본이 독점했던 정밀기계적 요소들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고, 후발 업체들을 압도했던 소니의 기술적 우위 역시 사라졌다. 이후 변화한 기술적 환경에 적응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시도는 도리어 소니가 유지해왔던 정체성과 여러 부분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소니는 애플 디자인의 성공을 흉내 내는 듯한 어정쩡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본문 21~22쪽 중에서

재스퍼 모리슨과 나오토 후카사와에게 ‘슈퍼노멀’이란 사람을 관찰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사용의 과정 속으로 끌어들이고, 생활 속에서 점차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다져온 그러한 평범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거의 원형적 지위에까지 도달한 물건의 특정한 형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그 물건 본연의 기능 자체를 충실히 형태로 번역했는가에 달려 있는 문제는 아니다. ‘슈퍼노멀’은 그 원형적 형태를 둘러싼 디자인 프로세스와 사용의 역사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히 눈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슈퍼노멀’이 제기하는 한 가지 주요한 이슈와 마주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그것은 눈을 넘어선 경험으로서의 디자인이며, 그렇기 때문에 보기에 심심하고 지루하기까지 하다.
- 본문 33~34쪽 중에서

새로운 자본주의가 디자인을 전유하는 방식은 무엇보다 경영 담론을 통해서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라 불리든 아니면 신경제, 지식기반 경제라 불리든, 새로운 자본주의는 자신의 경제 현실을 지배할 수 있는(governable) 대상으로 구성하고 재현한다. 이는 투박하게 말하자면 경제 현실을 재현하는 담론적 규칙 혹은 코드를 고안하고 적용함으로써 그것을 지배하고 관리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말하자면 객관적이고 구체적이며 투명한 경제 현실(economic reality)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자신을 지배할 수 있는 것으로, 다시 말해 관여하고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재현되어야 한다.
- 본문 73~74쪽 중에에서

목차
서문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디자인 기상도
몇 개의 의자들을 통해 오늘의 디자인 신을 바라보다
작업실과 회사 사이|네덜란드의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
세계 디자인 아틀라스 1
신경제 체제하의 기업 디자인|브랜드와 로고
디자인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上)
애플 연대기
디지털 건축의 열광과 그 이후|이상과열에서 이상침체로
컴퓨터의 모델링 인터페이스(上)|디자이너 혹은 인조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