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우리 모두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어야 할 인생
그 끝의 슬픔을 아름답고 뭉클하게 위로하는 소설!
2008년 6월, 틸만 람슈테트의 소설 『베이징 레터』가 2008 잉게보르크 바흐만 문학상 대상으로 결정되었을 때, 경연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독일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의 하나인 이 상의 역대 수상작들이 대부분 유머와는 동떨어진 ‘진지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지적인 위트와 유머로 무장한 『베이징 레터』를 들고 나온 람슈테트의 바흐만 문학상 수상은 일대 사건이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집필 중이었던...
우리 모두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어야 할 인생
그 끝의 슬픔을 아름답고 뭉클하게 위로하는 소설!
2008년 6월, 틸만 람슈테트의 소설 『베이징 레터』가 2008 잉게보르크 바흐만 문학상 대상으로 결정되었을 때, 경연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독일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의 하나인 이 상의 역대 수상작들이 대부분 유머와는 동떨어진 ‘진지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지적인 위트와 유머로 무장한 『베이징 레터』를 들고 나온 람슈테트의 바흐만 문학상 수상은 일대 사건이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집필 중이었던 원고의 일부만 공개해서 얻어낸 성과라는 점이다. 경연에 참석한 청중들이 뽑은 인기상까지 휩쓸며 『베이징 레터』는 출간되기도 전에 문학계에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베이징 레터』는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인생, 그 끝의 슬픔을 빼어난 유머와 상상력으로 위로하는 소설이다.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 어안이 벙벙한 채 할아버지의 진짜 인생을 되돌아보는 ‘나’와 할아버지에게 환상적인 인생을 지어주는 ‘나’가 교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유쾌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레퀴엠을 완성한다.
팔천 킬로미터 저편에서 날아온 열한 통의 편지!
우리는 사흘이 멀다 하고 그와 함께 공원묘지를 방문했다. 할아버지는 무덤에서 무덤으로 발을 옮기며 승리를 거둔 듯이 외쳤다. “젊어.” “훨씬 젊어.” “나만큼 살았는데.” (……) 79세 282일, 81세 6일, 88세 129일. 할아버지는 지난 몇 달간 리스트에 오른 몇몇 날짜들을 추월했다. 그럴 때면 그는 지나간 이름들에 줄을 긋고는 부리나케 우리를 불러 모았다. “축하해요, 할아버지!” 우리가 이구동성으로 외치면 그는 손사래를 쳤다. “고맙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아직 멀었구만.” _25쪽
‘나’, 키스 슈타페르페니히에게는 골칫거리 할아버지가 있다. 왼쪽 팔이 없는 할아버지는 젊어서 혼자가 됐고, 엄마의 재혼으로 이리저리 관계가 얽힌 손자손녀 다섯을 키웠다. 세상 무엇에도 거리낄 것이 없이 살아가는 할아버지는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어린 여자들을 집으로 데려와 새 할머니라고 인사시키고 들어앉히지만 그 ‘어린’ 할머니들이 다시 가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점점 짧아진다. 할아버지의 기행(奇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손자손녀들 앞에 할아버지가 막강한 무기처럼 휘두르는 말은 ‘나는 얼마 못 가 죽을 몸이다’라는 것이다. 아무도 그 말을 믿지는 않지만 할아버지의 여든번째 생일을 맞아 ‘나’의 형제자매들은 할아버지가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보내드리기로 한다. 그리고 그 여행에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손자인 ‘내’가 동행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이제 팔십 평생 외고집 인생으로 살아온 할아버지의 꿈은 바로 항공로로 팔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중국’에 가는 것! 그러나 ‘내’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고 중국행이 불가능한 이유들을 들이대도 할아버지는 오로지 “중국”, 시간 약속을 잡을 때도 “그러니까 베이징 시간으로 다섯시 반 말이지?” 하며 막무가내로 중국을 고집한다. 할아버지의 애인이었지만 이제는 ‘나’의 연인이 된 프란치스카와 여행 경비를 카지노에서 하룻밤에 홀라당 날려버리고 나는 거짓말로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혼자 고물 자동차를 끌고서라도 가겠다며 집을 나서고, ‘나’는 식구들에게 할아버지와 함께 떠난 것처럼 보이려고 정원 창고에 숨어 지낸다.
며칠 뒤 ‘나’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베스터발트에서 걸려온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여권도 신분증도 없이 나간 할아버지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으니 와서 시신을 확인하라는 것. 할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중국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소식과 백 살까지는 너끈할 것 같았던 그의 사망 통보에 ‘나’는 참담함과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하여 ‘나’는 모두가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기 위해 식구들에게 ‘중국에서 보내는 열한 통의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할아버지와 중국에서 얼마나 흥미진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에 대하여.
‘나’의 상상 속에서 할아버지는 베이징, 상하이, 시안, 뤄양, 빙마융 등 중국의 대도시와 명소들을 활보하고,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뚱뚱한 여자 리안과 사랑을 나누는 유쾌하고 용감한 남자로 다시 태어난다. 끝내 가지 못했던 팔천 킬로미터 저편에서 서커스처럼 박진감 넘치고, 동화처럼 아름다운 할아버지의 삶이 다시 시작된다.
엄청나게 웃기고, 슬프고, 특별한 이야기!
‘5월 15일, 베이징에서’로 시작해 ‘5월 25일, 중국에서’로 끝나는 열한 통의 편지 속에서 ‘나’와 할아버지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일들을 겪는다. 그들은 뒤로 가는 시계 같은 별의별 시계가 다 있는 시계 박물관을 가보고, 길가에 쫙 깔린 불법복제 DVD도 잔뜩 주워 담고, 넋을 놓고 중국 서커스를 관람하거나, 수천 년 전통의 중국 의술을 터득한 명의(?)로부터 공짜 진료도 받고, 시중에선 구할 수도 없다는 호랑이 발톱이 든 앰풀을 얻고 흐뭇해하거나, 진시황의 유적지인 빙마융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기도 한다. 이 모든 에피소드 중 ‘월드 센세이션 리안’과의 로맨스는 감동적으로까지 읽힌다. 이 부분에서 ‘나’는 할아버지가 왼쪽 팔을 잃게 된 사연을 상상으로 재구성한다.
“리안은 죽었다.” 할아버지가 마침내 말했어. “원체 오래된 일들이라, 혹시 내가 지어낸 얘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구나.” 할아버지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어. “손에 잡힐 만큼 뚜렷하게 기억하면 좋으련만, 이해하겠니?” 리안과 작별할 시간은 고통스러울 만치 빠르게 다가왔다고 해. 물론 두 사람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 그래서 그 시절을 기억할 만한 물증이 없는 거래. 연애편지도, 고수머리도, 마른 감자껍질도, 밥을 함께 보냈던 강가의 조약돌도 남아 있지 않아. _194쪽
할아버지는 전신에서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어. 힘줄과 근육이 끊어지는 것 같았대. 리안이 뭐라고 소리를 질렀어. “놓으시래요.” 순간 건너편에서 어린애 목소리로 변한 후가 외쳤지. 할아버지도 외쳤어. “절대 이 여자를 놓지 않을 거요.” 곡예사들이 온 힘을 다해 할아버지를 당겼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의 몸은 여전히 디딤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어. 리안이 다시 그를 향해 외쳤어. “이제 그만 놓으시랍니다.” 후가 통역을 했지. “어차피 자기는 죽는다고요.” “나도 그래요.” 할아버지가 대답했어. _215～216쪽
현실이 버거울 때 우리는 그 버거움을 희석시켜줄 만한 ‘거리’와 상상의 개입이 가능한 ‘자유로운 공간’을 필요로 한다. ‘나’, 키스에게 팔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중국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동시에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상상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한 상상, 한 유머 하는 작가 틸만 람슈테트!
잉게보르크 바흐만 문학상 대상과 인기상을 동시에 수상한 그는 47편의 후보작 중 47위를 했어도 만족했을 거라고 겸손한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 겸손함이 진심이라는 건 그의 소탈한 언어 선택을 보면 알 수 있다. 특정한 작품을 특정한 장소, 실제 사건이 일어났거나 진행 중인 현장에서 썼다고 강조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틸만 람슈테트는 자신의 소설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곳에 전혀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베이징 레터』를 쓸 때 자료 삼아 달랑 가이드북 두 권을 구입했다고 한다. 그나마도 한 권은 글씨가 깨알 같고 텍스트도 너무 복잡해 한쪽으로 치워버리고, 소설 끝에서 밝혔듯 『론리 플래닛―중국편』 한 권만을 참고로 이 소설을 완성했다. 그럼에도 그가 바흐만 문학상을 수상한 후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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