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토를 무시한 농업은 사람을 망하게 한다”
조선 농민에게 전통 농법 배운 최초의 일본 농학자

“농업은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근대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 전통을 무시하면 오히려 쇠퇴할 뿐 아니라 환경을 파?괴한다. 풍토를 무시한 농업은 지속될 수 없다. 지속되지 않는 농업은 망한다. 그러면 사람도 망한다. 다카하시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조선 농업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세계화와 환경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 전통농법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융화하며, 때로는 자연을 재생한다. 농업이 지속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가와타 히로시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토지조사사업, 그 속에서 조선의 전통 농법을 지지한 학자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토지를 빼앗기 위해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토지조사 사업이었다 .
이들은 조선의 전통 농법을 전근대적이라 규정하고 이를 바꿔 조선을 일본의 식량공급기지로 만들 목적으로 권업모범장을 설립했다. 도쿄 제국대 농과대학을 졸업한 일본의 다카하시 노보루는 선진 농학으로 뒤처진 조선의 재래농법을 개량하기 위해 권업모범장에 부임했다 .
그러나 막상 조선에 와서 보니 전근대적이라 생각했던 조선의 농법이 사실은 비가 적은 조선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개량된 매우 합리적인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다카하시는 조선 전 국토를 걸어 다니며 농법, 농기구, 농민생활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평생을 조선 농법 연구에 바친 최초의 일본 농학자인 다카하시는 귀국 후 수집한 자료정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 농학자의 업적을 다시 되새긴다
다카하시 노보루는 도쿄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일제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에 부임하여 광복 후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약 26년간 한국의 농법을 깊이 있게 연구하여 근대 농업사에 많은 기여를 한 농학자다. 그럼에도 오늘날 소수의 농학자들 이외에는 그의 연구 업적을 아는 이가 극히 드물 뿐 아니라, 연구 업적을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그의 삶과 신념에 대해 아는 이가 거의 없다.
다카하시는 풍토風土라고 표시한 오늘날의 환경 중심의 ‘경험농학’을 중시한 과학자였다. 농산물은 환경의 산물임에도 일제는 환경이 전혀 다른 일본의 농법을 한국 농업에 그대로 이식코자 1906년 수원에 농사연구기관을 개설할 때도 ‘시험장’이라 하지 않고 ‘모범장’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나 다카하시는 일제의 농사 연구 방침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한국의 농업환경을 바탕으로 수백 년간 한국인이 경험적으로 발전시켜온 한국의 농법을 가장 합리적인 농법으로 보고 앞으로 새로운 농업 연구는 기존의 한국 농법을 이해하고 이를 출발점으로 해야 한다고 인식한 사람이다. 그와 같은 인식은 그의 전임자였던 권업모범장 서선지장장인 다케다 소시치로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다케다는 황해도 지방의 2년3작 작부방식이 세계 제1의 토지이용방식이라고 다카하시에 일러주기도 했다. 이 같은 그의 농학사상을 이 책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전 국토를 돌며 한국 농법을 그대로 기록한 열정
다카하시는 당시까지 한국농법을 발전시켜 온 과거의 농법을 이해하고자 관찬官撰으로 1429년에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 1655년의 《농가집성農歌集成》, 1700년대의 《산림경제山林經濟》 등 기존의 한국 농서書를 섭렵하는 한편, 당시에 관행된 한국의 농법을 밝히고자 한반도와 제주도까지 방방곡곡을 답사하며 현지의 농법을 조사하여 후일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이라는 대작이 출간될 수 있도록 초고본을 작성했다. 우리나라 농학자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다카하시의 연구 내용은 비단 1930년대 한국의 농법을 조사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농민생활(의식주)의 실상이나 전통적 농기구, 농민의 식품, 밥상 차림과 모식도模式圖 등까지도 기록함으로써 인접학문인 민속학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도 적지 않은 참고가 될 것이다.

다카하시 노보루(高橋 昇, 1892~1946)는 어떤 사람인가?
1892년 12월 23일 후쿠오카 현 야메 군 고쓰마에서 가케하시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 도쿄 제국대학 농과대학(농학부로 개명)을 졸업하고 다음 해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에 부임했다. 그는 일본의 선진 농학으로 뒤처진 조선의 재래농법을 개량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막상 조선에 와서 보니 뒤처졌다고 생각했던 조선의 재래농법이 오랜 세월에 걸쳐 개량된 매우 합리적인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다카하시는 틈나는 대로 조선 농업의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라기보다 배운다는 자세로 북쪽으로는 평안도와 함경도의 화전지대부터 남쪽으로는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조선 전국을 다니며 농법, 농기구, 농민생활을 조사하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며 기록했다. 그는 애용하던 라이카 카메라로 찍은 조선 농업 관계 사진만 500장 이상을 남겼다. 그러나 자료 정리가 미처 끝나기 전에 일본의 패전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다카하시는 일본에 온 지 두 달 만인 1946년 7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추천사·김영진 한국농업사학회 명예회장 _ 4
한국의 독자들에게·우장춘과 다카하시 노보루의 만남 _ 11
들어가며·작물은 사람이 만든다 _ 17
프롤로그· 아들 고시로의 기억 _ 20

제1장 지쿠고의 산하
소년? 시절 _ 34
아오키 우시노스케의 영향 _ 44
황무지 개간 _ 53
농학자의 길 _ 59
도쿄 제국대학 농과대학 시절 _ 63

제2장 조선에 오다
3·1독립운동 이후 조선 _ 70
까치 _ 81
수원 권업모범장 시절 _ 87
다케다 소시치로와의 만남 _ 95

제3장 구미 시찰여행
미국의 농업 _ 106
감자 왕 _ 112
미국 농업 시찰 _ 117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의 연구 활동 _ 125
미국의 배일운동 _ 128
유럽으로 _ 132

제4장 황해도 사리원 시절
오치아이 히데오의 기억 _ 142
서선지장장 다카하시 노보루 _ 154
농학 박사학위를 받다 _ 160
사리원의 나날 _ 169

제5장 농업실태조사
한국 농촌의 사정 _ 180
한 손에 소주 들고 _ 190
조선 농업의 근본 문제-화전과 소작 _ 199
기술을 응축한 경작방식 _ 206
중국 농업 시찰 _ 211
다카하시를 둘러싼 사람들 _ 221

제6장 일본의 패전과 조선의 독립
일본인과 조선인 _ 246
8월 15일의 다카하시 노보루 _ 252
조선 재건은 농업에서부터 _ 262

제7장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을 출판하기까지
원고의 발견 _ 272
조선 농업시험장 사람들 _ 276
출판을 위해 _ 286
이이누마가 참여하다 _ 291
마침내 완성 _ 297

에필로그 _ 304
다카하시 노보루의 조선 농업실태조사 주요 지역 지도 _ 309
다카하시 노보루가 기록한 농업실태조사 일정 _ 310
참고문헌 _ 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