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알베르티나미술관 컬렉션展이다. 알베르티나미술관은 세계적으로 하나뿐인 독자적인 그래픽 아트 컬렉션을 보유한 미술관으로, 중세미술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100만 점 이상의 판화, 드로잉 및 서양미술사에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이번 전시는 유럽의 19세기 말에서 20세기까지 피카소를 비롯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통해 서양미술사의 주요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전반은 역사상 가장 변화가 심한 시기였다.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이 치열해지고,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등 인간의 비인간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졌다. 또한 물질주의가 만연하고 도시가 팽창하여 빈민이 늘어나는 등 전통적인 가치 파괴에 대한 반성과 우려의 분위기가 크게 대두되었다.
이 시대를 살았던 유럽의 작가들은 고독과 열정으로 그들의 삶과 세계를 인식하였다. 무의식 깊숙이 숨겨져 있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충만감과 공허함 사이를 반복하면서 서구인들은 창작의 원천을 고뇌가 묻어나는 삶의 인식에서 찾았으며,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미술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처럼 예술 작품의 거침없는 표현력은 20세기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나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역사상 전환점이나 정신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예술가들은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시대상을 전달하였다. 바로 인간에 대한 다각적인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단순한 개인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새로운 인간’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마순자, 「표현주의 회화에서의 인간표현 : 초상화를 중심으로」,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4, 서양미술사학회, 1992, p.25

20세기 전반은 회화사에 있어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였다. 미술사의 주요 사조들이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특히 프랑스의 야수파와 독일 표현주의는 감성과 열정으로 20세기를 열었다. 이들 사조로 색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이입이 가능해졌으며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통찰력으로 인해 사물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이 교정되었다. 즉 대상이 ‘어떻게 보이느냐’라는 사실적인 재현의 문제에서 대상을 ‘어떻게 보느냐’라는 주관적인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비로소 회화는 대상과 자연에 종속되던 한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독자적인 가치와 자율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20세기 미술의 시작이며 현대미술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모방과 재현에서 벗어나 주관을 중시했던 20세기 미술을 중심으로 서양미술사의 대표적인 작가 39명의 회화, 조각, 드로잉 121점이 전시된다. 전시는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내면을 향한 열정’으로 모네?시냑의 작품에서 시작하여 야수파와 샤갈의 작품이 중심을 이룬다. 우선, 빛에 의해 인식되는 시각적인 자연의 모습을 빠른 붓터치로 화폭 위에 구현한 모네의 작품과 수직, 수평의 구도로 색을 체계적으로 분할하여 색점으로 표현한 시냑의 작품이 출품된다. 야수파에 이르러서는 색채를 단순히 시각을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원색 등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색 자체가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목적이 된다. 야수파의 작품에서는 원근법과 정확한 데생 등이 무시되고 짤막하거나 길고 대담한 선, 자유로운 구성을 통하여 자연이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에 의해 재창조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어느 화파에도 속하지 않았던 샤갈은 노랑?파랑?빨강의 색조를 더 한층 깊이 있게 부드러움으로 정제하여 삶의 기쁨, 희망과 평화를 나타내고 있다. 유년 시절의 경험, 러시아의 민속 주제와 유대인의 성서 등에서 주제를 찾아 신을 향한 경배와 인간의 구원적인 삶을 환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시대의 불안’이다. 이 당시 독일의 급격한 산업화와 물질문명에 반대하여 인간의 사회적?심리적 의식과 인간성 회복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다. 왜곡된 이미지로 인간의 절망을 표현한 뭉크 등의 영향을 받아 1905년 드레스덴의 다리파(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화가들은 회화나 조각?목판?포스터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그들의 불안과 열정을 형상화하였다. 자연 속의 인간의 모습을 그리거나, 거리나 카바레 등 도시를 배경으로 동시대의 우울한 병적인 정신 상태를 표현하였다. 이들 작품의 야만적이며 불건전한 분위기는 인간의 형체가 왜곡, 과장된 데서 유래하며 강렬한 원색들은 조화되기보다는 충돌하고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들의 작품은 시대적 자각과 당시의 불안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역할을 담당한 반면, 한편으로는 이국적인 원시성을 추구함으로써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20세기 초 독일 드로잉들이 최초로 공개된다. 이 당시 다리파 작가들에게 드로잉은 단순한 예비 단계가 아닌 독자적인 회화 장르였다. ‘15분 누드’라는 말은 드로잉을 시작해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15분이면 충분하다고 할 정도로, 이들에게 작가의 감정과 기질을 표출하는 직접성과 즉흥성은 매우 중요시되었다. 다리파 화가들은 함께 공동생활?공동작업을 하며 미술과 생활의 결합을 도모하였고, 공동전시를 개최함으로써 대중과의 소통을 꾀하기도 하였다.

셋째, ‘순수 조형의 추구’로 독일의 청기사파와 프랑스의 들로네 등 오르피즘 작가들과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품들이다. 뮌헨을 중심으로 한 청기사파는 어떻게 작가의 내적 감정이 새로운 회화 형태로 실현될 수 있는가를 실험했던 화가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동물을 표현함으로써 자연과 순수의 상징을 나타내거나, 새로운 조형언어를 표현함으로써 정신을 강조하여 물질적 진보로 야기된 세상의 불균형을 시정하고자 하였다. 오르피즘은 둘 혹은 그 이상의 색채들을 동시적으로 지각하게 하는, 리듬감 있는 동시성의 표현을 통해 색채를 통한 순수 조형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20세기 초반 사회적 변혁과 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전위적인 유럽 미술사조의 영향을 받았으나 발전적이고 독자적인 새로운 예술관을 성립하였다. 이 예술가들은 미학적 예견자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사회의 변혁을 미술가의 임무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추상의 움직임은 전쟁 후 새로운 조형 운동의 중심지로 등장한 바우하우스로 계승된다.

넷째, ‘고뇌와 열정’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카소?자코메티를 비롯한 20세기 후반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피카소는 20세기 서구 화단을 지켜 온 현대미술의 증인으로, 모더니즘 회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변화무쌍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쳐 나갔다. 이번 전시에는 청색시대와 1940-50년대 작품들이 출품되어 인간 심리의 내면세계 및 잠재의식의 세계를 표현적 왜곡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고독한 영혼의 모습으로 단순한 화면 처리와 애수의 분위기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성립한 모딜리아니, 집요한 자기 응시로 세상 속에 던져진 인간의 불안을 극대화하고 고독자로서 재현한 자코메티의 작품들도 출품된다. 그리고 비가시적인 꿈과 환상을 무의식에서 찾아 기호를 통해 나타낸 호안 미로와, 자연을 근본적인 원형原形으로 보고 단순성과 유기적인 형태로 표현한 한스 아르프, 1980년대 이후 그 전에 터부시해 오던 서술성 이미지로 복귀하여 시대적?정신적 상황을 인물이나 자연의 이미지를 빌어 내면세계를 표현한 바젤리츠와 뤼페르츠의 작품도 출품된다. 이들은 때로는 무의식에서 또는 인간과 자연에서 소재를 찾고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표면에서 내면으로,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정신으로 향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노버트 린튼은 “모든 예술은 작가와 그 작가가 처한 상황의 표현이며, 그 중 특히 감정이나 정서적 메시지를 방출 또는 전달하는 시각적 제스처를 통하여 우리를 감동시키고자 하는 예술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표현주의 미술’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표현주의 미술이란 단지 하나의 사조에 머무르지 않는다. 진실되고 위대한 미술작품은 시대를 관통하여 어떠한 주제나 형식을 통해서든 그가 사는 시대의 정신과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19세기 말, 20세기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의 주요 작품들과 또한 미공개되었던, 100년도 더 지난 독일 작가들의 생생한 드로잉을 통해 예술가들의 뜨거운 열정과 철저한 고독을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는 전시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