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설악산 화가’ 김종학의 그림 세계를 읽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1년을 여는 첫 기획전으로 ‘설악산 화가’ 김종학의 대규모 회고전을 마련했다(6월 26일까지). 언론과 애호가들의 관심이 뜨거울 뿐 아니라, 전시장도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구상회화 작가로 인정받는 화가의 위상과, 그림 시장에서도 단연 블루칩으로 손꼽히는 김종학 작품의 인기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 것. 김종학의 작품세계에 대한 관심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즈음에 때맞춰, 그 감상과 이해를 도울 반가운 책이 출간되었다. 『김종학 그림 읽...
‘설악산 화가’ 김종학의 그림 세계를 읽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1년을 여는 첫 기획전으로 ‘설악산 화가’ 김종학의 대규모 회고전을 마련했다(6월 26일까지). 언론과 애호가들의 관심이 뜨거울 뿐 아니라, 전시장도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구상회화 작가로 인정받는 화가의 위상과, 그림 시장에서도 단연 블루칩으로 손꼽히는 김종학 작품의 인기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 것. 김종학의 작품세계에 대한 관심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즈음에 때맞춰, 그 감상과 이해를 도울 반가운 책이 출간되었다. 『김종학 그림 읽기』는 그림과 더불어 글과 이야기로써 김종학 예술인생과 작품세계를 좀더 깊고 넓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회화 작가, 김종학
화려한 색채와 대담한 붓질로 자연의 내밀한 기운을 드러내다
설악의 사계, 꽃무리 그림으로 유명한 서양화가 김종학(1937년~)은 화려한 색채와 대담하고 분방한 표현으로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을 캔버스에 폭발시키듯 드러냄으로써 첫눈에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평단보다 그림 애호가들의 마음을 먼저 사로잡으면서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음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작품은 쉽고 친근하며 힘과 생명력이 넘친다. “누구나 좋아하는” 자연을 소재로 삼았고, 그것을 구상과 추상, 동양화와 서양화의 특색이 어우러진 방식으로 표현해 내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최근 현대미술이 좀처럼 갖추지 못한 미덕인 친밀함과 자연의 원시적 생명력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돌려 말함은 없다. “봄에는 봄을, 여름에는 여름을, 가을에는 가을을, 겨울에는 겨울을 그렸습니다”라는 화가의 말처럼.
김종학은 국내에 현대미술이 도입되던 때, 화단을 압도한 추상회화의 도저한 흐름에서 걸어 나와 설악산에 칩거했고, 그때부터 30년 넘게 설악의 자연을 그리고 있다. 당시 서양화단에서 추상을 떠나 구상, 게다가 꽃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타락’에 가까웠다. 그는 ‘이발소 화가’로 전락했다는 수군거림도 무시하고, 무섭게 몰입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꽃을 그리고 나비를 그리고 나무를 그리고 냇가, 폭포 등을 그리는 것은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아니 수천 년 좋아하던 대상을 그리는 것에 지나지 않아도 그걸 그리면 타락한 화가로 여기는 20세기 회화에 반발하는 의미도 있단다. 무엇을 그릴까 무척 고민도 했었다. 추상부터 시작해서 다시 구상으로 왔지만, 추상의 기초를 둔 새로운 구상이지. 엄밀히 말해서 추상적인 뒷받침 없이 그리는 사실화나 구상화는 좋은 그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딸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본문 104쪽)
앵포르멜 미술에서 시작해 당대의 전위적 실험을 두루 거친 그의 미술 이력은 우리 민예품에 대한 탐미 취향과 더불어, 구상으로 돌아간 그의 그림이 특별한 개성과 뛰어난 구성력을 지닐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된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김종학의 그림이야말로 “회화가 위축되어 가는 시대에 다시 만난 가장 회화다운 회화”라고 평가한 바 있다.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구성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에는 민화적 상상력까지 가미된 데다, 무엇보다 작가의 넘치는 예술적 기운으로써 자연의 내밀한 에너지를 끌어내 폭죽처럼 터뜨리는 신명이 담겨 있다.
김종학의 ‘달리 배우기’를 따라가는 여정
『김종학 그림 읽기』는 화가가 영위한 생활·문화적 배경, 삶의 궤적과 생의 질곡, 미술 공부와 스타일의 변모, 예술적 탐미 행각 등을 두루 살피며 그것들이 어떻게 김종학의 작품 세계를 직조해 나갔는지를 살핀다. 책은 기존의 작가론과 달리 연대기적 구성을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산경, 수경, 소나무와 꽃 그림, 인물화 등 김종학이 즐겨 다루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저자는 작품에 대한 해설과 나름의 감상을 풀어 놓으면서 동시에, 김종학의 그림 세계와 인연이 닿는 동서고금의 조형세계에도 적잖이 눈길을 준다. 겸재 정선, 능호관 이인상, 이중섭, 장욱진 등 국내 작가와 세잔, 고흐, 몬드리안 등의 외국 작가들, 우리 민화와 민예품으로부터 김종학이 어떤 ‘달리 배우기’를 이뤄냈는지를 면밀히 살핌으로써 좀더 입체적으로 화가의 작품세계를 감상할 수 있게 돕는다.
책에는 김종학의 대표작들을 비롯해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소품들, 자필 편지, 스케치, 사진 등을 포함한 도판 100개가 실려 있고, 저자가 화가와 30년간 교유해 오며 나눈 여러 생각과 에피소드가 풍부하게 담겨 있어 책의 가치를 더한다.
김종학이 꽃을 만난 것은 1979년 10월, 서울을 떠나 설악 산자락에서 살기 시작하면서다.
“… 내가 화가로서 성공 못했고 가족한테 내쫓겼고 이제 내가 사느냐 마느냐 그러한 고비에 있었을 때 내가 한번 폭포에도 갔드랬어요. 그냥 뛰어내리면 그만이다. 그랬는데 그때 아들, 딸이 생각이 나데요. 아버지가 화가라는 사람이 적어도 백 점의 작품은 남기고 죽었어야 아버지 노릇을 한 건데 내가 꼽아 보니까 백 점이라는 그림은 못 남겼더군요.”
(…)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꿈꾸는 낙원처럼 아름다운 낙원이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을 상실하고 만 지극히 슬픈 마음에서 만난, 설악산 국립공원 들머리 방천 가에 피어난 달맞이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마음은 비감하기 비길 데 없는데, 하늘엔 별이 빛나고 땅은 달맞이꽃이 지천이었다. 그런 풍경이 그의 예술혼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_102쪽, 중에서
주제의 추상화 과정은 ‘벼락같이’ 진행하는 김종학의 작업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빨리 그려야 작품이 좋지, 너무 많이 생각하고 천천히 그린 그림은 잘 안 되는구나”하고 딸에게 털어놓듯이, 빠른 붓질에서는 대상의 골격만 남고 세부는 걸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 김종학은 설악산 주변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유심히 바라봄으로써 자연을 익힌다. 어쩌다 데생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마음속에 자연을 새겨 넣는 방식이다. 작업할 때 그려 온 데생을 옆에 두거나 그림 제작에 참고하겠다고 꺾어 온 야생화 다발을 물병에 꽂아 놓기도 하지만, 구색으로 옆에 둘 뿐 별로 거기에 곁눈질하는 기색이 아니다. 마음속에 화상이 떠오르면 금방 마르는 아크릴 물감을 튜브째 짜 바르면서, 특히 소품일 경우 벼락처럼 그림을 해치우곤 한다. _173쪽, 중에서
관심사는 오로지 세상 조형의 아름다움을 좇는 데 있다. 그는 매일 만나는 설악의 자연과 근현대 조형물은 말할 것 없고, 특히 우리 전통 민예품에 담긴 아름다움을 살피는 데 넋을 잃는다. 그렇게 몰입하는 도정에서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왕의 관념에 갇히지 않는 독자적 새 경지를 찾는 데 혈안이다. (…) 어느 하루 아무리 진기한 아름다움을 만났다 해도 거기서 누리는 감동의 떨림은 또 다른 감동을 찾도록 부추길 뿐이다. 감동을 찾아 나선 행보는 언제나 화가의 성에 차는 법이 없는 갈증인 것이다. 그런 시간이면 다시 설악의 산야를 누빈다. _217~219쪽, 중에서

목차
글머리에
1. ‘따라 배우기’와‘달리 배우기’
2. 설악 산경
3. 설악 수경
4. 눈밭 위 늘푸른 솔
5. 꽃을 그리는 남자
6. 사람도 꽃
7. ‘고프’김종학
8. 몰입과 탐미의 여정
글 끝에
주석
김종학 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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