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신앙이 넘쳐나는 시대에
무쇠 솥에서 끓여낸 곰국처럼 깊이 있는 신앙인을 만나다

저자는 청파교회 담임 목사이자 문학평론가이면서 들꽃과 손바닥만 한 구름 속에서 인생의 섭리를 찾아내 사람들에게 설교로, 글로, 삶으로 들려주는 일상순례자이기도 하다. 감리교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7년부터 청파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다. 청파교회는 서울역 뒤 켠, 백여 년 전 가난한 민중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설립된 교회다. 길가에 나지막하게 서 있는 교회로 들어서면 오래된 나무향이 가득해 마치 백 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 듯하다. 도심 속에서 꼿꼿하게 신앙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청파교회는 교회와 세상 모두에게 깊은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꼿꼿하지만 겸손함을 잃지 않는 김기석 목사의 모습도 이런 교회 분위기와 닮았다. 시인 고진하 목사는 그를 “무쇠 솥에 천천히 불을 지펴 푹 고아 낸 곰국 같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삶에 깊이가 있고 편안함을 간직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는 삶으로 번역되지 않은 신앙 고백은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는다며 실천적인 삶과 영성을 강조한다. 이는 그의 글과 설교, 삶 속에 오롯이 녹아 있다. 그의 실천적인 영성은 교회와 세상에까지 영역을 넓혀 간다. 우선 매주 토요일 청년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하며 인문학과 신앙, 그리고 삶을 연결하는 법을 찾도록 돕는다. 신앙 서적은 물론 인문학 서적들도 함께 읽는다. 독서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 시간을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어지고 성경의 세계와 훨씬 가까워진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독서 열기는 교회의 어린이도서관으로 이어진다. 삼백 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어린이도서관은 일주일에 육백 권의 책이 대출될 만큼 활기 있게 운영이 되고 어린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며 판단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고 있다.
김기석 목사는 생태와 환경을 살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청파교회 교인들은 매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데 어느 누구도 밥을 남기는 사람이 없다. 또 일주일에 한번은 육식을 금하여 몸과 생태를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기도 한다. 그리고 청파교회 옥상에는 햇빛발전소가 세워져 있다. 서울의 교회 중에서는 최초로 세웠다고 한다. 작은 발전소이지만 이 발전소가 줄이는 이산화탄소량은 30년 된 아름드리나무 200그루와 맞먹는다. 김기석 목사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는 사명 의식을 가지고 사람과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산티아고에만 순례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참된 변화는 일상이 순례길이 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 책은 김기석 목사가 일상에서 길어낸 소중한 삶의 방편들을 기록한 것으로서 우리가 ‘밖’에서만 구하려고 하는 삶의 의미와 변화를 ‘안’에서 구하도록 생각과 마음을 깨우친다. 많은 이들이 순례길을 떠난다. 초라하고 묵은 일상을 털어버리고 새로 시작할 힘을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언젠가는 일상으로 돌아와 묵묵히 삶을 살아내야 한다. 저자는 다른 시간, 다른 장소가 아닌 지금의 일상을 정성껏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순례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증명해낸다. 일상은 초라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풍요로움이 숨어 있다.
일상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반성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는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야말로 멀리 떠나지 않고도 우리 삶을 의미와 변화로 채울 수 있는 방법이다. 삶이 이루어져야할 마당은 적막한 산기슭이 아니라 온갖 소음으로 진동하는 일상이다.

“일상은 우리 어깨에 나 있던 날개를 자르는 가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우리 삶에서 빛을 앗아가는 어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은 때로는 늪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 발을 붙들기도 한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이국적인 풍경을 만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일상을 벗어난 자리에서 자기를 돌아보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 가더라도 결국은 일상의 자리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삶이 이루어져야 할 마당은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11쪽)
요즘 방송을 통해 조용필 씨의 옛 노래가 다시 들려온다.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이 책 또한 멀리 떠나려고 애쓰기보다 일상의 매순간을 깊은 통찰 속에서 살아내라고 격려한다. 잠을 잘 때는 깊이 자고, 밥을 먹을 때는 고마움으로 먹고, 일할 때는 정성껏 하고,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는 공들여 경청하고, 놀 때는 신명나게 놀 때 삶은 제 모습을 회복한다.

일상의 하루하루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사람은 이미 아름답다

김기석 목사는 일상을 들여다보아 밑줄을 긋고, 당연함과 해묵은 원칙들을 낯설게 해 나와 우리, 세상을 새롭게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답 없는 삶을 살고, 길 없는 길을 걸어야 하는 우리에게 그는 ‘당연’의 세계와 ‘물론’의 세계에 길들지 말고 오히려 그 세계에 소송을 거는 삶을 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볼 뿐 아니라 타인과 끝없이 소통할 것을 당부한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라고 고백한다. 또한 양파는 겨울 한파에 매운맛이 들고, 감은 여름 땡볕을 제대로 견뎌야 단맛을 그득 품게 되는 것처럼 사람도 아파보고, 외로워 보고, 넘어져봐야 아프고, 외롭고, 넘어진 사람들을 일으키고 위로할 수 있기에 그런 삶을 같이 살아가자고 독려한다.
그의 글은 단호하게 때로는 가슴 먹먹해질 정도로 따뜻하게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또한 철저한 자기반성, 편협함을 버리고 세상을 부둥켜안는 따뜻함, 앎에서 그치는 신앙을 넘어 삶으로 실천하는 신앙, 불의 앞에서 굴하지 않는 용기는 그가 일상의 순례를 통해 건져 올린 보석 같은 진리들이다.

“우리는 가끔 멈추어 서서 걸어온 자취를 돌아보아야 한다. 영혼이 왜 이리도 팍팍하게 되었는지, 작은 자극에도 왜 그리 성마르게 반응하며 사는지, 세상의 아픔에 대해 어쩜 이리도 둔감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출세를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우리는 고요함을 잃었다. 흐르는 물에 얼굴을 비춰 볼 수 없는 것처럼 고요함이 없는 마음에 하늘은 비치지 않게 마련이다. 그리고 고요함의 오아시스에서 기쁨과 치유의 샘물을 맛보았다면 이들은 또 다시 광야를 향해 떠나야 한다. 그것이 생명의 리듬이니까.”(30쪽)

인생의 짐이 버거울 때 일상이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걸어라

저자는 삶이 힘겨울 때마다 성경과 문학, 사람과 자연, 지성과 영성에게 길을 물었고, 삶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과 지혜의 언어들을 배웠다. 그리고 그 길을 우리도 함께 걸을 수 있도록 이정표를 세워두었다. 마땅히 가야 할 곳을 알지 못할 때 삶은 정처 없음이 되지만, 가야 할 곳이 분명할 때 삶은 순례가 된다. 그가 보여주는 이정표를 따라 천천히 걷는 동안, 이제까지 무의미하게 지나쳤던 시간과 사람과 자연 속에서 신의 형상과 희망을 발견하고 삶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일상은 조금도 특별할 것 없는 삶의 순간이요 자리이다. 자고, 깨고, 먹고, 입고, 일하고, 사랑하고, 때로는 다투는 것. 삶은 일상의 점철이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바다를 모르듯, 일상은 우리가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사는 바다와 같다. 하지만 물고기가 바다를 떠나 살 수 없듯, 소소한 일상을 떠난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덤덤함과 담담함이 일상의 풍경이다. 일상은 짜릿하지 않다. 우리를 흥분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주목받지 못한다. 하지만 일상의 담백한 맛이야말로 모든 맛의 뿌리이다.”(11쪽)

들어가는 말

1부 나를 들여다보다

일상, 그 마음의 닻
흔들려도 괜찮다
그곳에 샘이 있었네
침묵 속에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
고요함의 오아시스
착한 노래가 듣고 싶다
성스러운 반역자들
곧든 굽든 넓든 좁든 하나로 만난다
순례의 길 위에서
무르익은 사람
떨고 있는 문풍지처럼
참사람을 기다리며
불온한 사람이 그립다
마지막 인간을 넘어
첫사랑을 생각하다
일사분란을 경계하라
소멸과 불멸
대롱으로 보는 세상을 넘어

2부 나의 세상을 넘어 우리의 세상으로

저 서늘한 그늘처럼
사랑을 느낄 때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고생 만앗지야”
인류 대표로 서다
감동을 주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
선물이 된 사람
문자를 깨야 영이 뛰논다
행동하라는 요구
색칠해진 새
내 고향 가고 싶다
타자를 상상하다
봄의 사람을 기다린다
어느 울보 목사의 순례기

3부 세상을 사랑으로 돌보다

야훼 라카민
허물없는 세상의 꿈
어머니가 계시는 세상은 따뜻하다
시간이 촉박하다
얼음 운동회
평화를 위해 아파하라
우리가 자녀에게 들려줄 이야기
도도새의 날갯짓
질서와 혼돈 사이
내 혼의 문신
청년들이여, 저 북소리를 듣는가?

맺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