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1993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한 김진완의 두 번째 시집 『모른다』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 『기찬 딸』 이후 5년 만이다. 첫 시집에서 “슬픔과 한이 웃음으로 변주되는 일상적 순간에 대한 탁월한 포착”으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약자의 자기초월적 승리의 결과”(김춘식, 「해설」)를 이루었다면, 이번 시집은 “한결 거친 날것 그대로의 언어로 우리의 정서에 육박해”(이경수, 「해설」)온다. 이번 시집에는 화려한 말놀이와 수사들로 빼곡한 작금의 시단에서 사라져가는 육성 언어를 기반으로, 정제된 시어가 표현하기 힘든 우리 고유의 질박한 정서...
1993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한 김진완의 두 번째 시집 『모른다』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 『기찬 딸』 이후 5년 만이다. 첫 시집에서 “슬픔과 한이 웃음으로 변주되는 일상적 순간에 대한 탁월한 포착”으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약자의 자기초월적 승리의 결과”(김춘식, 「해설」)를 이루었다면, 이번 시집은 “한결 거친 날것 그대로의 언어로 우리의 정서에 육박해”(이경수, 「해설」)온다. 이번 시집에는 화려한 말놀이와 수사들로 빼곡한 작금의 시단에서 사라져가는 육성 언어를 기반으로, 정제된 시어가 표현하기 힘든 우리 고유의 질박한 정서를 곡진하게 묘파해낸 51편의 시가 총 4부로 나뉘어 실렸다.
엄숙주의와 허위 가득한 세상을 향한 통쾌한 웃음의 시학
김진완 시의 내밀한 곳에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서사’가 존재한다. 이 시대의 급류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가족’과 ‘전통’을 육성의 언어로 되살린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묵은지 궁둥내”(「뼈마디가 실한 이유」) 같은 토속적인 냄새를 선사하는가 하면, 때론 그로테스크한 “육젓” 냄새(「물명당 이야기」)로 전통에 대해 둔감해진 우리 후각을 자극해온다. 그렇게 시인이 마련한 공간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경상도 방언이 난무하는 한 가계의 이력과 풍경을 맞닥뜨리게 된다.
할머니 백일기도 끝에 낳은 큰아들(34년생 개띠. 심약한 나의 아버지)께서는 관 뚜껑에 연장이 닿는 순간, 차마 못 본다며 비탈을 내려가 무섬증에 오금을 꽈악, 깨물린 ‘허어이 참, 백지장 첨지’였을 터, 기가 센 둘째(작은아버지. 16세에 단신 상경. 자수성가한 세탁 기술자. 전성기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양복까지 다려본, 해서 박통 터지게 돈을 긁어모았던 세탁업계의 전설적 인물)는 앙다문 인중에 선명한 세로 주름 하나는 더 늘었을 것인데. _「물명당 이야기」 부분
할머니 유골을 수습해 이장하는 장면을 묘사한 이 작품은 김진완 시세계가 어디에 근간하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본주의 도시 문명 속에서 억척스레 땅 밑을 파헤치고 “합리와 이성과 논리로 통제되지 않는 다른 세계”, 즉 “이 땅 서민들의 보잘것없는 삶의 역사”(「해설」)를 응시한다. 이처럼 김진완 시인은 엄숙주의와 허위의식이 가득한 현실에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으로, 전통 속에 내재된 우리의 ‘해학’을 그의 시편에서 선보인다. 투명인간으로 존재하는 이 도시의 노숙인들을 하나의 ‘꽃’으로 명명하고, 누구든 그렇게 이 도시의 꽃이 될 수 있다며 “우리가 구축해놓은 오늘의 현실을 통렬히 비웃는다”(「이크, 아크 피해 가는 꽃밭」, 「해설」). 하여, 그의 시편들은 우리의 또 다른 모습들 - 현재를 살아가는 불안한 존재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싼다.
종로 3가 금은방 뒷골목 / 남이 먹다 남긴 점심상 / 먼지 바람 등지고 앉아 / 마른밥 먹는 남자 본다 // 양철 쟁반 철수세미 자국 / 눈이 시어 / 반눈 뜬 채 / 우물우물 밥 먹는 / 저 사내를 / 나는 안다 // 구겨 신은 신발에 / 넘치게 담긴 맨발 / 까만 때 반질대는 / 복숭아뼈도 / 나는 안다 // 쭈굴쭈글한 감자알이 / 젓가락에서 미끄러지자 / 저 사내 제 복숭아뼈를 뽑아 / 우물우물 삼키는 저 이를 / 나는 아는 것이다 // 아! 라는 감탄과 긍정이 빠져 / 절뚝대는 생의 이름 / 복숭뼈! / 모른다 모른다 아, 나는 모른다 _「모른다」 전문`
‘안다’와 ‘모른다’의 대조와 반복, 그사이에서 주저하는 듯한 시적 화자의 내면 갈등. 사실 김진완의 시는 여기에 위치한다. ‘전통과 근대’, ‘해학과 엄숙주의’, ‘개똥밭과 꽃밭’ 등의 경계면에서 김진완이 말하는 ‘모른다’는 때로는 ‘알고 있다’의 의미로 읽힌다. 시인은 과연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것일까? 이경수 평론가가 말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줄어든 우리 사회의 치명적 현실”에서 “우리 또한 이 악취 나는 꽃밭 천국에 피어 있는 한 포기 꽃임”을 그가 깨달은 것은 아닐까. 이번 시집에 시인이 펼쳐 보인 ‘웃음의 시학’은 한편으로 우리에게 이 시대의 통증을 묵직하게 전해주는 듯하다.
■ 추천의 글
김진완의 시는 눈으로가 아니라 귀로 읽는 시다. 활자로 이루어져 있다기보다 목소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야 할 그의 시는, 미처 머리로 생각할 틈도 없이, 몸 전체로 부딪혀온다. 그의 시에 저희 말을 빌려준 사람들의 육덕 좋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나는, 발을 동동 구르고, 가슴을 쓰다듬으며 짠해하고, 깊은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찔끔 눈물을 떨구기도 하다가, 또 어느 순간 껄껄껄 배꼽을 부여잡고 웃고 있는 것이다. 김진완의 시는 그렇게 속수무책이다. 그의 입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라치면, 마치 전기에라도 감염된 듯 이따금 온몸이 바르르 떨리기도 하는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생시라고도 현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그의 시가 일깨우는 생생한 삶의 감각 때문이다. 한데 할머니 무덤의 이장(移葬)을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낸「물명당 이야기」에서 ‘골반!’ 같은 단발마 외침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동안에는 전혀 들여다볼 생각도 없었던, 해서 아예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던, 원초적이고 마법적인 시간으로 진입하게 되는 것인바, 그와 같은 김진완 시의 시간을 잠시라도 살고 보면 우리가 처한 이 현재의 시간은 그만 마법의 시간이라는 다른 깊이를 지녀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김진완 시의 진정한 ‘속수무책’이다. 아마도 이 속수무책의 시가 우리 시로서는 여태 가보지 못한 새로운 영토로 우리를 데려갈 것이란 생각에 나는 또 시나브로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김근(시인)

목차
[제1부]
환한 꿈자리 | 뼈마디가 실한 이유 | 절값 | 말랑한 가슴을 맞대고 | 바람의 몸내 | 물명당 이야기 | 세상엔 몹쓸 구신도 많아 | 님 계신 전선 | 우길 걸 우겨야지 | 통닭 | 윙크 | 족장 오줌발
[제2부]
실업자 고만석 | 벼룩시장에서 | 모른다 | 이크, 아크 피해 가는 꽃밭 | 송이라 불리던 고래 | 나는 환청 통조림이 가득 든 냉장고다 | 양변기 명상 | 개똥밭 인연설 | 딱풀에 경배를 | 고수를 만나다 | 촛불 광장을 지나 | 잘빠진 그대와 내가
[제3부]
방아풀이 주는 위로 | 내 놀던 동산 | 그 집엔 아직도 | 방자, 괜히 왔다가 | 고모도 나도 | 우렁이 | 육교가 있던 자리를 지나다 | 강아지풀과도 못 노는 아비가 되어 | 어부바 | 마실 갔다 | 청자 | 목젖 | 허풍 거미
시인은 아무나 하나
[제4부]
오! 나의 정다운 웬수들은 | 주목 열매빛 웃음 웃는 | 어느 삼류 시인이 썰 풀기를 | 소나기 | 푸른 귀 | 코딱지 명상 | 해남군 신기리 점빵 안 | 묵은지 | 늙은 총각 김경우 | 쌍코피댁 | 곰보 보살네 | 참깨 털어먹은 바람이 | 맨드라미 활활
해설 - 이경수 시인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