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땅 고시생들이 아침공양을 챙겨먹지 못해서 오전 11시면 배가 고파서 기어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11시 30분만 되면 일제히 연찬전 마당에 나와서 어슬렁거리면서 아침인사를 건넸다.

그 중 안씨 아저씨는 11시 30분 정도 되면 어김없이 연찬전 마당에 나와서 중저음의 큰소리로 무뚝뚝하게, 때때로 욕설을 섞어가면서 동생뻘 되는 노땅 고시생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야 이 자슥들아, 일찍 나온다고 밥 주나? 때가 돼야 밥 주지?"
"밥 먹으러 나왔나요, 바람 세러 나왔지요 허허허."
"야 최재호, 니가 제일 먼저 나왔지? 11시부터 나와 가지고 시부리뎄지?"
"아이구마, 언제 내가 제일 나왔다고 그카십니꺼? 말이 되는 소리를 하소. 안씨 아저씨는 10시 반에 라면 끄리 묵었죠?"
"야이 자슥아 내가 언제? 봤나? 봤어?"
안씨 아저씨는 너럭바위에 걸터앉아서 시원하게 체조하듯 입을 풀고 있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필리핀 치과대학생들 여섯 명과 재호아저씨, 안씨 아저씨, 민석 그리고 40대 초반의 사법고시생 김씨가 전부였다. 김씨는 항상 혼자 나중에 식사를 하고 이들과 어울리지 않았는데, 오며 가며 이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한마디 말조차 나누지 않았다.

오전 11시 40분경 안씨 아저씨, 재호, 치과의사 고시생 7명, 민석, 이렇게 열 명이 일제히 우르르 몰려 연찬전을 나섰다. 추리닝 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연찬전 대문을 열자"꺼어억~~"하고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연찬전 마당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때 마침 삼천사 마당에 있던 신도들은 일제히 연찬전 대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이들 고시생들은 마치 벼슬아치라도 된 듯, 보무도 당당하게 슬리퍼를 끌면서 삼천사 마당을 걸어가는 것이었다.

추리닝 바지와 반팔의 면티를 걸치고, 어떤 고시생은 뒤통수에 새집을 지은채로 어떤 고시생은 추리닝 바지 호주머니에 두 손을 푹 꽂고 두 어깨는 축 늘어뜨린 채, 어떤 고시생은 짜리몽땅한 키에 배는 임산부처럼 불룩해서 더 이상 밥이 들어갈 곳이 없는 듯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고시생은 머리가 벗겨지고 맹구의 포스로 어느 누구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굶주린 사자처럼 밥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 시점에 삼천사 마당에는 어김없이 지하 공양실쪽에서 눈이 깊게 패이고 깡마른 한 할머니가 허리를 90도 꾸부정하게 한 채, 두 손에는 물 항아리 하나를 들고 걸어 올라와 삼천사 마당을 가로질러 천천히 야외 좌불 불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고시생들과 그 할매는 서로 본체만체 아는 척도 없이 자기 앞길만 갈뿐이었다.

한명의 고시생은 연찬전 대문을 나오면서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 안에 들어가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한두 명의 고시생은 삼천사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다가 오른쪽 산기슭에 높은 계단 위 넓게 조성된 좌불 앞에 다가가서 절을 하고 난 뒤, 공양실 쪽으로 가는 고시생도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종무실 쪽으로 가서 좁은 계단을 따라 공양실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그런 식으로 다 같이 음식을 식판에 담아 자리에 앉으면 뒤늦게 어김없이 40대 초반의 사법고시생 김씨가 공양실로 내려와 식판에 음식을 산처럼 담은 채, 일행과 떨어져 귀퉁이 한쪽에 앉아 식사를 했다.

안씨 아저씨가 제일 먼저 철판으로 된 식판에 사찰음식을 담아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그 주위에는 차례로 치과의사고시생들, 최재호 아저씨가 앞과 옆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 자리는 계곡의 바닥이 내려다보이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어 주는 명당자리였다. 민석은 그 뒤에 있는 식탁에 혼자 앉았으며, 김씨 아저씨는 창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어두컴컴한 구석 자리에 벽을 보며 혼자 앉았다.

안씨 아저씨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천천히 음식을 한 입 씹으며 창밖을 보곤 했다. 보들보들한 볼살이 약간 늘어진 꺼무칙칙하고 무턱의 동그란 얼굴로 창밖을 보며 음식을 씹어 댔다. 마치 구석에 혼자 벽을 보고 앉아 있는 김씨 아저씨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듯한 표정으로 씹어댔다.

공양주보살님들은 모두 세 분이었는데, 넓은 조리실에서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한 분의 공양주보살님은 가끔 참기름 병을 가지고 나와서 식탁에 앉아 있는 고시생들의 비빔밥 그릇에다가 한 술 떨어트려주고 가곤했는데, 안씨 아저씨한테는 유난히 많은 양의 참기름을 병째로 부어주면서 친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걸기도 했다.

안씨 아저씨는 그 공양주보살님이 참기름을 부어줄 때나, 공양주보살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짧은 시간에만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귀여운 표정으로 특유의 능글능글한 중저음의 굵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점심 공양을 마친 일행은 어김없이 넓은 삼천사 마당을 가로질러 연찬전으로 복귀한 다음, 다 같이 자연스럽게 연찬전 마당에 모여서 빙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씨 아저씨가 연찬전 마당, 샘물 앞 넓적한 돌에 앉으면, 그 주위에 치과의사 고시생들과 재호, 민석 등이 둘러앉기도 하고 일어서 있기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안씨 아저씨는 주로 정치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거무칙칙한 얼굴, 너무 짙은 검은 눈썹, 시원한 이마와 아담한 코, 조금 쳐진 볼살에 턱이 빈약해서 초년운은 좋으나 말년운이 나빠 보이는 안씨 아저씨였다.

작은 키에 무턱의 둥근 얼굴이 전반적으로 귀여운 인상으로 보들보들한 양 볼살은 약간 늘어뜨리고 입을 쭉 뺀 채, 넓적한 돌에 앉아서 먼가의 불만에 가득한 표정으로 굵은 저음의 목소리로 말을 했다.

"요즘 애들 하여튼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몰라,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참 기가 막히지. 어제 전철 타고 오면서 젊은 애들 하는 소리 들어보이, 엘지가 어떻고 오비가 어떻고, 야구 이야기 하고 앉았는데......."

재호 아저씨가 칫솔을 입에 문채 갈라진 고음의 목소리로 댓구를 했다.
"크크크크, 야구이야기 하는데 머가 어째서요."

안씨 아저씨가 재호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이 자슥아. 지금이 어느 땐데 젊은 학생들이 고딴 이야기나 하고 자빠지고, 수준 떨어지게. 노태우, 영삼이 종필이 삼당합당 야합해서 정치를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데, 야구 이야기가 나오나 임마."

주변에 치과 국가고시 준비생들은 연신 웃으면서 일부는 안씨 아저씨의 말에 동조하기도 하고, 일부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기도 했다.

조금 떨어져 있던 민석이 그제야 안씨 아저씨 쪽으로 관심을 보이며, 자세히 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에 고기 먹을 때, 제가 듣기로 전두환 시절에 기자하시다가 감옥 가셨다고요? 그라마 지금은 기자 아니세요?"

재호 아저씨가 양치질 하던 허연 이빨을 보이며 민석에게 말을 했다.
"전두환한테 대들다가 기자 자격 박탈되고 아직 복권 안됐어. 글 쓰고 있는 무. 명. 작. 가."

민석이 신기한 듯 말했다.
"아 그렇군요. 안타깝네요. 안 선생님은 그럼 지금 정치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주변에 있던 고시생들이 일제히 웃었다.
"허허허허...우와, 안씨 아저씨 졸지에 선생님 되셨네, 축하드립니다. 안 선생님."
"안 선생님~~하하하하."
"아, 내가 지금까지 여기 17년짼데, 내보고 안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은 민석이 니가 처음이다."

안씨 아저씨는 그 순간부터 안 선생이라 불리어지게 되었다.
안 선생은 민석을 보면서 칭찬을 해댔고, 재호와 주변 고시생들은 모두 낄낄 웃으면서 서 있기도 하고 앉아서 먼 산을 보기도 했다.

그때, 40대 초반의 사법고시생인 김씨가 공양을 마치고 연찬전 대문을 열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보통 키에 등치가 우락부락하고 배가 무척 많이 나왔으며, 얼굴은 사각형의 희뿌연 산적같이 생긴 사법시험을 준비한다는 김씨였다.

김씨는 어느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안 선생과 주변 고시생들 앞을 무심히 스쳐지나, 자기 앞길을 걸어서 연찬전 고시원 건물로 들어갔다. 안선생과 주변의 고시생들은 일제히 합죽이가 된 듯이 조용히 김씨의 걸음걸이를 보면서 고시원 건물로 들어가는 뒷모습까지 힐긋 보고 있었다.

사법고시생 김씨 아저씨는 산처럼 나온 뱃살과 역도선수 같은 어깨를 쫙 펴고 사각형의 얼굴과 구식 스포츠형의 헤어스타일을 한 채, 보무도 당당하고 힘차게 뚜벅뚜벅 걸었다. 쫙 벌리고 힘을 준 어깨에서는 마치'다 덤벼.'라고 말하는듯한 자세임을 느끼게 했다.

김씨가 고시원 건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자, 안 선생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저거하고 4년짼데, 한 번도 아는 척 안하....."

치과의사 고시준비생인 민씨 아저씨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내 저번에 보니까, 신도인지 아줌마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떤 아줌마가 자꾸 와서 음식을 저 사람한테 주고 가더라고요. 딱 보이 유부녀 같더구먼."

안 선생이 반기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 나도 봤어. 절에 오는 신도지. 그것도 유부녀 꼬셔가지고 만나러 나갔다가 들어오고 그런다. 저거 지금 밥 먹고 들어가면 몇 시간은 잘 거야. 저번에 지나가면서 방 안을 보이, 먹을 것만 산더미 같이 쌓아 놓고 디비 누워서 자고 있더라고. 누가 갖다 줬는지. 먹고 자고 해서 배봐라. 민석이 니도 저 놈 배 봤제? 아이고 저런 배는 처음 본다. 진짜로."

치과의사고시 준비생 중 맹구처럼 생긴 30대 후반의 박씨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거들었다.
"내 저번에 들어보이, 저 사람 사법고시 합격하면 검사 돼서 한 오십 명은 죽이겠다고 하데요."

재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크크크크, 지금 40대 초반인데 합격해도 검사 못되고 변호사 밖에 못하는데......."

안 선생이 반기며 말했다.
"맞다. 니 말이 맞다. 최재호 일마 오랜만에 옳은 말 하네 . 근데 저기 합격할 것 같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민석이 입을 열었다.
"이해해주셔야 돼요. 원래 사법고시 준비생들은 저렇게 생활하는 게 일반적인 거라서 우리들끼리는 다 이해하는데 일반인들은 잘 모르죠."

재호 아저씨는 혀를 길게 쭉 내밀고 칫솔을 혓바닥에 문지르면서 컥컥거리면서 댓구를 했다.
"내 주변에 합격하는 애들은 안 그렇던데......."
재호 아저씨는 칫솔로 혓바닥을 문지르다가 다시 칫솔을 입에 문채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알기로는 의사들하고 법조인들하고는 서로 친하게 지내던데, 우예 여기서는 서로 몬 잡아묵어서 싸우능교? 하하하하하."
안 선생이 재호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