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하루아침에 영지를 잃은 전주사대부 후예들의 삶의 추적
김태진 장편소설 『모악산』은 500년 왕조와 봉건이 무너진 조선 말기부터 6.25전쟁까지 김 참판 일가와 이 진사 집안에 얽힌 기막힌 인연을 그?렸다. 풍요로운 선비의 고장에 불어 닥친 동학혁명과 천지개벽의 회오리는 전주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두 집안의 문중을 무너뜨리고 하루아침에 평민으로 전락시켰다. 엄청난 역사의 격랑 속으로 함몰되면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전주사대부 후예들의 이야기가 액자소설인 과 소설의 주인공인 소년 금아의 시선으로 엮이며 한 편의 대하드...
하루아침에 영지를 잃은 전주사대부 후예들의 삶의 추적
김태진 장편소설 『모악산』은 500년 왕조와 봉건이 무너진 조선 말기부터 6.25전쟁까지 김 참판 일가와 이 진사 집안에 얽힌 기막힌 인연을 그렸다. 풍요로운 선비의 고장에 불어 닥친 동학혁명과 천지개벽의 회오리는 전주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두 집안의 문중을 무너뜨리고 하루아침에 평민으로 전락시켰다. 엄청난 역사의 격랑 속으로 함몰되면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전주사대부 후예들의 이야기가 액자소설인 과 소설의 주인공인 소년 금아의 시선으로 엮이며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아홉 살 소년의 눈에 비친 전쟁의 참상과 핏줄의 의미, 자신의 뿌리에 대한 집요한 탐구의 대서사시
시대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해 겪어야 했던 인고의 긴긴 여정을 통해 모악이 품고 있던 숨겨진 뜻을 작가는 액자소설 을 통해 밝히는 동시에 아홉 살 금아가 겪어낸 전쟁과 그 속에 피어난 뜨거운 가족사랑,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 이 소설은 단지 몰락한 양반의 가족사로 끝나지 않는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고도 슬픔을 억누른 채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했던 한 소년의 의지에 관한 이야기이고,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핏줄의 이야기이다. 전쟁의 산 증인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금아가 목격하고 겪어낸 전쟁의 참상은 귀중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어두운 시절을 함께 지나오며 서로 기대고 보듬을 수밖에 없었던 혈육의 정은 가족 해체의 시대에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게 해줄 것이다.
효자공원의 조성과 양반문화의 복원을 꿈꾸다
오랫동안 전주시의 표상이요, 효행의 상징으로 전주시민의 사랑을 받았던 충효서원과 효자비각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임실로 옮겨지게 되었다. 저자는 이번 기회에 귀중한 문화재 효자비각이 제자리를 찾아 문화도시 전주시의 긍지를 더욱 빛내고 효행을 널리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소설『모악산』에 담았다. 더불어 전주의 사대부 반가는 이곳 특유의 양반문화가 융성했던 고장으로, 우리의 궁중문화, 서민문화와 더불어 우아하고 품위 있는 전통관습이나 예의범절 등 진정한 양반문화가 복원되고 꽃피우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고 있다.

전주땅에 있던 사대부 후예들의 운명도 이에 다를 바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영지를 잃은 그들 또한 이 세상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껏 생산을 모르고 살았던 그들이 왕조와 봉건이 무너진 이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능력은 전무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땅의 왕족이든 권문세족이든 들녘에 뒤집혀진 자운영의 운명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서쪽 하늘에 비낀 석양이 유난히도 아름답고 황홀하듯이 모름지기 세상사 끝자락이란 모두가 다 이토록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것이 아니던가.

완산고개에서 내려다보이는 전주는 하얀 쟁반 위에 소담하게 그려진 한 폭의 그림처럼 조용하고 아름답게만 보인다. 바라보고 있던 김 참판은 감회가 새로워진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이곳 전주땅을 이제 떠나야 한다는 것이 김 참판에게는 그렇게 마음에 걸리고 눈에 밟히나 보다.
"전주는 언제 보아도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좌윤대감이 김 참판 옆으로 다가서며 탄복을 한다. 그 말에 김 참판은 서둘러 표정을 바꾼다.
"한양에 살고 있는 좌윤의 눈에도 그리 보이시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한양이 비록 상감께서 기거하시는 곳이라고는 하나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것은 이곳 전주와는 비길 바가 아니지요."
"좌윤 말씀이 맞다네. 세상천지에 전주만큼 곱고 인정이 넘치는 곳은 다시없을 것이네. 그러나 저런 아름다움이 항상 그대로 이어지기만 한다면야 얼마나 좋은 세상이겠는가. 요순(堯舜)이 부럽지 않지."

전개맥의 보고에 의하면 전주성내는 지금 많지 않은 관군과 보부상이 전라감사 김문현의 휘하에서 성문을 닫아걸고 버티고는 있지만 사기가 말이 아니어서 군병의 상당수는 이미 도주해 버렸거나 남아있는 병사마저도 동학농민이 성을 포위하고 화포를 쏘아대자 목숨을 부지하는 쪽으로만 전전긍긍하고 있어 군인이라고 볼 수도 없으며 일반시민들마저 공포에 젖어있어 지금의 전주성내는 마치 주인 없는 빈 성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교동 이 진사댁 뒤채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이 댁 장녀 정하아씨는 동생들을 모두 이불속에 숨겨놓고도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어서 전전긍긍하였다. 이때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또다시 총소리가 울리며 요란한 함성이 터진다. 드디어 동학군들이 교동 깊숙한 곳으로도 밀려오기 시작한 모양이다.

정하는 우악스런 사내의 팔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그럴수록 사지는 허공으로 붕붕 떠오르고 사내의 무쇠 같은 힘은 더 가슴을 조여온다. 순간 정하는 이제까지 동생들 얼굴에 숯검정을 칠해주고 누더기 옷을 갈아입히는 사이에 정작 자기 자신은 속고쟁이에 얼굴도 뽀얀 모습 그대로인 것을 깨닫고 까무러치듯 놀란다. 사내는 정하의 허리를 낚아채 어둠속으로 황급히 사라져버린다.

제실 마루기둥에 한 남자가 묶여있고 건장한 청년 대여섯 명이 빙 둘러서서 몽둥이로 그 남자를 내려치고 있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몽둥이를 이리저리 피해보지만 한쪽 팔이 마루 기둥에 짧게 줄로 묶여있었기 때문에 몽둥이를 피해도 그 줄의 범위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어머님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그래서 금아는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매를 맞고 있는 남자가 바로 아버님이었습니다.

‘아, 나에게는 이제 아버님이 안계시구나. 나는 이제 앞으로도 영원히 아버지를 볼 수도 없고 아버지라고 다시는 불러볼 수도 없겠구나.’ 금아는 이때 처음으로 ‘영원히’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고 엄청난 외로움과 절망감, 그리고 슬픔을 느꼈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아홉 살짜리 어린애가 ‘영원’을 생각하고 절망에 빠질 수가 있었다니.

"도련님, 제가 죽일 놈입니다. 용서해주세요."
"용서를 하라고요? 아니요. 난 용서 못해요. 그 대신 오래오래 잘 사세요. 이다음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
"그때까지 꼭 살아 있어야 해요. 그래야 내가 그때 가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테니까."

구더기가 더럽고 징그럽기는 했으나 구더기가 먹던 꼬독꼬독 마른 생선포를 어머님 몰래 조금 뜯어서 입에 넣어보았는데 이건 너무나도 맛이 좋아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생선포를 말리면서 세상에 이렇게 구더기가 많이 생기는 것도 처음 보았지만 또 그렇게 맛있는 생선포도 처음 먹어본 것 같았습니다.

"꼬마야, 네가 이렇게 울면 네 누나도 시집가서 울보가 된단다. 울보 좋아하는 시어머니가 어디 있냐?"
그 말에 금아는 찔끔했습니다. 물론 인력거꾼이 괜히 하는 소리겠지만 나 때문에 누나의 시집살이가 힘들어진다는데 계속 울 수도 없었습니다. 금아는 인력거 끈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길옆 풀밭에 풀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금아 손에서 떨어져 나간 인력거는 쏜살같이 달려서 벌써 쇠전거리 신작로 위로 올라서고 있었습니다. 인력거가 마침내 읍내 쪽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누나의 애절할 울음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누나…. 죽지 말고 오래오래 잘 살아야 해."

금아는 큼직한 문고리를 잡고 사정없이 두드렸습니다. "어머님, 저 왔습니다." 물론 낮에는 대문을 잠가놓지 않아 아무 때고 밀면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금아는 일부러 문을 두드리며 큰소리를 친 것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막내가 질겁해서 금아의 허리춤을 잡아당깁니다. "형, 왜 그래?" 이제까지 남의 집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작은 양철대문마저도 한번 마음 놓고 두드려보지 못한 막내로서는 오금이 저렸나 봅니다. 금아는 막내에게 이런 호기를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제에서는 비록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지만 본가에서는 이런 고대광실도 얼마든지 발로 걷어찰 수가 있는 집안이라는 것을 불쌍한 막내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금아는 졸지에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돈이 그리 큰돈은 아니었지만 금아는 평생 처음으로 스스로 돈을 벌어 손에 쥐고 보니 가슴은 금방 터질듯이 쿵쾅거리고 있었습니다.
"아, 이게 정말 내가 번 내 돈이란 말인가?"
금아는 손바닥에 쥐어진 까실까실한 지전의 감촉이 너무나 꿈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터지려는 가슴을 가까스로 억제하고 집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순간 뜻 모를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쏟아져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금아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노래를 계속 불렀습니다. 전쟁 이후 단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애국가가 이제까지 금아 입속에 남아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놀랄 뿐이었습니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목차
프롤로그
제1부 갑오국(甲午國)
모악 신당 / 천기 / 효자동 / 호림당 / 은둔하여 꿈꾸라
1. 탱자꽃
잔둥이집 / 매갈이집 / 서툰 마부 / 기차통학 / 솜니 / 학예회
2. 천둥소리
무쇠파편 / 벼락바우 / 쇠돌이 세상 / 따뜻한 아버님의 등 / 첫눈
3. 노들강변
관촌 / 본가 / 사선대 / 격랑 / 해후 / 오원강 / 황 특사 / 고택 / 밤손님 / 백리 길 / 새벽전투 / 공허
4. 산 넘어 산
심뱅이 / 안동네 / 물지게 / 붉은 바다 / 학교.학교 / 이별
5. 나무기러기
열다섯 살 새각시 / 물뫼 / 아이스케키 / 형님 / 황톳빛 세상 / 간이훈련소 / 진서헌
제2부 새야 새야
두견새 / 맵새야, 날아라 / 연주아씨 / 사선제 / 꽃도령 / 단풍이 꽃이어라 / 개도 안 물어갈 양반뼈대
6. 길은 멀고
상돌리 / 지경 / 호피목도리 / 하늘 아래 / 운봉 / 삼백리 영지 / 진안 / 바우배기
7. 절벽
금의환향 / 소원 / 나씨 방앗간 / 마나님 / 노오란 옥수수 / 첫돈 / 엿장수
8. 여명
이사 / 십삼구 / 금전판 / 질통꾼 / 황금 / 어머니, 나의 어머니
9. 제자리
보금자리 / 낭보 / 이장 / 안녕 고향땅아 / 잃어버린 시간
10. 따라잡기
판자촌 / 수복 / 전후 / 자화상 / 마지막 승부 / 마침표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