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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도감』 『스파클』
최현진 작가가 들려주는
다음은 없다! 지금만 할 수 있는 말에 대한 이야기
“아주 오래전부터 ‘말’이란 왜 누군가에는 쉬운 것이며 누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인지 궁금했다.
용기? 어휘력? 자신감의 차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말이라는 것은 시간차를 두고 도착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바로 대답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한 마디 대답을 하는 데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 이 책 속 ‘순가 할머니’와 ‘칼 할아버지’가 그렇다.“ -작가의 말 중에서
마루비 어린이문학 25번째 작품으로 최현진 작가의 『지금 이 순간』이 출간되었다. 최현진 작가는 2017년 동화 「두근두근 두드러기」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이후 『나비도감』으로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스파클』로 제18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함으로써 한국 문단의 촉망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지금 이 순간』은 작가의 세 번째 출간작으로, ‘말’이라는 주제를 통해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관계의 힘,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인연의 온기를 그린다. 그리고 그것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또 노년의 기억으로 따뜻하게 엮어낸다.
이름이 바뀐 순간부터 시작된 이야기
이순가와 오지금
지금이의 할머니 이순가는 원래 이름이 ‘이순자’ 였지만 서류를 작성하던 중 실수로 ‘이순가’가 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이순가는 누군가 “순가야.” 하고 부를 때마다 “내는 이씨, 이가라요!”하고 아흔아홉 번 정도 농을 치며 살았다고, 하나뿐인 손녀 ‘오지금’에게 들려주었다.
“지금아. 할머니 돌아가셔서 슬프지?”
“하모니 지배 간 고야. 우리 누네 안 보이는 고야.”
지금이는 검은색 넥타이를 한 친척 어른에게 말했다.
“흠흠. 지금이는…… 아직도 아기처럼 말하는구나.”
넥타이를 한 친척 어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본문 12쪽
지금이는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지만 아직도 말이 또렷하지 않다. 사람들은 그런 지금이를 걱정하지만 지금이는 책도 읽을 줄 알고, 가나다라마바사로 시작하는 글도 쓸 줄 안다.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을 피해 발음 연습을 하던 지금이는 ‘커피’ ‘우유’ ‘홍차’ 그리고 ‘입장’이라고 써진 이상한 자판기를 발견하고 ‘입장’ 버튼을 꾸욱 눌러 자판기 문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곳에서 열 살 적 이순가를 만난다.
일천구백오십구 년에서 일천구백팔십오 년이 되기까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 거’
일천구백오십구 년, 스무 살이 된 이순가는 피난민으로 놀림을 받던 같은 동네 청년 박도검과 사랑에 빠진다.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결혼이 어렵게 되자 박도검은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만다. 미국에 정착한 박도검은 출판 일을 하며 한국에 있는 이순가를 수소문한 끝에 순가가 서른여덟의 늦깎이 신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낙담한다. 이후 박도검은 우연히 한국 입양아 수경을 만나 새 삶을 결심하고 자신의 딸로 입양하고 가족을 이룬다. 세월이 흘러 수경은 아들 나성이를 낳지만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박도검은 손자 나성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어떠냐? 그랜파의 고향에 온 소감이.”
은테 안경을 쓴 노인이 벤치에 앉은 나성이를 향해 말했다.
“실은, 음…… 낫 베드.”
나성이는 손가락으로 캔 뚜껑을 빙빙 돌렸다. -본문 31쪽
운명적인 만남
말이 서툰 두 아이의 우정
미국에서 엄마를 잃고 할아버지와 함께 한국으로 오게 된 여덟 살 나성이는 낯선 아파트 단지와 익숙하지 않은 한국말 속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끼던 중, 공원 자판기 앞에서 지금이와 서툰 한국말로 서로 인사를 나눈다. 아직 우리말을 또렷하게 발음하지 못하는 지금이와 한국말이 서툰 나성이는 말은 비록 서툴지만 서로 간에 따뜻한 교감을 쌓아간다.
대답할 때 쓰는 ‘네!’
되물을 때 쓰는 ‘네?’
수 ‘4’ 를 나타날 때 쓰는 ‘네’ 명, ‘네’ 개, ‘네’ 사람
너 대신 쓰는 ‘네’가, ‘네’게.
“모두 ‘네’야.”
지금이가 손가락 네 개를 나성이를 향해 펼치며 말했다.
“와우! 모두 ‘네’구나!” -본문 40쪽
발음이 제각각 다른 단어들이 한국말로는 하나로 발음된다는 사실에 나성이는 기뻐하며 점점 더 지금이와 가까워진다. 서툰 말로 서로를 이해하는 두 아이의 대화는 ‘언어’라는 주제에 담긴 작가의 통찰을 가장 맑고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둘은 서로의 그네를 밀어 주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네에도 ‘네’가 들어가네?”
“푸흐하하. 그르네!” - 본문 41쪽
역사적인 숨바꼭질
50년의 시간 끝에서 다시 만난 이름
나성이 지금이를 집으로 초대하고 할아버지가 쿠키를 만드는 동안 함께 숨바꼭질을 하던 중에 지금이는 화분 속에서 ‘동’을 발견한다. ‘돌’과 ‘동’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아는 지금이를 눈여겨보던 박도검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보자 지금이는 “순가 할머니가‘가 알려주었다고 대답한다.
“순가 하머니?”
나성이가 물었다.
“웅 우리 하모니! 순가야, 하고 부루면…….”
“내 순가가 아니라 이씨 성을 가진 이가라요.”
칼 할아버지는 지금이가 할 말을 가로챘다. -본문 62쪽
지난 오십 년 동안 숨바꼭질처럼 찾아다녔던 ‘이순가’가 박도검 앞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다음은 없다
하나가 빠져 그 자리에 새로운 하나가 들어오는 것
보석감정사 된 이순가는 미국 출장 중 박도검이 ‘칼’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 땅 위에 새 삶을 시작한 걸 알고 칼과, 자신 사이에 다음은 없음을 직감하고 더 이상 박도검을 찾는 일을 포기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순가는 뜻밖의 인연을 만난다.
“다음에 더 이야기해요, 다음에 또 만나요, 다음에 봐요.”
한국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다음 약속’을 정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다음은…… 미래가 되었다. 이야기할 걸로 가즉한 해가 지나고 서울 외곽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본문 97쪽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
정확히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빨리 환영해 주는 일
박도검과 나성, 지금이 가족은 다함께 죽은 순가를 만나러 간다. 그곳에서 지금이는 비로소 ‘하모니’가 아닌 정확하게 ‘할머니’라고 말하게 된다. 이 변화를 지금이 부모는 순가 할머니의 선물이라며 감격해한다. 이제 남겨진 건 다음 세대의 몫, 지금이와 나성은 늘 그래왔듯이 함께 뛰어놀다 아파트 단지 안 나무에 걸린 빨강풍선을 보고 발을 멈춘다.
‘넌 어쩌다 거기까지 올라 갔니?’
지금이가 생각했다.
“어쩌다 거기까지 간 거야 풍서나!”
나성이도 안타까운 듯 외쳤다. 지금이는 후득후득 웃음이 왔다. 나성이와 마음이 또 통했기 때문이다.
-본문 105쪽
바로 그때 풍선의 주인이라는 아이가 나타나 지금이와 나성이에게 자신은 여덟 살이고 이름은 ‘등정민’이라고 소개한다.
‘등등등으로 시작하는 말은…….’
지금이 머릿속에서 단어의 불이 켜졌다.
“내 이름 신기하지? 나랑 우리 가족은 중국에서 왔거든!”
“등장을 축하해 정민아!”
지금이가 외쳤다. -본문 107쪽
지금이와 나성의 환영에 등정민은 ‘까만 밤에 켠 불처럼 호롱호롱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로 다른 언어, 다른 땅, 다른 이야기를 가진 세 아이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 셋이 모이면 커지는 이야기. 각자 남다르게 살아온 여덟 살들이 나무 아래 옹기종기 붙어 앉아 지금 막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문 109쪽

저자 : 최현진
어릴 때부터 책과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2017년 「두근두근 두드러기」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되었으며 『나비도감』으로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하고 『스파클』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2024년 ‘경기예술생애첫지원’ 선정작입니다.
그림 : 한아름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꼭두 일러스트 교육원에서 그림책을 공부했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이상한 기차』, 『내일을 기다려』가 있으며, 그린 책으로 『지하차도 건너기』, 『쿨쿨나라의 청소부들』, 『하루살이입니다』, 『철두철미한 은지』, 『언제나 너와 함께』, 『외계인은 정말 있을까? 우주 탐사』, 『오리 둥둥이 수영교실』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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