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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정치를 하다
장영은
13,500원
레이디 크레딧
김주희
19,800원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권김현영
15,300원
1980년에서 1999년 사이에 태어난 한국의 비혼 여성 41인이 말하는
가족 의존적 통치에 맞서는 자기-통치 전략
여성은 여전히 타인의 삶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존재인가? 41명의 비혼 여성들을 심층 인터뷰함으로써 이 책은 발전국가 시기부터 이어진 한국 사회의 가족 의존적 통치가 성별화된 주체화에 의지해 왔음을 밝히면서, 이러한 불평등한 삶의 재생산 양식에 대응해 가는 비혼 여성들의 실천에 주목한다. 구체적으로는 비혼 여성들의 자기-통치를 각각 신체·내밀 관계·세대 재생산의 통치라는 범주하에 분석하고, 이들이 만들어가는 다양한 내밀 관계의 실천들을 조명한다. 가족이라는, 자명해 보이는 단위를 내밀성의 차원에서 분석함으로써 이 책은 자본주의적 생산 경제에서 저평가되고 있는 재생산 활동의 진정한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불평등한 가족 대신 우리 삶을 재생산하는 대안적 방식을 고민해보자고 제안한다.
비혼의 선택이 던지는 사회적 질문
저자는 한국 사회의 비혼 여성을 단순히 “결혼을 포기한 여성”이나 “개인주의적 선택을 한 여성”으로 보지 않는다. 비혼은 성차별적 가족제도와 불안정한 노동시장, 취약한 사회보장 속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재생산하려는 자기-통치의 실천이며, 동시에 가족에게 집중된 돌봄과 부양의 책임을 사회적으로 재분배하라는 시민권 요구라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를 가족 의존 사회로 규정한다. 국가는 주거·교육·돌봄·노후·실업 등 삶의 위험을 충분히 사회화하지 못한 채 가족에게 떠넘겨 왔고, 가족은 개인의 생존을 위한 주요 안전망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가족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자원이 아니다. 가족의 경제력과 사회관계, 정서적 지원 여부에 따라 개인의 교육·취업·주거·자립 가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그 안에서 여성에게는 돌봄과 희생이 집중된다. 따라서 비혼 여성의 선택은 단순한 결혼 기피가 아니다. 그것은 “누구와 어떻게 삶을 꾸릴 것인가”, “삶의 재생산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돌봄과 친밀한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조직할 것인가”를 둘러싼 사회적 질문이다.
비혼의 등장과 사회적 배경
한국에서 결혼은 오랫동안 개인에게 정상적인 성인 지위와 공동체 소속을 부여하는 통과의례였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결핍되거나 실패한 존재로 간주됐고, ‘미혼’이라는 표현 역시 언젠가는 결혼해야 한다는 전제를 포함했다. 1990년대부터 등장한 ‘비혼’이라는 말은 이러한 규범에 맞서 결혼하지 않는 상태를 개인의 선택과 의지로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비혼은 2000년대 이후 여성주의 운동과 결합하면서 정치적 의미를 획득했다. 2007년 비혼여성축제, 비혼 선언, 비혼식 등은 결혼과 주부의 생애를 정상적인 삶의 기준으로 삼는 제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2015년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와 온라인 여성운동의 확산 속에서는 비혼·비연애·비섹스·비출산을 뜻하는 ‘4비’가 등장했다. 이 흐름에서 비혼은 남성 중심의 이성애 관계와 여성에게 집중되는 재생산 노동을 거부하는 실천으로 급진화됐다.
그러나 저자는 비혼을 대중 페미니즘의 구호 속에만 가두지 않는다. 최근의 비혼은 결혼이 더는 보편적인 삶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적 변화와도 관련된다. 고용 불안, 주거비 상승, 교육 경쟁, 성별 임금 격차, 경력 단절, 돌봄 부담이 결혼의 비용과 위험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비혼 여성들의 자기-통치의 세 가지 영역
저자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비혼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분석한다. 연구에는 1980~1999년생을 중심으로 비혼을 정체화한 여성 41명이 참여했다. 직업, 가족 자원, 나이, 성적 지향은 다양했지만, 참여자들은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고 싶다는 공통된 윤리를 보여준다. 이들에게 비혼은 ‘혼자 남는 삶’이 아니라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유급 노동에 참여하고, 자신의 주거와 생활비를 마련하며, 직업적 능력을 개발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으로 이해된다. 일부 참여자들은 연애나 결혼 관계에서 경제적으로 의존했던 경험을 돌아보며, 그 의존이 자신의 자율성을 약화시켰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비혼 여성들이 삶의 재생산을 책임지는 전략으로서의 자기-통치를 각각 신체·내밀 관계·세대 재생산의 통치라는 범주하에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첫째, 신체의 자기-통치다. 여성들은 성폭력과 스토킹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자기 신체의 안전을 스스로 관리하고, 탈코르셋이나 방어적 행동을 선택한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도 국가나 가족의 요구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권리를 주장한다. 임신중절, 피임, 출산의 건강상 위험에 관한 여성주의적 지식은 여성들이 모성을 운명이나 본질이 아닌 선택 가능한 문제로 바라보게 한다.
둘째, 내밀 관계의 자기-통치다. 연구참여자들은 결혼이나 연애가 반드시 안정과 돌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이성애 관계에서 여성에게 가사·감정·돌봄의 책임이 편중되고, 성폭력과 통제의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관계를 맺더라도 동거하지 않는 파트너십, 각자의 재정을 유지하는 관계, 친구와의 생활공동체 등 다양한 형태를 실험한다.
셋째, 세대 재생산의 자기-통치다. 출산과 양육은 더 이상 당연한 생애 과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연구참여자들은 임신과 출산이 신체 건강과 경력에 미칠 영향, 양육 비용, 사교육 경쟁, 자녀의 미래에 대한 책임을 계산한다. 출산을 원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이기심이나 인구 위기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자신과 자녀의 삶을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가깝다.
비혼은 곧 한국 사회의 재생산에 대한 정치사회적 의제
이 책의 핵심은 삶의 재생산을 가족의 희생과 여성의 돌봄에 맡기는 사회를 바꾸자는 데 있다. 개인이 결혼했는지, 자녀가 있는지, 가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와 관계없이 누구나 주거·의료·돌봄·교육·소득·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 비혼 여성들의 실천은 “혼자서도 잘 살겠다”는 선언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들과의 인터뷰는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돌봄과 사회적 관계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문제는 그 돌봄을 가족과 여성에게만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개인의 권리로 보장하고 사회적으로 분담할 것인가이다. 따라서 비혼은 결혼 여부를 둘러싼 개인적 선택을 넘어, 한국 사회가 삶을 어떻게 재생산할 것인지 묻는 정치적 의제가 된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법학을, 파리 낭테르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파리 시테 대학교에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섹스와 젠더,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물질과 마음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정치철학자 아스마 아말라의 저작 『사이버 펑크』를 번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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