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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의 과학

    연결의 과학

    • 주철현 저
    • 한겨레출판 주식회사
    • 2026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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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72134945 336쪽 148 x 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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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화와 불평등, 팬데믹과 인포데믹, 기후 붕괴와 초지능 AI의 위협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어졌고 무엇을 이어 갈 것인가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연결술사
    주철현 교수의 경이로운 지적 탐구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란 전쟁, 히말라야산맥 일대에서 발생한 빙하 홍수를 비롯한 기후 재난들, 사스·메르스·지카 바이러스 비상사태와 코로나19 팬데믹, 인류의 통제를 벗어난 초지능 AI 출현에 대한 경고, 전 세계에 팽배해진 불평등과 극우화, 거짓 정보가 들불처럼 번지는 인포데믹 등 우리는 여러 위기를 동시에 맞닥뜨리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 위협들의 원인과 배경에 공통적으로 ';연결';이라는 키워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 위기는 지구의 생태적 연결망이, 팬데믹은 세계화로 인한 물리적 연결망이 피해를 극대화시켰다. 세계 곳곳의 전쟁과 분쟁은 경제적·지정학적 연결이 무기화된 결과이며, 불평등과 극우화, 초지능 AI와 인포데믹은 고도화된 디지털 연결이 인간의 심리와 사회 시스템에 어떤 위해를 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동안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하고 이를 대중에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해 온 울산의대 미생물학과 주철현 교수는 신간 《연결의 과학》을 통해 우주와 생명의 탄생부터 인류 문명과 인공지능의 발전까지 세상 만물에 ';연결';이 작용했을 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난제들을 해결할 열쇠 또한 ';연결';에서 찾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총 2개 부로 구성된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빅뱅으로 시작해 원자와 분자, 세포, 유전자, 진화, 두뇌 신경망에 이르는 실존의 재료들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며, 우리가 우주적 연결과 생명 도그마의 산물임을 밝힌다. 후반부에서는 인류가 언어와 문자, 집단 지성을 연결시켜 문명을 창발시킨 과정을 조명하고 과학과 공학,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연결의 특이점까지 나아간다.
    전작 《바이러스의 시간》에서 깊이 있는 연구와 인문학적 성찰이 돋보였던 저자는 이번에는 과학과 실존주의 철학을 엮어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과 이어져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이어 갈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의 해답을 찾는다. 유전자와 민족, 국가와 시대 등의 환경은 내가 고를 수 없는 조건이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선택할지는 내가 주도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에 내던져진 ';피투(Geworfenheit)';의 존재이지만, 내 자유의지에 따라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투(Entwurf)';의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연결의 과학》은 세상 만물의 작동 원리와 장대한 빅히스토리를 어렵고 난해한 개념 설명이나 복잡한 수식·도판 없이 맛깔 나는 서술만으로 쉽게 풀어 주는 교양 과학서이자,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고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과학적 해답서이다. 이 책은 불확실성과 단절의 시대를 건너는 독자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깊은 지적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연결';은 우주의 탄생과 진화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우주라는 실존 세계는 138억 년 전 ';빅뱅';을 통해 시작되었다. 한 점으로 뭉쳐 있던 물질과 에너지, 시간과 공간이 대폭발로 인해 해방된 것이다. 이후 우주가 팽창하고 식으면서 우주를 지배하는 4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 분리되었고, 기본 소립자들이 합쳐져 양성자와 중성자가 만들어졌고 다시 이들이 모여 수소와 헬륨이 만들어졌다. 중력, 수소, 헬륨이라는 재료가 별을 탄생시켰고, 별의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은 탄소, 질소, 산소, 철 등 새로운 원소를 만들어 냈다.(41쪽)
    별의 탄생과 죽음(초신성)이 반복되는 동안 생명에 필요한 다양한 원소가 우주에 축적되었다. 약 46억 년 전, 2세대 초신성이 남긴 다양한 원자가 중력에 이끌려 3세대 항성인 태양과 암석형 행성인 원시 지구를 형성했다. 탄생 직후 끓어 넘치는 지옥도였던 원시 지구는 태양 에너지와 운석 충돌 에너지를 흡수했고, 분리된 산소, 수소, 탄소, 질소는 다양한 분자와 유기 화합물로 다시 연결되었다. 뜨겁고 격렬했던 원시 지구의 환경이 서서히 식자 대기와 바다가 생겼고, 지구는 물리계의 단순한 원자들이 복잡한 고분자로 이어지는 생명의 실험실이 되었다.
    우주를 이루는 작은 입자에서 원자로, 원자에서 분자로, 그리고 별과 행성으로 이어지는 탄생과 진화 과정은, 세상 만물이 고립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구조와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중력을 비롯한 우주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힘과 물질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이 거대한 연결 과정에 참여한 것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지구 역시 우연히 주어진 무대가 아니라, 우주의 오랜 진화가 빚어낸 연결의 결과다. 현대 물리학에서 실존의 한계로 정의하는 플랑크 길이(1.616×10^?35미터)부터 인간이 관찰 가능한 우주의 지름(8.8×10^26미터)까지, ';연결';은 단순히 우주의 존재들을 이어 주는 관계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가능하게 해 주는 조건이었다.(25쪽)

    연결과 다양성은 어떻게 진화의 열쇠가 되었나

    연결의 역사는 우주에서 지구라는 하위계로 무대를 옮겨 계속되었다. 태고의 바다에서 단순한 원자가 연결되어 복잡한 고분자를 이루었고 RNA와 단백질, DNA로 이어지는 생명의 씨앗이 등장한 것이다. 약 40억 년 전, 최초의 세포이자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인 루카(LUCA)가 출현하면서, 유전 정보가 단백질로 일방통행 발현되는 ';생명의 중심 도그마';는 생태계의 절대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이 도그마로 인해 생물은 필멸의 숙명을 지니게 되었지만, 유전자는 복제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수십억 년 동안 세대를 관통하는 진화와 불멸의 운명을 가지게 되었다.(92쪽)
    모든 생물 개체의 중심에는 유전 정보가 있다. 유전자는 복제 과정에서 변화(돌연변이)를 만들어 낸다. 그 변화를 지닌 생물이 생존과 번식에 성공하면 유전 정보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생존과 번식에 실패하면 그대로 사라진다. 이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생명의 다양성이 형성되었으며, 생물들은 경쟁과 포식뿐 아니라 공생과 협력을 통해 서로의 생존 조건을 바꾸어 왔다. 생명은 혼자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진화한 것이다.(103쪽)
    하지만 진화가 언제나 더 강하고 완벽한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진화에서는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것이 강한 것이니까. 환경이 바뀌면 과거의 성공을 보장했던 특성이 오히려 생존의 걸림돌이 될 수 있고, 평온할 때는 성가신 잡음이나 별종으로 취급받던 다양성이 예측 불허의 환경 격변에서 종 전체를 구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이는 획일성과 편향에 갇힌 우리 사회가 왜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익숙한 방식과 주류의 생각만을 고집하면 새로운 위기에 대응하기 어렵다. 수십억 년 동안 생명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생명체가 똑같았기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이 생성되고 선택되는 과정이 끊임없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연결은 생존의 토대이고, 다양성은 미래를 위한 가능성의 저장고라 할 수 있다.

    인류의 도약이 문명의 창발로 연결되다

    약 600만 년 전 기후 변화로 열대 우림이 사라진 아프리카 땅에서 직립 보행을 시작한 인류의 조상은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돌도끼 등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며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수백억 개 뉴런의 연결망을 가진 인간의 두뇌는, 부모의 헌신적인 양육과 학습을 통해 신경망 회로가 정교해졌고 언어 소통과 감정 교감, 문자의 발명과 숫자 연산, 추상적 사고를 수행하는 독보적인 후천 지능을 발현시켰다.
    인간은 연약한 육체 탓에 자연에서 독자적으로 살아남기 어려웠다. 그래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집단을 형성했고, 협력을 우선하되 배신에는 단호히 응징하는 ';팃포탯(tit-for-tat)'; 전략을 통해 자발적 이타성을 진화시켰다.(158쪽) 타인을 돌보는 것이 곧 나를 지키는 길이라는 상호 신뢰는 “나는 당신으로 인해 존재한다”는 의미의 ';우분투(ubuntu)'; 정신, 즉 ';나보다 강한 우리';라는 공동체 정신으로 이어졌다.(165쪽) 덕분에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 등 25종의 사촌 인류를 제치고 유일한 단일 지배종으로 살아남아 마침내 문명이라는 새로운 특이점을 열었다.(163쪽)
    생태계가 생명의 중심 도그마라는 고유 질서에 의해 작동한다면, 문명은 인간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 자기 조직화된 상식, 예절, 규범, 법규 등 ';인문(humanitas)';이라는 상대적 질서를 바탕으로 유지된다.(181쪽) 생태계의 DNA에 비견되는 서열 정보 매체인 ';문자';가 발명되면서, 전달 즉시 휘발되던 음성 정보의 시공간적 한계를 넘어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집단 지성의 축적이 가능해졌다. 진리를 탐구하는 문명의 DNA인 ';과학';과 이를 실용적으로 구현하는 문명의 RNA인 ';공학';이 결합해 인간 문명은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생명의 진화가 유전 정보의 변화와 전승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문명에서는 지식 정보가 집단 지성을 통해 진화했다. 문명은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지식으로 이어지고, 현재의 지식이 다시 미래의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연결의 축적이다. 하지만 문명이 커질수록 연결의 범위와 복잡성도 증가했다. 따라서 축적된 지식과 강력한 기술은 번영을 가져오는 만큼 새로운 책임과 위험도 만들어 냈다.

    ';연결';이 불러온 복합 위기의 돌파구는 다시 ';연결';

    원시 부족에서 출발한 인류는 사회와 국가, 체제와 경제 경쟁을 거쳐 마침내 전 지구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물질적 세계화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문명의 팽창과 초연결 사회의 도래는 전쟁과 폭력, 팬데믹과 인포데믹, 불평등과 극우화, 기후 재난과 초지능 AI의 위협 등 전례 없는 위기를 불러왔다. 바이러스는 국경을 가리지 않고 이동하고, 기후 변화는 지구 생태계 전체를 흔들며, 온라인에 퍼진 거짓 정보는 공동체의 판단을 어지럽힌다. 지식과 기술의 산물인 인공지능은 어떤 목표와 가치에 따라 활용하느냐에 따라 도구가 될 수도,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런 복합 위기가 ';연결';에서 비롯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위기들을 해결할 돌파구 역시 ';연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인간은 약한 개체로서 홀로 살아남기 어려웠기에 집단을 이루었고, 협력과 상호성은 집단을 지속시키는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는 공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존중도 마찬가지다.(261쪽) 그런데 이 위기들의 공통점은 어느 한 개인이나 국가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를 만들어 갈 운명의 공동체 범위를 가족과 집단, 민족과 국가에 국한하지 않고 인류 전체로 넓혀야 한다. 우리 모두가 세계 시민으로서의 인식과 책임을 가지는 우분투 도그마가 필요하다.(277쪽) 나아가 자연법칙을 설명하는 ';과학';과 인간의 가치를 다루는 ';인문학';을 명확히 구분하고 단단히 연결해야, 과학만능주의나 반지성주의에 빠지지 않고 초연결 시대의 복합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 “인문학이 없는 과학은 위험하고, 과학이 없는 인문학은 공허”하기 때문이다.(13쪽)
    기술과 물질은 초연결로 치닫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단절되어 길을 잃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연결이 아니라 더 나은 연결이다. 이 책은 과학과 인문학을 잇는 시선으로 인류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연대와 공감, 자유의지와 주인 정신을 일깨우게 한다.

    출판사 리뷰

    《연결의 과학》은 아주 큰 질문에서 출발한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과 이어져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빅뱅에서부터 원자와 별, 세포와 유전자, 두뇌와 지능, 문명과 인공지능까지 서로 멀어 보이는 이야기를 한데 불러낸다. 과학과 인문학의 관계도 흥미롭다. 자연법칙은 과학이 설명하고, 인간의 가치와 선택은 인문학이 다룬다. 서로 역할이 다르기에 함께 볼 필요가 있다. 팬데믹과 기후 위기, 인공지능과 세계화처럼 한 분야만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지금, 이런 시선이 중요하다. _이정모(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저자 소개

    주철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의학교육학 교수.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미생물학 교실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선천 면역의 인터페론 신호 전달과 만성 염증 발생 기전을 주로 연구하고, 바이러스로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트로이목마 바이러스를 개발했다. 연구 과정에서 생명정보학을 다루면서 컴퓨터과학에 익숙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의학교육학 교실에 겸임 발령을 받고,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을 통해 방대한 의학 지식을 효율적으로 학습시키기 위한 이론과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전공과 관련한 전문적인 내용을 대중에게 보다 쉽게 알리는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특히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인간광우병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글과,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발표한 &COVID-19(코로나19)의 특성&이라는 글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겨레》에 〈주철현의 코로나 디코딩〉을 연재하였고, 현재는 〈주철현의 커넥션〉을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코로나 팬데믹을 다룬 《바이러스의 시간》이 있다.

    책 속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두 가지 연결의 증명입니다. 첫 번째는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 연결입니다. 원시림의 어두운 동굴에 사는 박쥐가 품고 있던 바이러스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건너온 것은 자연과 문명의 연결을 증명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자유의지가 만들어 내는 운명적 연결입니다. 방역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발생한 변이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것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합니다. 코로나 방역은 이 두 가지 연결을 명확히 구분하고 대응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_8쪽

    우리 지구가 특별한 시공간인 것은 생태계(ecosystem)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지구 이외에 생명을 품은 행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생태계의 경계는 생명이 존재하는 범위입니다. 생명이 탄생하고도 오랜 시간 생태계는 바다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물을 품을 수 있는 식물과 동물이 상륙하면서 생태계는 육지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런 생태계 확장은 2차원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바다는 깊고 산은 높아 보이지만, 지구 지름에 비해 표면 굴곡은 0.17% 정도에 불과합니다. 생태계는 매끈한 표면을 얇게 덮은 습자지와 같습니다. 생태계를 벗겨 덩어리로 뭉치면 지구 부피의 단 0.03%에 불과합니다. _36~37쪽

    교실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교실은 학생들로 구성되는 계입니다. 이 계의 무질서도는 수업 시간에 낮아지고 쉬는 시간에 높아집니다. 선생님은 에너지(노력)를 투입해 학생과 의자의 연결 에너지(질서)를 높입니다. 이때 교실의 무질서한 정도를 엔트로피, 연결 에너지로 잠재된 에너지 총합을 엔탈피(enthalpy)라 합니다. 수업 시간에는 엔트로피가 낮고 엔탈피는 높으며, 쉬는 시간에는 엔트로피가 높고 엔탈피는 낮아집니다. 이처럼 엔탈피와 엔트로피는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으며 각각 에너지와 질서라는 관점에서 측정되는 계의 물리량입니다. 이 중 엔트로피가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학년이 끝나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학급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는 교실의 본질적 실존인 학생의 연결이 소멸되는 것으로, 엔트로피가 최대인 순간이며 최고로 무질서한 순간입니다. _51~52쪽

    생명의 도그마는 지구를 벗어나면 성립하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외계 생물이 어딘가 존재해도, 그들의 도그마는 우리와 다를 것입니다. 지구에 와서 음식을 먹는다면 소화시킬 수 없어 굶어 죽을 것입니다.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단백질 정보를 유전자로 변환시키는 생명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생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생태계에 실존하면 생명의 중심 도그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생명의 도그마는 지구의 물리적 환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고유 원리입니다. 이 때문에 지구의 생물은 죽어야 하는 숙명을 지니며, 유전자는 진화하는 운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_82쪽

    루카의 탄생 이후 생태계에서는 각자도생의 생존 게임이 40억 년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게임의 유일한 규칙은 생명의 도그마이지만 그 어떤 게임보다 공정합니다. 규칙이 합리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적용의 절대성 때문입니다. 생명의 도그마라는 규칙의 집행관은 죽음입니다. 도그마를 따르지 않으면 죽습니다. 다양한 생물이 먹이사슬을 통해 연결되는 것은 모두 생명의 도그마에 속박되기 때문입니다. 쌀은 벼가 만들고, 삼겹살은 돼지가 만들지만 우리가 모두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은 생명의 도그마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흙을 먹고 살 수 없는 것은, 흙 분자는 생명의 도그마를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흙을 먹고 살아가는 생물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생태계 생물은 무조건 생명의 도그마를 따릅니다. _98쪽

    게임 이론은 게임의 참가자가 보상에 만족하는 전략을 찾습니다. 친구 집단의 눈치 게임에서 짠돌이 전략을 고수하면 왕따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호구 전략으로만 나가면 우정 대신 영수증만 모으게 될 것입니다. 왕따와 호구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게임 이론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피곤하게 전략을 따져 가며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래 사귄 친한 벗이 있다는 것은 서로 만족하는 이익의 균형점에 저절로 도달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게임을 반복하다 보면 모두가 만족하는 이익과 손해의 균형점에 수렴합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은 자연의 동물 집단에서 이타성이 발현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즉, 각자도생의 원리로 피투된 실존체의 집단에서, 이타성의 발현이 가능한가와 동일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집단을 구성한 생물(참가자)이 자신의 이익(보상)을 위해 벌이는 종내 경쟁(게임)을 통해 이타성(전략)이 진화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 내시 균형입니다. _156~157쪽

    문명이라는 복잡계는 우리가 창발시켰습니다. 생물의 상호작용에 의해 자기 조직화된 생명의 도그마는, 물리계에서 생태계를 창발시킨 고유 질서입니다. 마찬가지로 문명에도 인간의 지속적 상호작용으로 자기 조직화된 고유의 원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태계와 문명계를 차별시키는 ';인문(humanitas)';입니다. 창발의 연쇄라는 관점에서 생태계와 문명은 연속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이 물리적 실존체가 아닌 만큼 문명의 원리는 절대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물리적 힘, 생명의 도그마는 절대적입니다. 이를 어기는 실존체는 아예 존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문명과 하위계에 적용되는 상식, 예절, 규범, 법규 등의 상호작용 원리에는 절대성이 없습니다. 대신 사람이 만들어 사람에게 강제된다는 상대성이 지배합니다. 문명의 도그마라 할 수 있는 인문은 우리가 만드는 연결의 질서입니다. _181~182쪽

    혹독한 환경과 풍족한 환경 변화를 오가며 진행된 인공지능 진화는,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유전 정보의 진화와 유사합니다. 과거처럼 개인적 호기심 차원의 연구는 이제 불가능합니다. 연구 장비나 재료의 비용이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현대에는 많은 연구비가 필수입니다. 현대 과학에서 연구비를 움직이는 것은 대중의 관심입니다. 대중의 실망은 연구 환경에 혹독한 겨울을 부릅니다. 이때 살아남는 소수의 연구자들은 막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냅니다. 이는 다양성에서 일어나는 유전 정보의 분기와 유사합니다. 흥미로운 결과는 다시 기대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연구 생태계의 봄을 불러옵니다. 하지만 풍족한 자원은 대중의 관심 분야로만 쏠리기에 생각의 다양성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그러다 기대를 받던 분야가 한계에 달하면 관심은 식어 버리고 환경은 다시 얼어붙어 버립니다. 이때 생각의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분야의 학문 생태계는 소멸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생각이 존재하면 한계를 돌파하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지금 세상을 움직이는 인공지능도 기대와 실망이 만들어 내는 환경 변화에서 살아남은 다양성 진화의 결과물입니다. _249쪽

    문명에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소 집단은 가족입니다.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명 집단에서 일방적 에너지 투입은 드문 일입니다. 대신 구성원 사이에서 이익과 손해의 균형을 찾는 게임이 벌어집니다. 흔히 내리사랑이라고 불리는, 부모의 불공평한 에너지 투입을 통해 자식은 여분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이 에너지로 공부해서 후천 지능을 발달시키고, 친구를 사귀어 사회적 자아를 확장하고, 연애를 해서 자기 가족을 구성합니다. 그렇게 부모가 되면, 다시 자식에게 일방적 에너지를 투입합니다. 이처럼 부모에서 자식으로 흐르는 일방적 에너지 선순환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비결입니다. 동물의 유전 정보 진화는 자식의 기투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 생태계에서 가장 오래, 가장 일방적으로 자식에게 에너지를 투입하는 동물은 인간입니다. 자식의 운명에 부모가 적극 개입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생태계 최고의 금수저입니다. _271쪽
    집단의 충돌과 융합에서 공감 엔트로피는 역동적으로 출렁입니다. 충돌하는 두 집단의 공감 엔트로피는 최고치가 되고, 성공적으로 융합되면 최저치가 됩니다. 이때 융합의 전제 조건은 소통입니다. 문명의 여명기에는 욕이 교양이었습니다. 돌도끼로 머리를 내리치기 전 마지막 소통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분노의 감정을 소통하는 것과 분노를 행위로 투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폭력 행위는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을 유발합니다. 감정 충돌의 해결 수단이 돌도끼밖에 없는 집단은, 다른 집단과 경쟁 이전에 자멸할 것입니다. 따라서 집단이 지속되려면 최소한 폭력보다는 세련된 감정 소통 수단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발명된 욕설은 분노의 감정 소통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욕도 알아먹어야 통합니다. _288쪽

    한 줌에 불과했던 인류가 자연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인간성은 공동체 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배금주의가 심화되면서 돈을 버는 능력을 인간성으로 착각합니다. 그 결과 문명은 점차 자연의 각자도생 도그마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나무와 밀림은 빌딩과 도시가 되었고, 먹이 대신 돈을 두고 싸우는 차이만 있습니다. 생태계 관점에서 획일적 경쟁 원리는 문제가 없습니다. 종의 유전자를 경쟁시켜 진화하는 생태계처럼, 개인의 생존 경쟁이 집단을 발전시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시험관 속의 대장균이 아닙니다. 배금주의가 허상인 이유는 100억 원이 있어도 무인도에서는 물 한 병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식이 가치 있는 것은 미래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 중심의 집값이 비싼 이유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입니다. 추상적 개념인 돈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명에서 가치는, 우리의 연결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_328쪽

    목차

    들어가는 말: 초연결 시대의 위기, 과학과 인문학의 연결에서 돌파구를 찾다

    1부 나를 만드는 연결: 숙명의 피투

    1장 실존
    1. 측정이 가능해야 [실존]이다
    2. ';계';라는 [실존]의 무대
    3. 별이 만들어 내는 [실존]의 재료
    4. [실존]은 죽음으로 연결된다

    2장 생명
    5. [생명]의 에너지는 식물이 생산한다
    6. 세포는 [생명]의 최소 공간
    7. 상보성이 기반인 [생명]의 정보
    8. [생명], 중심 도그마가 지배하다

    3장 진화
    9. [진화]를 통해 다양성이 증가하다
    10. ';루카';라는 [진화]의 특이점
    11. [진화]하는 유전자는 불멸한다

    4장 인간
    12. [인간]의 자유의지 특이점
    13. 무한한 시행착오의 결과물, [인간]의 유전자
    14. [인간]의 유전 정보, 발생을 통해 피투되다

    5장 지능
    15. 두뇌, [지능]이 발현되는 하드웨어
    16. 학습을 통해 프로그램되는 [지능]
    17. [지능]이 게임을 하면 이타성이 발생한다
    18. [지능]은 문명 집단을 기반으로 진화한다

    2부 우리가 만드는 연결: 운명의 기투

    6장 문명
    19. 인류의 실존 무대, [문명]
    20. 정보란 [문명]에서 진화하는 불멸자
    21. 서열 형태로 존재하는 [문명]의 정보
    22. [문명], 정보와 지식을 구분하다

    7장 지식
    23. 집단 지성을 통해 진화하는 [지식]
    24. [지식]의 특이점은 농경 문화
    25. [지식]을 탐구하는 과학은 문명의 DNA
    26. [지식]을 이용하는 공학은 문명의 RNA

    8장 인공지능
    27. 컴퓨터, [인공지능]의 하드웨어
    28. 학습으로 프로그램되는 [인공지능]
    29. [인공지능]은 연결의 창발 현상이다

    9장 공감
    30. 자유의지가 개입된 지능, [공감]
    31. [공감] 엔트로피가 높으면 혼란계가 된다
    32. 인본주의, [공감]의 중심 도그마
    33. [공감]이 단절되면 폭력과 전쟁을 낳는다

    10장 연결
    34. [연결]의 시스템은 자본 시장이다
    35. 세계화, [연결]의 마지막 장
    36. [연결]의 시대정신은 주인 정신이다
    37. [연결]은 피투된 상황의 자각에서 시작된다
    38. [연결]을 위한 선택과 결정의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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