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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물

    꽃물

    • 박정옥 저
    • 나무향
    • 2026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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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24078211 296쪽 135 x 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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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마음에도 무게가 있다. 곁에 두고 싶은 간절함이 누군가의 어깨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계절을 지나야 할까. 박정옥의 두 번째 수필집 『꽃물』은 가족을
    돌보고 일상을 건너온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사랑의 깊이와 알맞은 거리를 다시
    헤아리는 책이다.

    다섯 부에 담긴 쉰두 편의 수필에는 부모에게 받은 사랑, 자녀를 향한 애틋함, 오랜 벗과 나눈
    온기, 나이 들어가는 몸과 마음의 변화가 흐른다. 멀리 있는 딸의 소식을 기다리다가 자신의
    조바심을 돌아보고, 평생 삶의 짐을 지고 온 어깨를 쓰다듬으며 남은 여정을 함께 가자고
    다독인다. 낙동강 옆길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얼굴들이 떠오르고, 마른 작약의 향기에서는
    가족을 건사하느라 감추어두었던 아버지의 노래가 되살아난다.

    엄마가 짜주신 참기름, 딸에게 건네던 양말,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찾던 사발 고기는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흔적이다. 작가는 익숙해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정성과
    노고를 더듬으며, 늦게 찾아온 이해와 그리움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고향의 타작마당과
    초가지붕을 되짚는 문장에는 한 가족의 기억을 넘어 이웃과 손을 맞추어 살던 시절의 풍경도
    깃들어 있다.

    그리움 속에 머물기만 하는 책은 아니다. 봄을 기다리는 베란다의 작은 정원, 마음의 숨통을
    열어주는 독서, 책방골목과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경, 살갑게 말을 붙이는 가전제품까지 오늘의
    생활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가족의 기쁨을 자신의 봄이라 여기던 작가는 이제 자신의 봄이
    어디쯤 와 있는지도 묻는다.

    『꽃물』은 살아온 날들이 마음에 남긴 빛깔을 들여다보게 한다. 기쁨과 서운함, 후회와 고마움이
    번진 자리에서 독자는 자신의 오래된 기억과 마주할 것이다. 가까울수록 깊이 사랑하되 무겁지
    않게, 곁에 있을 때 조금 더 다정하게. 이 책은 그 소박하고도 어려운 마음의 숙제를 우리에게
    건넨다.

    출판사 리뷰

    박정옥의 『꽃물』에서 기억은 감각을 따라 되살아난다. 이 수필집의 문학적 힘은 바로 익숙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온다.
    「타작마당」은 곡식과 비바람을 받아주던 땅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삶을 떠받친 아버지를 형상화한다. 「마음에 생긴 구멍」에서는 양말을 기워주던 어머니와 외로움으로 구멍 난 어머니의 마음이 포개진다. 「고소한 한 방울」은 깨가 기름이 되는 과정을 어머니의 일생과 연결하며, 딸에게 보내온 음식 안에 사랑과 외로움이 함께 있었음을 발견한다. 생활의 구체적인 장면에서 출발한 비유가 관계의 깊은 곳까지 이어지기에, 그리움은 독자의 감각에 닿는 모습으로 전달된다.
    작가의 성찰은 자신의 마음에도 엄격하다. 「꽃물」에서 딸을 걱정하던 화자는 그 걱정에 자주 연락받고 싶은 욕심이 섞여 있음을 알아차린다. 「사발 고기」에서는 아버지의 마지막 바람을 들어드리지 못한 일이 오래 남을 아픔이 된다. 사랑했던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고, 상대의 처지와 자신이 놓친 순간을 돌아보는 태도가 글에 신뢰를 더한다. 이 책에서 뒤늦은 깨달음은 회한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묻는 출발점이 된다.
    「봄과 한 발 차이」는 책 전체를 읽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다. 남편의 승진과 자녀의 성취를 자신의 봄으로 여기던 삶을 돌아보면서, 작가는 자기 삶의 계절을 새롭게 묻는다. 「어깨」에서 지친 몸에 말을 건네는 장면도 같은 흐름에 놓인다. 가족을 위해 내주었던 마음이 자신의 몸과 생을 돌보는 데까지 넓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가사 도우미 기계를 의인화하는 익살과 책에서 위안을 구하는 일상이 더해져, 노년의 생활은 변화와 호기심이 이어지는 현재로 그려진다.
    작가는 거창한 사건보다 곁에 있던 사람과 사물에 오래 눈길을 준다. 그 눈길을 따라 읽다 보면 독자 역시 당연하게 받아온 사랑의 수고를 헤아리게 된다. 『꽃물』은 삶을 오래 건너온 사람의 이해가 어떻게 깊어지는지, 그리고 그 이해가 오늘의 다정함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수필집이다. -〈나무향〉

    저자 소개

    박정옥

    경남 양산 출생
    2012년 《한국산문》 등단
    2018년 수필집 《가죽벨트가 있던 이발소》 출간
    2023년,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 수필 발표 선정 수혜

    책 속에서

    ‘잘 지내겠지.’ 생각하면서도 할 일 없는 나만 애틋해서 “카톡 좀 해라. 강아지 사진 좀 보내봐라.” 안달하지만 “네.” 하는 딸의 답은 그때뿐이었다. 섭섭한 마음과 그리움이 쌓여 감정이 무거워졌다. 그러다 문득 걱정을 핑계 삼아 자주 소식 주고받길 원하는 내 욕심을 보았다. 생판 낯선 곳에서 적응하고 견뎌내야 하는 그들은 하루하루가, 매 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보고 싶고 걱정된다는 마음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너무 무겁게 딸의 어깨에 올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울수록 깊이 사랑하되 무겁지 않게.’ 남은 생에 숙제가 될 듯하다.
    -〈꽃물〉 중에서

    꽃은 그냥 피는 것이 아니다. 땅심으로 여린 싹을 틔우고 비바람 앞에서도 맞서서 무성하게 잎을 달았다. 봉오리 맺어 환하게 꽃을 피워낼 때까지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비바람 앞에서도 언뜻언뜻 비추는 햇발이 있었음이다. 녀석에게 일기 시작한 바람이 어떤 바람으로 변할지 알 수 없지만, 일고 있는 바람길에 햇살도 함께함을 녀석도 느낄 것이다.
    -〈바람이 이는 시기〉 중에서

    피붙이만 어깨를 내주는 것은 아니다. 젊은 날 내 울음이 파도 소리보다 크게 꺼이꺼이 목구멍을 뚫고 나오던 날, 광안리 밤 바닷가에서 쓴 소주를 함께 마셔주던 친구가 있었다. 각별하던 그 친구와 어느 때 별것도 아닌 사소한 언행에 서로가 마음을 다쳐서 소원해졌다. 틈이 약간 생기니 메꾸기가 어려웠다. 그날 광안리 밤바다에 함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녀를 잃을 수가 없었다. 차깔한 마음을 열고 먼저 연락했다. 조금 더디긴 했어도 그녀도 벌어진 틈을 메우며 예전처럼 서로 어깨를 기댈 수 있게 마음을 열었다.
    아이들이 목말을 탈 때 기꺼이 내주고 때로는 매달려서 칭얼거릴 때 자장가를 대신 해주던 내 어깨도 이제 많이 지쳤나 보다. 수시로 떼를 부리고 아우성을 친다. 어깨의 통증이 어찌 휴대전화 같은 문명의 이기에 딸려 나간 목 때문만이겠는가. 세월 앞에 사위어 가는 유한의 몸뚱이가 아닌가. 한때 자식들의 영광이 나의 영광인 양 으쓱으쓱하며 조금만 기분이 좋아도 우쭐대던 어깨엔 파스 자국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동그란 피멍이 부항 자국으로 남아 있다. 무너져 내릴지언정 고개 숙이지 않던 빠당빠당하던 내 어깨가 조금씩 수그러지고 있다. 온갖 무거운 짐을 올려도 끄떡도 안 하던 그를 오랫동안 홀대한 것이 미안하다.
    -〈어깨〉 중에서

    바람도 없는데, 계곡 쪽으로 뻗고 있던 나무에서 작고 메마른 가지 하나가 “툭” 하고 물속에 떨어졌다. 놀란 물고기 떼들은 파르르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나뭇가지는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기고 아무 일도 아닌 듯 떠내려갔다.
    바위와 돌 사이로 “꼴 꼴” 소리 내며 웅덩이로 뛰어들던 물줄기가 하얀 거품을 끊임없이 뿜어낸다. 이 물은 새벽녘 소나기도 품고 있겠지. 계곡물의 여정을 생각해 본다. 물은 둥글고 큰 바위나 날카롭고 뾰족한 돌을 탓하지 않는다. 버릴 것은 버리고 품을 것은 품으면서 그냥 제 갈 길 가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중에서

    역 맞은편 고목으로 버티던 벚나무는 사라지고 매실나무들이 꽃도 열매도 다 털어내고 푸른 잎만 단 채 철길 옆 낙동강에 몸을 씻고 있다. 오후의 붉은 해가 내 몸과 마음에 들어왔다. 무심히 강물을 바라보는데 오래전 어느 날 친구들과 나룻배로 낙동강을 건너면서 깔깔대던 내 청춘의 한 토막이 휙 지나간다.
    햇살에 붉게 익어가는 강물 위에는 부지런하고 정직했던 아버지의 검붉은 얼굴과 맑은 눈을 가진 첫사랑의 웃음 가득한 얼굴이 윤슬처럼 아른거린다. 아무리 그리워해도 다시는 이 길을 함께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나도 이 길을 다시는 갈 수 없는 날이 머지않았으리.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햇살 때문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낙동강 옆 그길〉 중에서

    삶처럼 그림도 어느 것 하나라도 대충할 수 없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힘 조절하면서 꽃잎을 터치하는 순간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로지 내 손끝에서 붓의 힘으로 연꽃이 생명을 얻는 순간일 뿐, 그 순간의 마음은 순수한 백지 같아야 했다. 더 예쁘게 칠해야지 하고 마음에 욕심이 들어가면 한지 위에 있는 붓이 철없는 아이처럼 제 맘대로 날뛰고 떼를 썼다.
    삶처럼 그림도 어느 것 하나라도 대충할 수 없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힘 조절하면서 꽃잎을 터치하는 순간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로지 내 손끝에서 붓의 힘으로 연꽃이 생명을 얻는 순간일 뿐, 그 순간의 마음은 순수한 백지 같아야 했다. 더 예쁘게 칠해야지 하고 마음에 욕심이 들어가면 한지 위에 있는 붓이 철없는 아이처럼 제 맘대로 날뛰고 떼를 썼다.
    -〈한지에 피는 꽃〉 중에서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 찔레 향을 데려왔다. 그날 밤 달빛보다 빛났던 스물의 그가 잠시 늙은 소나무 아래서 나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순간 내 아린 가슴에서 철없던 스물의 입맞춤이 살금살금 기어 나와 오래전 닫혀버린 내 감정의 문을 두드리며 물어본다.
    ‘그게 사랑이었는지….’
    -〈그 소나무 아래서〉 중에서

    봄부터 늦가을까지 들마당은 온전하게 터를 내주었다. 봄날, 뱀딸기가 샛노란 꽃을 피우며 빨간 열매를 맺을 수 있게 귀퉁이를 내어주고, 폭우로 쏟아지는 장맛비가 저수지로 가는 물길도 내어주었다. 타작마당일 땐 곡식과 함께 도리깨로 한없이 맞기도 하고, 토닥토닥 깻단과 속삭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나락을 터는 난장판까지 말없이 받아주고는 황량하게 겨울잠에 들어가서 다음 해 봄을 꿈꾸었다.
    이제 고향 들판엔 보리나 벼 대신 유실수가 더 많고 저수지와 타작마당이 있던 곳에는 전원주택의 예쁜 마당이 들어섰다.
    돌아보면 아버지의 일생도 우리 가족의 타작마당이었다.
    -〈타작 마당〉 중에서

    어느 날 아버지는 “병원 밥은 죽어도 먹기 싫다. 요새 사발 고기 나오나?” 하고 물으셨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도 이미 오래전부터 낙동강에서 사발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입맛 떨어진 아버지는 먹고 싶은 음식이 없었고 차츰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드시고 싶었던 사발 고기 비슷하게라도 해드릴걸. “요새 사발 고기 나오냐?” 하시던 그 말씀이 내 명치 끝에 걸려 있다. 아마 오래도록 아플 것 같다.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내 마음을 좀 더 여유롭게 다듬을 것이다. 물질적 빈곤을 벗어나려고 아등바등 바쁘게 살았던 부피만큼 내가 사랑하는 모두에게 더 많은 관심으로 민틋하게 살고 싶다.
    -〈사발고기〉 중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볕에 그을린 검붉은 얼굴로 지게를 지고 다니던 모습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지게 위의 짐은 청솔가지 섞인 나뭇짐일 때도 있었고, 당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볏단이 쌓였을 때도 있었다. 지게 위에 바지게를 얹어 붉은 감이나 채소를 옮기기도 했다. 어린 나도 가끔 아버지 지게 위에 올라타고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들로 따라갔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아버지도 한때는 꽃같이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겠지.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을 건사하고 살아내느라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사랑가는 마을 잔치에서나 불렀던 걸까? 아버지가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니 낯설다. 내겐 일하는 아버지가 평생 울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이생을 마치고 가실 때 사랑 노래와 어깨춤을 품고 갔으리라.
    우리의 아버지가 되느라 가슴에서 꺼내지 못한 흥을, 그곳에선 맘껏 향유 하시길 바라본다.
    주말부터 말리던 작약의 향기가 짙어졌다. 고향 후배의 기억 속에서 튀어나온 아버지 향기가 마른 작약 향처럼 진한 그리움으로 가슴에 스며들었다.
    내 휴대전화가 ‘너영나영’을 반복해서 울린다.
    -〈마른꽃 향기〉 중에서

    가을걷이가 모두 끝나고 간밤에 서리가 내렸던 날이다. 옥이 엄마는 찔레꽃처럼 환한 낯꽃을 하고는 나의 하얀 속살을 씻고 또 씻어서 방앗간으로 가져갔다.
    “올해는 우리 깨가 참 좋네. 기름 좀 짜 주소. 서울에 있는 딸에게 보내려고 하니 꼬소하게 짜주소.” 이 소리를 마지막으로 듣고는 뜨거운 불판 위에서 어지럽게 돌다가 쇠로 된 기름틀에 들어갔다. 무거운 눌림 판에 짓눌려 마지막 진액 한 방울까지 다 쏟아냈다. 깻묵은 밭의 거름이 될 것이다.
    -〈고소한 한 방울〉 중에서

    살면서 많은 것을 너무도 당연한 듯 그냥 그러려니 했다. 맛있는 채나물도 가족의 건강과 입맛까지 살피는 사랑에서 나온 맛인 것을 알지 못했다. 본래 그런 맛인 줄 알고 엄마의 정성과 노고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처럼, 소중한 것을 그때는 알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을 때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채나물〉 중에서

    우리 집에 새로 이엉을 이는 날은 앞집 아저씨와 친척 아재들이 와서 함께 손을 맞추었다. 낡고 삭은 이엉을 걷어내면 굼벵이가 썩은 이엉과 함께 툭툭 떨어졌다. 새 이엉은 지붕의 아래쪽부터 빙 둘러주었다. 윗단은 이엉 사이로 비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아랫단과 일정 부분이 포개지도록 했다. 지붕 꼭대기까지 이엉을 다 두르고 나면 마지막으로 용마름을 얹고 새끼줄로 고정해서 마무리했다. 이날은 잘 익은 햇볕도 노란 새 지붕을 더 빛나게 하고 마당 구석구석에 온기를 주며 곧 겨울을 맞을 사람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었다.
    -〈아버지의 집〉

    봄까치꽃은 무리 지어 피는 것이 특징이지만 주위를 둘러보아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춥고 매서운 한파에 웅크리고 있다가 한결 부드러워진 바람결에 성급한 한 송이가 먼저 얼굴을 내민 듯했다. 아직 소소리바람이 남아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급한 성질이 나와 비슷한 듯해서 괜한 걱정을 해본다.
    봄까치꽃을 만난 이후 하루에도 서너 번은 작은 정원인 베란다에 나갔다. 화분 속의 산작약이 행여 꽃대라도 밀어 올렸을까? 할미꽃과 매발톱꽃도 꽃봉오리를 물었는지 살펴본다. 때로는 창문을 활짝 열고 지나가는 바람과 햇볕, 아파트 뜰의 식물에도 봄이 어디쯤 왔냐고 말을 걸었다. 나이 많은 은행나무는 아직이라며 눈을 꼭 감고 있고, 잔디는 감추어 두었던 연둣빛을 살짝 보이면서 바스스 일어나서 이제 곧 봄이 온다고, 한 발짝 정도 남았다고 한다.
    -〈봄과 한 발 차이〉 중에서

    사람에게도 집은 생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안전한 곳이다. 하지만 내 집 한 채 장만하는 일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 요즘은 더 그렇다. 몇 년 전부터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아직 집을 마련하지 못한 이들은 집을 마련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불안하고 조급하다. 집을 사기 위해서는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영끌’이란 말도 생겼다. 집이 존재에서 소유의 개념으로 바뀌면서 사람이 집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집이 사람을 선택하는 상황이 된 듯하다.
    수없이 바뀐 부동산 정책 때문에 대출을 쉽게 받을 수도 없고 대출 이율도 높아져서 전세 반환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딸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하지만 딸과 사위는 낙심하지 않고 부지런히 실젖을 뽑아내며 때를 기다릴 것이다.
    단단한 실샘을 가진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큰 힘이 되겠지만, 나의 실샘에는 점성이 강한 실젖이 없어 마음이 아프다. 지켜보며 응원할 수밖에.
    내일은 완성된 집에서 느긋이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 모습을 보고 싶다.
    -〈거미의 실젖〉 중에서

    살아오면서 턱 턱 숨 막히는 관계의 고비를 넘을 때도 사랑의 본질에 대해 회의하던 시절에도 옳은 것을 위해 진정한 용기를 내지 못할 때도 책장 속에서 눈 마중하는 이 책을 보며 ‘괜찮아, 괜찮아.’라며 생의 한가운데서 날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 중에서

    목차

    책을 내며
    제1부 꽃물
    꽃물
    바람이 이는 시기
    어깨
    그곳에 가면
    그 마음과 그 마음
    낙동강 옆 그 길
    한지에 피는 꽃
    그 이름 엄마
    반려 식물
    그 소나무 아래서
    제2부 마른꽃 향기
    타작마당
    사발 고기
    마른꽃 향기
    마음에 생긴 구멍
    고소한 한 방울
    채나물
    술과 기다림
    아버지의 집
    외갓집
    그리움에 담긴 부끄러움
    제3부 봄과 한 발 차이
    봄과 한 발 차이
    거미의 실젖
    그런 사람이 없다
    루틴 있어요-
    책에 대한 잡소리
    괜찮아,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
    코앞에 다가왔다
    가사 도우기機
    내 이름은 갤럭시
    술과 이야기하다
    냄비 우동
    제4부 삶을 엮는 다리
    축제
    자갈치시장
    삶을 엮는 다리
    사하에서 보낸 하루
    책방골목
    가을 도산 서원
    때늦은 덕질
    자수전刺繡展을 보며
    오세암
    외로운 자유
    일리에 콩브레를 가다
    제5부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
    오월이
    나의 만가挽歌
    슬픈 빈곤
    풀빵
    비긴 어게인(Begin Again)
    고동 껍데기
    작은 새와 그녀
    순돌 씨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
    목련은 다시 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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