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에서 육조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대중국의 미술과 건축에 드러난 <기념비성>을 고찰하고 있는 이 책은 회화, 조각 등의 분류별 이해에서 벗어나 고대중국의 미술과 건축의 역사를 하나의 일관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동시에 개별적인 고고자료 혹은 미술자료에 담긴 <기념비성>을 통해 그 시대의 종교적, 사회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극이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이른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은 자신의 글이 외국잡지에 실려 외국학자들의 인정을 받으면, 국내의 다른 학자들에 비해 자신이 무척이나 훌륭한 학자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이공계통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심지어 동아시아학을 하는 사람의 경우도 크게 예외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정작 외국학자들이 쓴 동아시아학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그다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글도 완벽하게 읽지 못하면서 무슨 공부를 하냐는 식이다. 반대로 서양학자들의 글을 읽어보면 그 자료는 모두 ...
이른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은 자신의 글이 외국잡지에 실려 외국학자들의 인정을 받으면, 국내의 다른 학자들에 비해 자신이 무척이나 훌륭한 학자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이공계통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심지어 동아시아학을 하는 사람의 경우도 크게 예외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정작 외국학자들이 쓴 동아시아학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그다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글도 완벽하게 읽지 못하면서 무슨 공부를 하냐는 식이다. 반대로 서양학자들의 글을 읽어보면 그 자료는 모두 동양의 것이지만, 연구성과는 대부분 서양학자들의 글이 인용되어 있지 동아시아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는 그다지 많이 인용되지 않는다.
글을 읽지 못해서가 아니라, 별반 인용할 만한 가치를 못 느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아시아의 연구가 지극히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지만, 동아시아학을 연구하는 동아시아의 학자들과 서양의 학자들 사이에는 분명 커다란 틈새가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많은 학자들이 이 틈새를 메워보려고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지만, 여전히 커다란 진전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동아시아의 학문전통과 서양의 현대학문의 만남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순간과 영원: 중국고대의 미술과 건축』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동아시아 학문전통과 서양의 현대 학문이 잘 맞물려 있는 이 책을 둘러싸고 미국의 중국미술사, 중국고대사, 중국고고학계에서는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양의 연구방식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중국의 학계에서도 이 논쟁이 소개되면서 많은 중국학자들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입장을 통해 우리는 적어도 이 책이 서양의 현대적 이론과 동아시아의 학문전통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두 학계 모두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장점은 기존의 학문영역을 무너뜨리는 이른바 학제간 연구가 모범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는 미술사와 역사 사이의 벽을 허물어 어느 쪽이든 상대 영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으며, 아울러 서구의 시각 예술, 미학에 관한 각종 이론이 곳곳에서 구사되면서도 결코 어떤 특정 이론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이러한 장점은 이미 저자의 이력에서 비롯한다. 저자인 우훙(Wu Hung, 巫鴻)은 북경 중앙미술학원에서 학사학위(1968)와 석사학위(1980)를 받았고, 1973년부터 1980년까지 북경 고궁박물원에서 일했다.
그뒤 도미하여 하버드 대학에서 중국 미술사 연구로 박사학위(1987)를 받은 후, 1993년까지 하버드 대학에서 조교수 및 부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94년부터는 시카고 대학에서 중국 미술사 석좌교수로 있다. 이러한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전통적 문헌자료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함께 서양의 학문방식을 겸비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The Double Screen: Medium and Representation in Chinese Painting(London: Reaktion Books, 1996)이 『그림 속의 그림』(서성 옮김, 이산, 1999)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을 통해 둘러보는 고대 중국의 역사
저자는 선사시대에서 위진남북조시기까지에 걸친 긴 기간 동안의 미술사를 이라는 저자 나름의 독특한 개념 하나로 엮어내고 있다. 보통 라고 하면 영구적인 것, 웅장한 것,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르지만, 이러한 규정만으로는 시공을 떠나 다양한 문화적 기원을 갖는 여러 문화들 속의 기념비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어떤 문화에서는 매우 가늘고 얇고 약해서 오래가지 못하는 것, 충분히 들고 움직일 수 있는 작은 물건들이 그 사회의 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는 명백한 을 갖고 있어야 하므로, 가 아니라 을 찾아내면, 기존의 에 대한 관습적 이해에서 벗어나 그 사회의 진정한 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이 기념비에 담긴 은 그 시대의 중요한 특징들을 대표하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각 시대의 이 바뀌어지기 마련이라면, 선사시대에서 위진남북조시기까지 을 따라 서술한 이 책은 자연히 그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반영된 역사의 흐름을 담게 된다.
제목에 이라는 말이 들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일단 미술사와 관련된 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역사학을 전공한 역자가 이 책을 풀어놓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미술과 건축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였으나, 그 안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은 단순히 미술사나 건축사에만 그치지 않고 역사 전반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이 책의 이러한 특징은 특유의 서술 방법론으로 이어지는데, 상이한 예술 형식들을 하나로 묶어 그 상호관계를 고찰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토기와 옥기, 그리고 청동기, 궁전, 사당, 화상석, 闕門 등이 대상이 되는데, 보통은 대상별로 그 양식의 발전과정을 서술하여 이를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겠지만, 저자는 다양한 예술형식의 전개를 이라는 하나의 개념을 갖고 통일적으로 엮어냈다.
따라서 중국고대 미술의 전체적 흐름이 특징적으로, 또한 역동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저자는 신석기시대에 이미 玉과 같이 귀하고 특별한 재료로 일상용기를 모방하기 시작하면서 중국고대 미술의 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뒤 은 옥기의 장식으로 표현되었으며, 다시 명문 혹은 휘장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 다음 시기인 청동기시대가 되어서도 동일한 과정이 반복되었는데, 처음에는 귀하고 특별한 청동기로 예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이 되었고, 이후 형태→장식→명문의 과정으로 이 표현되었다고 한다. 동주시기가 되면서 은 과정을 거쳐, 이전의 청동기에서 거대한 궁전과 같은 건축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후한시대에는 다시 돌과 회화예술이 을 갖게 되었는데, 이것들이 잘 표현된 것이 후한시대의 화상석이며, 六朝시대의 石闕들은 이러한 계통을 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각 시대별로 여러 가지 재료의 기념비들을 다루면서도 이를 그저 나열하지 않고, 이전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넘어가면서 이 다른 물건이나 건축으로 바뀌게 된 정치적?사회적 배경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이 끊기지 않는 역사적 서술의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신석기시대에서 육조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대 중국의 미술과 건축에 드러난 을 고찰하고 있는 이 책은, 일단 회화?조각 등의 분류별 이해에서 벗어나 고대 중국의 미술과 건축의 역사를 하나의 일관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개별적인 고고자료 혹은 미술자료에 담긴 을 통해 그 시대의 종교적 사회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극이 될 것이다.

목차
.서론:구정과 기념비성에 대한 전통적 개념 ...29
1.제례 예술이 시대
.예기의 개념 ...65
.제례예술의 유산 ...80
.값비싼 예술 ...80
.장식과 휘장 ...90
.모방에서 종합으로 ...124
.장식의 변?형 ...135
.문자의 승리 ...151
.중국의 청동기시대 ...173
2.종묘.궁전 그리고 무덤
.종묘 ...206
.종묘에서 궁전으로 ...228
.종묘에서 무덤으로 ...276
.중국에서 돌의 발견 ...300
3.기념비의 도시 장안
.장안에 대한 두 가지 시각 ...348
.한고조:장안의 탄생 ...363
.혜제와 장안성벽 ...376
.무제의 허구적 정원 ...397
.왕망의 명당 ...423
4.장례 기념비의 목소리
.가족(1) ...457
.가족(2) ...479
.친구와 동료들 ...514
.죽은 자 ...526
.건축가 ...560
5.투명한 돌:한 시대의 종언
.거꾸로 된 형상과 뒤집어진 시각 ...593
.양면적인 형상과 회화 공간의 탄생 ...619
.에필로그:문 ...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