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을 읽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으로 일제 말기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읽는 데만 그치지 않고 체제의 표면과 이면, 식민지의 내부와 외부, 일상과 전장을 거침없이 가로지른다. 민중의 일상과 심층 의식, 이들의 일상에 침투한 이데올로기의 진면복을 보다 깊이 있게 살펴보도록 해주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일제 말기의 유산을 성찰하게 한다.
출판사 서평
1. 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을 읽는 새로운 시각, 파시즘과 젠더 정치
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을 다룬《역사적 파시즘―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가 책세상에서 출간되었다. 기존의 책들이 남성을 파시즘 체제를 작동시키는 주체이자 객체로서 주목하고 여성은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데 그친 것에 반해, 이 책은 여성에게도 파시즘 체제를 유지?강화시키는 역할이 강제되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는 저자의 학문적 이력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가족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책세상, 2000),《문학 속의 파시즘...
1. 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을 읽는 새로운 시각, 파시즘과 젠더 정치
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을 다룬《역사적 파시즘―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가 책세상에서 출간되었다. 기존의 책들이 남성을 파시즘 체제를 작동시키는 주체이자 객체로서 주목하고 여성은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데 그친 것에 반해, 이 책은 여성에게도 파시즘 체제를 유지?강화시키는 역할이 강제되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는 저자의 학문적 이력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가족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책세상, 2000),《문학 속의 파시즘》(공저)(삼인, 2001) 등 문학과 역사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구해온 저자는 가족주의와 모성 신화에서 출발하여 파시즘과 젠더 정치로 연구 주제를 확장해왔다.
이 책은 정치와 경제, 제도적 측면에만 집중한 기존의 역사 기술 방식을 지양하고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광고(향수, 약, 화장품, 레코드 등)나 신문(〈매일신보〉,〈조선일보〉,〈경성일보〉 등), 잡지(《신세기》,《신시대》,《총동원》 등) 등 흥미로운 자료를 텍스트로 삼아 여기에 나타난 담론을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민중의 일상과 심층 의식, 이들의 일상에 깊이 침투한 이데올로기의 진면목을 보다 잘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체제의 표면과 이면, 식민지의 내부와 외부, 일상과 전장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이 책은 광복 60주년을 맞은 우리에게 외부로만 향했던 시선을 내부로 돌려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일제 말기의 유산을 성찰하게 한다. 타인과의 연대감을 상실한 채 고립감과 적대감에 사로잡혀 있는 개인과 배타적 집단주의가 만연한 사회의 모습은 우리가 파시즘 체제하의 젠더 정치의 유산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총후 부인, 신여성 그리고 스파이―여성 정체성 집단을 둘러싼 젠더 정치
태평양 전쟁이 장기화되고 남성이 전장에 동원된 상황에서 후방의 관리와 전시 동원의 기초 단위로서 가정이 강조된다. 이에 따라 여성은 후방의 관리 주체로서, 이른바 ‘총후(銃後) 부인’의 역할[‘독자(獨子)를 격려하야 지원. 채소상으로 일가 생활’ 등의 서사로 구체화된다]을 부여받는다.
위기에 처한 가정과 사회를 여성이 수호해야 한다는 총후 부인 담론은 한편으로는 가정 바깥에 존재한 여성을 비판하기 위한 근거로서 기능한다. 즉 재생산과 가정의 수호에 부적합한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여성 정체성을 혐오하도록 만드는 당시의 여러 담론 체계는 신여성에 대한 비판과 단죄로 이어졌다. 극단적으로는 스파이 담론(여성 스파이들은 “두 번 가정 생활을 청산하고 방종한 독신 생활”을 하거나 “귀가하는 것이 늦어지는 때가 많”더니 적에게 포섭되어 스파이가 되었다고 기술된다)을 통해 사회적 적대가 조장?강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일제 말기 파시즘 체제는 지배와 피지배라는 단순한 구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식민지인들 사이의 사회적 적대와 갈등, 투쟁을 가속화했음을 알 수 있다.

3. 새로운 주체의 기획과 자기 정당화의 기제, 청년 담론
일제 말기 여성에게 부여된 위상이 총후 부인이라면 남성에게는 ‘청년’의 역할이 부여된다. 청년은 황민의 제일선에 선 정예 부대이자, 서구화되고 퇴폐적이거나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이념화된 근대적 지식인(의붓자식 근성, 기회주의적 태도, 줏대 없음, 식민지 토인의 비열한 근성, 기생충 집단)을 비판하는 제3의 정체성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청년 담론은 지식인 엘리트층과 비엘리트층의 남성에게 각각 상이한 의미로 작동했다. 지식인 엘리트에게는 근대적 지식인의 정체성과 역할을 비난하고 스스로를 파시즘적 엘리트로 혁신함으로써 지도적 위치를 획득하려는 투쟁에 참가할 것을 독려했으며, 비엘리트층 남성들에게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신의 처지를 혁신할 수 있는, 일종의 입신출세의 기회로 간주된 것이다(“청년 제군, 식민지 토인의 비열한 근성을 벗어 팽개치고, 폐하의 적자로서 새로 태어나고자 크게 분발해주십시오”). 따라서 이러한 담론은 조선 내에서 황민으로의 통합을 위한 대중 선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엘리트적 지위를 둘러싼 헤게모니 투쟁이자 일제 협력 집단의 자기 정당화를 위한 기제로서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4. 정복과 개발의 대상으로서의 남방, 제국의 판타지
1938년을 전후하여 조선에서는 남방 담론이 급증한다. 이러한 남방 담론은 식민지 조선 내에서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확장되고 변주된다. 우선 남방은 조선인들에게 미지의 영토로서 무진장한 자원의 나라, 일확천금의 기회의 땅으로 표상되며, 이는 경제적인 관심으로 이어진다. 다음으로 남방 담론은 대동아공영권 내의 다른 식민지와의 관계에서 조선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조선인의 불안과 관련되어 있다(“남방의 자원은 무진장이라고 한다……아무리 훌륭한 지점[남방]이 만들어졌다 해도 본점, 본댁[조선]이 한각되어서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조선인 스스로에게 남방인보다 우월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일본 제국 내에서 일본인에 이어 2인자로서의 지위를 점하려는 제국의 판타지가 내면화된 것이다.
이러한 남방 담론은 종족지ethnography와 시 등을 통해 남방인을 미개한 야만인, 야자수 그늘 아래의 ‘깜둥이’로 이미지화함으로써 구체화된다(“음식 먹을 때는 식기 한 개 없습니다……원주민들은 얼굴이 밉드군요”). 이처럼 남방 담론은 문명개화된 일본이 서구의 침략에 맞서 미개한 조선과 아시아 여러 나라를 수호하고 근대화한다는 일제의 논리가 식민지 조선인에게도 그대로 내면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제국의 판타지와 인종적 시선, 자신의 위치에 대한 불안감은 일본의 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인들을 체제에 길들이는 기제였던 것이다.

5. 일제 말기의 유산―자본주의, 경쟁, 욕망과 파시즘
《역사적 파시즘―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는 비단 일제 말기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읽는 데만 그치지 않고 역사와 현재를 가로지른다. 우선 저자는 일제 말기를 비롯하여 파시즘이 부상한 역사적 국면에서 대중을 파시즘 체제에 합류하게끔 하는 근본적 요인이 자본주의의 주요한 면모인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기려는 욕망이라고 본다. 또한 파시즘 체제는 표면적으로는 집단주의의 광기로 드러나지만 그 이면에는 고립감과 불안감에 산산이 찢겨 있는 개인들이 존재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점은 IMF 이후의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부의 양극화 현상과 증오 범죄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체제와 파시즘의 연관성에 대한 고민은 해방 이후의 한국 현대사에도 적용된다. 한국 전쟁과 박정희 체제하에서 강요된 외부에 대한 증오는 내부의 사회적 적대를 강화시켰다. 즉 정권이 강요하는 정체성을 갖지 못했거나 이에 저항하는 집단을 적, 불순분자 등으로 규정하면서 배타적인 가족국가주의 질서를 강화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나아가 이 책은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오늘, 타인들과의 연대감을 상실한 채 고립감과 타인에 대한 증오를 가슴에 품고 있는 우리의 삶이 일제 말기 식민지인의 삶에서, 그 유산에서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묻고 있다.

목차
- 프롤로그
1. 파시즘, 제국의 판타지, 젠더 정치 - 논쟁과 논점들
1. 역사상을 둘러싼 투쟁-젠더사의 시각과 파시즘 이론
2. 파시즘 경험과 유산을 둘러싼 논쟁 비판
3. 이론적 실천과 소비의 경계
2.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
1. 총후 부인, 신여성, 그리고 스파이
2. 여자 스파이단의 신화와 '좋은 일본인 되기'
3. 황민화와 여성 정체성 집단 간의 지역적, 계급적 차이화의 역사
3. 모던보이 비판과 애국 청년의 구성
1. 입신출세와 '일본인 되기' 사이의 간극과 딜레마
2. 남성 정체성 집단 간의 차이화
4. 남방 종족지와 제국의 판타지
1. '네이티브'의 위치와 대역본의 세계
2. '남방', 중국, 화교와의 경쟁, 식민지 '사이'의 경쟁이 남긴 것
3. 남방 종족지와 제국의 판타지-다시 '최소한의 도덕'을 위하여
- 참고문헌
- 찾아보기 / 인명
- 찾아보기 /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