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1986년 첫 발간 이후 근 이십년 만에 새로이 펴내는 문정희의 長시집 『아우내의 새』다. ‘아우내’라는 지명이 익숙하거니와 이는 바로 유관순의, 유관순을 위한, 유관순에 의한 시집이다. 시인 문정희는 ‘다시, 빛나는 자유 혼을 찾아’라는 서문을 통해 이 시집을 다시 펴내게 된 까닭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문학을 생애 속에 깊이 끌어안고 싶었던 나는 그때, 인간의 진실과 언어의 한계에 대해 깊은 고민과 자괴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역사를 뒤졌고 신화를 읽었으며 여러 인물들을 만났다. 이 땅의 시인으로서 부채감과 무력감에...
1986년 첫 발간 이후 근 이십년 만에 새로이 펴내는 문정희의 長시집 『아우내의 새』다. ‘아우내’라는 지명이 익숙하거니와 이는 바로 유관순의, 유관순을 위한, 유관순에 의한 시집이다. 시인 문정희는 ‘다시, 빛나는 자유 혼을 찾아’라는 서문을 통해 이 시집을 다시 펴내게 된 까닭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문학을 생애 속에 깊이 끌어안고 싶었던 나는 그때, 인간의 진실과 언어의 한계에 대해 깊은 고민과 자괴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역사를 뒤졌고 신화를 읽었으며 여러 인물들을 만났다. 이 땅의 시인으로서 부채감과 무력감에 시달리며 바람 부는 땅을 헤맸었다. 이 슬픈 시집은 그러므로 엄혹한 그 시대를 통과하며 숨죽였던 나의 슬픔에 대한 고백이며, 그토록 동경하던 자유혼에 대한 헌사이다.’ 이를 짧게 요약하자면 그저 자유다. 오롯한 생명이다. 그렇다고 역사에 대한 어떤 쟁취의 목적으로 말미암음인가.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할 게 없도록 흘러가버린 현실 위에서 문정희는 시를 쓰는 여자일 뿐이다. 이에 유관순으로 말미암아 그녀가 빌려온 것은 다름 아닌 정신의 나이테, 자유와 생명은 그렇게 문학 속의 영원한 비상을 상징하는 날개가 되어준 것이다.
텍스트의 중심에 유관순이 서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낡은 비유일 수 있다. 상투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유관순 바로 읽기를 한 적 있었던가. 역사 속의 현장을 기리는 그날에만 유관순은 빛났다. 영정이 바뀌니 안 바뀌니 겉모습을 논할 때만 우리는 입속에서 그 이름 유관순을 꺼냈다. 이러한 겉핥기의 시간 속에 시인이 부여한 메시지가 고스란히 숨 쉬고 있는 것, 바로 자궁이다. 자궁 속에서 태어나 자궁이 파열되어 다시금 자궁 속으로 스며든 그 과정, 이는 해설을 붙인 평론가 이숭원의 말을 빌자면 “생명을 참살하는 그 시대의 특징을 여실히 대변하면서 죽음의 상징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예비하는 이중적인 전언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에 김지하도 말을 보탰다. 단 한마디 이 말 이외에 무슨 말을 더할 것인가. ‘숭고하다!’ 라고.
이 책에 실린 ‘서시’는 현재 이화여고에 시비로 우뚝 서 있다. 이 책의 삽화를 맡은 화가 정정엽은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무엇보다 여성미술가로서 새로운 미술을 모색하기 위해 실험적인 화풍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 유관순은 이렇듯 시 속에서, 그림 속에서, 무엇보다 후배들의 교정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어둡고 서러운 가슴에 별로’ 떠 있다. 그뿐이겠는가. 문정희가 정신의 뼈대로 삼은 자유와 생명, 이는 우주 속에서 무한히도 영원할 예술이라는 흙, 그 한 줌이자 한 삽일 터, 그러니 무슨 말을 더할 것인가. 숭고할밖에!
『아우내의 새』는 역사와 신화의 결혼이다. 서문 아래 가득히 들어찬 유관순에 관한 조사 기록들은 우선 “서른다섯 해 동안/해가 뜨지 않는 나라”의 기록이며 그 기록은 “검은 개가 달을 삼키듯이/동남아시아에 개기 일식이 시작된” 암흑의 사초(史草)다. 시는 바로 이 암흑 속에서 떠오르는 별의 신화를 노래한다. 그 별의 자질은 ‘흙이요/둥글고 따스운 흙 속에 엎디어 살아온 풀’이다. 암흑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이 풀들은 제일 먼저 “흐느낌을 배”우고 “제일 먼저 육자배기를 배운다”. 흐느낌과 육자배기가 곧 흙으로부터 밤의 창공으로 떠오르는 별의 불쏘시개요 힘이다. “힘은 찬란하고/피는 뜨거운 것/별 같은 것”이다. 봉화(烽火)다. 그것은 “산마루마다” 만세와 함께 솟아오르는 “수십 개의 별”이다. 그 불, 그 힘, 그 별은 아우내 장터로 향하여 “고부 땅 동학꾼처럼/천둥 품고 간다”. 관순과 함께 그들은 거기서 “허공 보았고/하느님 보았다”. 드디어 천둥이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총칼과 말발굽 아래 무자비하게 짓밟혔고 관순은 참혹한 고문 아래 무참히 스러졌다. “부젓가락으로 눈알을 쑤시고/귀를 자르고/머리를 뽑았다.”
재판정.
새：‘나는 조선의 딸이다./이 재판을 거부한다.’
뱀：‘신성한 법정에 대한 모독죄를 추가하여/실형 7년을 선고한다.’
새：‘내 나라에서 도적놈을 쫓아내는 것이 문제일 뿐 3년이건 7년이건 70년이건 그건 내게 의미가 없다. 새는 앉았던 의자를 들어 단 위에 던졌다.’
캄캄한 검은 중력과 눈부시게 흰 초월의 대결이다. 관순은 스러졌다. 사인(死因)은 ‘자궁 파열’이다. 필시 일제 관헌에 의해 폭력을 당한 것이다. 아아! 스러졌다. 그러나 스러진 “풀꽃 하나/그 목숨 바스라져/어둡고 서러운 가슴에/별로 떴다”. 나아가 그녀는 “꺼지지 않는 큰 별로/역사에 박혔다”. 어두운 사실들의 시적 승화 과정으로서의 『아우내의 새』는 그대로 관순의 역사적 비극이 초월적 신성(神聖)으로, 캄캄한 밤 푸른 별로 승화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금 역사의 불빛으로 하강하는 과정이다. 단 한마디 이 말 이외에 무슨 말을 더할 것인가. ‘숭고하다!’ -김지하(시인)

목차
서문 - 다시, 빛나는 자유 혼을 찾아
막을 여는 노래 / 서시 / 만장의 행렬 / 벌거숭이들의 노래 /
수천 개의 질풍으로 / 일식 / '폐교'의 못 / 빈혈의 땅 /
죽은 시계 / 길 / 대륙 낭인의 발굽 / 귀향하는 관순이 /
흙과 노래 / 역마다 / 산들의 노래 / 부싯돌 같은 불이 /
종탑 / 도리깨질 / 풀의 노래 / 목숨하고 만세하고 /
별 같은 것 / 강물보다 더 먼 / 비수 / 소리 없는 해일 /
신의 비밀 / 가벼워지리라 / 타오르는 불 / 불 불 불 /
장꾼의 노래 / 아우내 장으로 / 장터를 태워버린 마른 번개 /
눈 뜬 둔덕 / 흰 뼈로 누우리니 / 어떤 겁 / 날고라니 둘 /
싱싱한 걸음으로 / 무서운 일 / 숨결 / 오랏줄 / 새와 뱀 /
도, 새와 뱀 / 천둥 / 빈사의 새 / 아아, 사인(死因) /
막을 닫는 노래
해설 - 자유를 꿈꾸는 상징의 새 / 이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