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가지 향기를 간직한 사랑이야기, 애사

조선 시대의 여성들은 어떤 사랑을 했을까? 《조선 여인의 향기》는 그에 대한 궁금증을 말끔히 해결해줄 것이다. 이 책은 조선 여인들의 사랑과 삶을 통해 조선사회를 살피고 있다. 조선 시대를 관통해 온 지배 이데올로기는 ‘예(禮)’인데, 예를 중시하는 조선사회는 여인들에게 정절을 강요해왔다. 여인들은 철저하게 부모와 남성, 그리고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했다. 어려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혼인을 한 뒤에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식을 낳은 뒤에는 자식을 따르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철저하게 지켜야 했다. 많은 여성들이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때로는 한 떨기 꽃처럼 아름답게 피고 때로는 찬 서리에 지는 단풍처럼 안타까운 삶을 마감했다. 이처럼 조선 시대의 예는 여인들에게 씌워진 굴레였다.

저자 이수광은 조선의 여인들을 매난국죽(梅蘭菊竹)으로 표현하고 있다. 매화의 은은한 향기를 간직한 여인, 난초의 그윽한 향기를 간직한 여인, 국화의 깨끗한 향기를 간직한 여인, 대나무의 푸르른 향기를 간직한 여인을, 이 책의 4부로 구성해 다루었다. 왕비에서 천민 여성까지 조선여인 26인의 사랑과 한을 유려한 문체로 복원한 것이다.

글의 이해를 돕는 그림과 사진 등을 수록한 올 컬러 편집

팩션 역사서인 이 책은 조선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한 16컷의 삽화를 수록했다. 수채화의 색감을 풍부하게 살린 이도헌 화백이 이 책의 삽화를 그려 조선여인들의 향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역사의 책갈피 속에 묻혀 있던 여인들의 모습이 이 책의 삽화를 통해 생생히 다가올 것이다. 또한 이 책에는 사진 10컷을 수록했는데, 이 사진들은 저자가 직접 역사의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촬영한 것들이다. 저자가 이 작품에 얼마나 많은 열정을 쏟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성 위주의 신분사회에서 소외된 여성을 세상의 중심에 세우다!

조선 시대 여인들은 어떻게 사랑을 했고 어떻게 살았을까? 또한 그녀들의 삶에는 어떤 애환이 있었을까? 이 책은 철저한 남성 위주의 신분사회에서 가슴 절절한 사랑을 했던 조선의 여인들, 역사에 그다지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던 여인들의 이야기와 기록만을 취합해 조선 시대를 애(愛)와 애(哀)의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그동안 역사서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졌거나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은 인물들이다. 단 한 번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에 평생 동안 님을 그리워하면서 절개를 지킨 여인,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목숨까지 버려야 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다.

조선 시대의 여인들이라고 하면 우리는 얼핏 기생이나 궁중 암투밖에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첩으로 불리는 많은 여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권력자들이나 부자들은 부귀를 이용해 15, 16세의 어린 소녀들을 첩으로 거느렸다. 가난 때문에 첩이 되어야 했던 여인들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살았을까? 천민들에게도 사랑과 애환이 있었다. 기근이 들어 함경도에서 충청도 단양까지 내려와 구걸행각을 하던 함흥의 한 여인이 남편이 전염병으로 죽자 충청도 단양에서 함흥까지 천릿길을 관을 이고 가서 장례를 지냈고, 강원도의 한 초부(樵夫, 나무꾼)가 갑자기 내린 눈으로 동사를 하게 되자 그의 아내가 찾아가서 저고리를 벗어 덮어주고 알몸으로 몸을 녹여주어 소생시키려다가 함께 동사한 이야기는 지극한 사랑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사회에서는 얼굴이 예쁜 것도 죄가 되었다. 숙종 시대에 예조판서를 지낸 오정창의 딸이자 한림 정한주의 부인인 오(吳) 씨는 얼굴이 너무 예쁘다고 해서 시집에서 구박을 받다가 아버지가 역모로 몰리자 결국 쫓겨났다. 아버지의 귀양길에 남편이 찾아오자 부둥켜안고 울던 오 씨는 적삼에 혈서를 써서 남편에게 주고 자결한다.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이 책은 역사의 비주류였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내가 떠나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것인가?’
정한주는 집을 뛰쳐나와 오정창이 귀양 가는 길을 쫒기 시작했다. 걸음은 더디고 날은 쉬이 저물었다. 그러나 정한주는 천안 인근에서 사랑하는 아내 오 씨를 만났다.
“서방님!”
오 씨와 정한주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정한주는 부인을 따라 오정창이 귀양을 가는 진도까지 따라가려고 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가는 길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한양에서 금부나졸들이 달려와 다시 오정창을 추국청(推鞫廳)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내 이제 한양에 가면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나를 따라오지 말고 어디든지 도망을 가서 신랑과 해로를 하라. “
오정창은 엄명을 내려 오 씨를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정한주는 부인과 함께 민가를 빌려 잠을 잤다. 오 씨는 모처럼 남편의 품에 안겨서 회포를 풀었다. 그러나 한때의 사랑이 끝났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친정으로 돌아가면 살아날 길이 없었고 역적의 딸이라고 하여 관비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그나마 시가에 있으면 출가외인이라고 하여 법을 적용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시가에서 그녀를 내쳤기 때문에 갈 곳이 없었다. 그녀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왜 안 자고 있소?”
정한주가 눈을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서방님, 저는 친정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서방님 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오 씨가 정한주에게 애원을 했다.
“할아버지가 워낙 완고하여 당신을 받아들일 수 없소.”
“하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이제 어디서 살아야 합니까?”
-<절세미녀의 슬픈 사랑> 중에서

심희수는 총명한 소년이었다. 악동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기생집에 출입을 하여 손가락질을 받던 그는 일타홍의 도움으로 학문이 일취월장했다. 그러나 타고난 천성이 호방한 심희수는 몇 년이 지나자 다시 기생집을 출입하기 시작했다. 일타홍이 몇 번이나 만류를 해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일타홍은 대부인에게 고했다.
“소첩이 몇 해 동안 대부인 댁에 머무르면서 오로지 도련님의 학업을 위해 노력을 해왔습니다. 하오나 도련님께서는 또다시 기방 출입을 하고 있습니다. 소인이 만류를 해도 듣지를 않으니 이제는 소인이 떠나서 도련님을 격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련님이 과거에 급제하는 날에 다시 만나기로 기약을 한다면, 도련님께서도 발분하여 학업에 정진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그나마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너의 공이다. 지금 비록 일시적으로 학문을 도외시하고 있다고 하여 네가 우리 모자를 떠난다는 말이냐?”
심희수의 어머니가 아쉬워하며 말했다.
“소인도 목석이 아닌데 어찌 헤어지는 것을 바라겠습니까? 소인은 떠난 후에도 맹세코 다른 사람에게 의탁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도련님께서 발분하여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 떨기 붉은 꽃으로 피어난 여인> 중에서

채생은 너무나 기뻐서 부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부인은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는데 눈으로는 요기를 뿜었다. 술은 향긋하고 미인은 아름다웠다. 그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부인도 천천히 술을 마시는데 얼굴이 불그스레해지는 것이 도화가 핀 것 같았다.
채생과 부인은 밤이 늦도록 즐겁게 술을 마셨다. 이내 삼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때서야 계집종이 들어와서 채생의 각대(角帶)와 초립(草笠)을 받아 횃대에 걸고 금침을 편 뒤에 촛불을 가져갔다. 사방이 캄캄하게 어두워지자 채생이 부인을 덥석 끌어안고 금침에 눕혔다. 두 사람이 즐기는데 벌이 노는 듯 나비가 춤추는 듯이 열락이 끝이 없었다. 그때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소리가 들리면서 어디선가 천둥이 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바람에 채생은 눈을 떴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채생은 경악했다. 그는 돌다리 아래에 누워서 낡은 거적을 덮고 있었다. 사방에서 악취가 코를 찌르는데 간밤에 계집종이 들고 나갔던 초립과 각대는 다리 기둥에 걸려 있었다. 삼각산 위로 붉은 아침 해가 떠올라 인마(人馬)가 시끄럽게 내달리고 땔나무를 실은 수레 두 대가 쿵쿵거리며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채생을 깨어나게 한 천둥소리는 땔나무를 실은 수레가 다리 위를 지나가는 소리였다.
-<요괴와 나눈 사랑> 중에서

여름이 돌아왔다. 천민 남편의 시신이 들어 있는 관에서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민 아내는 꿈쩍도 하지 않고 한결같이 관 옆에서 생활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노자를 마련했다.
“여러 어르신들께 많은 신세를 쳤습니다.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남편의 관을 매장하여 안식하겠습니다.”
천민 아내는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공손히 인사를 했다.
“매장을 할 것이라면 여기서 묻어도 될 터인데 굳이 고향으로 가려고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혀를 차면서 물었다.
“생전에 남편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쯧쯧…. 그럼 수레라도 준비를 했나?”
“아닙니다. 머리에 이고 갈 것입니다.”
천민 아내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천민 아내는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뒤에 남편의 관을 머리에 이고 함경도를 향해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남편 관을 베고 자는 아내> 중에서

“나는 눈길에 미끄러져서 발이 부러졌어. 나는 내려갈 수 없으니 당신이나 내려가.”
“무슨 소리예요? 여기에 있으면 얼어 죽어요.”
김 씨 부인은 일어나서 남편을 구덩이에서 끌어내려고 기를 썼다. 그러나 깊은 구덩이에서 도저히 남편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탈진한 그녀는 남편의 옆에 주저앉았다. 산중턱이라 산 아래보다 풍설이 차고 매웠다. 김 씨 부인은 비로소 자신들이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알 수 없는 공포가 그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여보… 당신까지 얼어 죽어서는 안 돼. 나를 그냥 두고 내려가.”
남편이 턱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싫어요. 당신을 두고 내려가지는 않겠어요. 당신을 그냥 두면 얼어 죽어요.”
김 씨 부인은 남편에게 바짝 다가가서 힘껏 껴안았다.
“당신의 몸이 벌써 차가워지고 있어. 조금만 지체하면 당신도 얼어 죽게 될 거야. 그러니 어서 내려가.”
남편이 김 씨 부인에게 산에서 내려가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남편을 더욱 바짝 끌어안고 있었다.
-<눈밭에서 피어난 눈꽃> 중에서

머리말_조선을 울린 애절한 사랑의 역사, 애사

제1부 꽃향기 난만한 봄의 여인들, 梅
제1화 어느 조선 여인의 쓸쓸한 자화상
제2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살다간 바우덕이
제3화 애희의 슬픈 사랑
제4화 하늘을 울린 소녀
제5화 웃고 있어도 눈물을 흘리던 왕비들
제6화 절세미녀의 슬픈 사랑

제2부 난초향 은은한 여름의 여인들, 蘭
제7화 죽은 남편과의 대화
제8화 한 떨기 붉은 꽃으로 피어난 여인
제9화 요괴와 나눈 사랑
제10화 사랑이 죄가 되어
제11화 두 남편을 모신 여자
제12화 하늘만 허락한 사랑

제3부 국화향처럼 고결한 가을의 여인들, 菊
제13화 남편 관을 베고 자는 아내
제14화 정숙옹주의 맑고 깨끗한 사랑
제15화 조선이 버린 여인
제16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제17화 무명치마에 거친 밥을 먹으며
제18화 그대가 곁에 없어도 그대만 생각하리

제4부 죽향처럼 사시사철 푸른 겨울의 여인들, 竹
제19화 오롯이 천주에게 바친 사랑
제20화 눈밭에서 피어난 눈꽃
제21화 임금을 감복시킨 조강지처
제22화 정조를 잠 못 이루게 한 여인의 정절
제23화 이국땅에서 버려진 백년가약
제24화 내 머리칼 고이 베어 짚신을 삼습니다
제25화 쓸쓸한 공방생활을 벗어나려 했건만
제26화 임금이 맺어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