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민들의 삶 속에 농촌이 있다는 건 누구나 안다. 도시민들이 빠른 속도로 삶의 무게 중심을 잡아가는 동안에도 도심 외곽에서는 우리들의 먹을거리가 재배된다. 외곽에서 재배된 농산물들은 도로를 따라 도시로 유입되고, 불지불식간에 우리는 그 먹을거리로 생명을 잇는다. 이러한 도시와 농촌 간의 보이지 않는 연대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도시와는 달리 우리의 농촌은 피폐화되어 가고 있다.

이 즈음, 정부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네덜란드에서 직무연수를 하던 농림수산식품부 민연태 전 축산정책과장이『한국농업 성공의 길, 지식과 혁신』을 출간하게 되었다. 풍차의 나라이자 튤립의 나라인 네덜란드에서 보내온 2천500매 분량의 원고에는 한국농업의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경영학자로 돌아가서 방대한 자료와 수집력으로 한국농업의 발전 전망을 조목조목 따져 원고지에 올려놓았다. 마치 농사꾼을 잠시 쉬게 할 생각으로 여행을 보냈는데 여행지에서 그 동안 미루어뒀던 숙제를 한 셈이다.

민연태 전 과장은 우리농업이 왜 이렇게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까? 하는 질문으로 원고를 시작한다. 그는 우선 토지와 자본에서 말할 수 없이 불리하여 선진국과 경쟁하기 어려운 한계를 들고 있다. 특히, 선진국의 수십 분의 일도 못되는 소규모 농업구조 때문이다, 라고 일침을 놓는다.

『한국농업 성공의 길, 지식과 혁신』는 이런 지적에 대한 대안들로 가득하다. 한국 농업에 대한 세밀한 검토 끝에 내린 대안들, 그는 7장 「성공농업으로 가는 길」에서 4가지의 대안들을 네덜란드를 통해 살피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지식성장전략이다.
“네덜란드 농업정책의 기본 컨셉은 항상 개방과 경쟁력이었다. 시대변화에 맞추어 농업의 생산, 가공, 유통 등 시장요소와 위생, 안전, 먹을거리, 환경, 자연 등 비시장요소를 구분해서 시장에 맡길 것은 맡겨 정책실패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왔다. 농업정책이 농업체인과 경쟁력 중심으로 운영되는 패러다임을 일찍부터 구축했다. 길게 보면 시장을 떠나서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경제논리를 철저히 존중해왔다.

두 번째로는 수출 및 확장전략이다.
“네덜란드 농업은 국내시장만을 바라보고 생산하지 않았다. 협소한 국내시장으로는 절대 발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현실을 일찍이 자각하고 해외시장을 겨냥한 수출농업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변방국가로서 17세기 선조들이 세계를 제패했던 경험과 역사가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험난하지만 나라밖을 상대하지 않고 내부만 바라봐서는 결코 미래가 없다는 인식이 운명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인건비와 땅값 상승으로 농업여건이 불리해지자 일부 농기업가는 유럽이나 아프리카 등으로 해외농장을 개척해서 거기서 생산된 농산물을 네덜란드를 통해 세계로 팔았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가 취급하는 물량이 더욱 늘어났다. 운하가 발달하고 바다에 접한 지리적 위치를 잘 활용하면서 수출에 필요한 제도나 시설, 인프라들을 잘 구축해서 세계농업의 메카가 되었다.”

셋째는 협력 및 통합전략이다.
“네덜란드는 일찍부터 물과 싸워오면서 공동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서로 협의하고 협력하는 문화와 제도가 일찍부터 존재해왔다. 농업 분야도 예외가 아니고 오히려 농업이 이러한 협력문화를 선도해 왔다. 국가차원의 협의 마당에는 농업인단체가 참여하고, 품목차원에서는 품목체인 전체가 참여해서 농업 분야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해왔다.”

넷째는 안정 및 균형전략이다.
“네덜란드는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도 높고 사회보장제도가 정착된 역사가 오래되어서 사회가 안정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적 안정이 농업 분야 발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찍부터 사회보험 성격의 노령연금 제도가 잘 발달해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안심하고 은퇴를 한다. 농업인의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는데도 이 제도가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은 7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부터 제4장까지는 네덜란드와 관련된 내용이다.
제1장은 네덜란드 농업이 성장하게 된 국가적 배경을 살펴보는 차원에서 네덜란드 전체 상황을 기술했다.
네덜란드를 배우자는 생각에서 장점과 모범적인 내용을 주로 담겨져 있다. 특히, 농업계도 참여해서 협의를 통해 국가발전을 도모하는 네덜란드 발전모델과 이러한 협의문화를 제도화하기 위해 만든 네덜란드 사회경제협의회를 소개한다.
제2장은 네덜란드 농업생산업뿐만 아니라 연관(聯關) 산업을 포함한 농산업복합체, 농업무역, 농업환경, 농촌 분야의 최근 현황과 정책, 특징을 기술한다. 그리고 네덜란드 농업성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상품보드(commodity board)와 협동조합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네덜란드 농업의 최대 장점인 수직적, 수평적인 협력시스템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농업발전에 산맥(山脈)역할을 해온 농업정책의 주요흐름을 상술(詳述)하고 있다.
제3장은 미래 EU와 네덜란드의 정책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도록 네덜란드 정부가 EU에 제안한 공동농업정책 개혁방향을 소개한다. 2008년에 2020년까지 보다 시장지향적인 방향으로 차기 공동농업정책을 개혁하자는 내용이다. 농업정책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하고, 정부개입도 이 한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서 네덜란드 농업이 성공하는데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네덜란드 농업지식과 혁신기구 및 시스템을 제4장에서 별도로 다룬다. 농업지식기구란 농업연구, 농업지도 또는 컨설팅, 농업교육을 수행하는 조직과 이들 조직의 운영체계를 총칭해서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지식기구의 탄생 배경과 민영화 과정을 기술한다. 아울러 농업연구, 지도, 교육의 기본 시스템과 최근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제5장은 우리농업의 현주소를 기술한다. 현행 농업생산 구조와 여건, 우리나라 농업연구 및 지도와 교육체계의 현황과 한계를 다루었다. 그리고 미래 우리농업의 가능성을 따져본다.
제6장은 네덜란드 농산업을 분석해 우리 농업이 얻을 수 있는 메시지를 차근차근 살펴본다.
제7장은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내용을 종합하고 분석해서 자력성장을 통해 미래 우리농업을 성공으로 인도할 4대 전략을 제시한다. 지식성장전략, 수출 및 확장전략, 협력 및 통합전략, 안정 및 균형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이어 4대 전략이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농정의 목표와 영역을 국가번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재정립하는 한편, 지식과 혁신분야에 대한 투자 강화, 그린 또는 블루서비스를 제공한 농가나 지역에 대가지급을 미래 농업정책의 핵으로 삼을 것도 제안하고 있다.

우리 농업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많은 숙제 중에 하나를 민연태 전 과장이 책으로 펴낸다.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농촌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오랜 고민의 흔적들이 보일 것이다. 남들과 다소 다른 의견도 있고, 익히 우리들에게 던져 진 문제를 다시금 재해석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한국 농업에 대한 이러한 접근, 네덜란드 농업을 이해하고 한국 농업을 이해하면서 얻게 된 우리의 발전 전략들은 아주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 개인의 가치를 뛰어넘어 한국 농업 전반에 현실적인 대안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