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별면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어제와 오늘이
다큐멘터리 사진가 한금선의 빛나는 사진으로 환하게 피어나다
우즈벡에 머문 3주 동안, 내가 고려인들을 만나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이 아픈 역사가? 지금도 삶의 어느 힘겨운 순간과 마주치면 “째르빼-니, 째르빼-니”라고 말하는 그네들의 가슴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1세에게서든 2세에게서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눈물이 흐른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우즈베키스탄의 하늘은 청명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강건하다. 몇몇의 조선인이 처음 두만강을...
별면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어제와 오늘이
다큐멘터리 사진가 한금선의 빛나는 사진으로 환하게 피어나다
우즈벡에 머문 3주 동안, 내가 고려인들을 만나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이 아픈 역사가 지금도 삶의 어느 힘겨운 순간과 마주치면 “째르빼-니, 째르빼-니”라고 말하는 그네들의 가슴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1세에게서든 2세에게서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눈물이 흐른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우즈베키스탄의 하늘은 청명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강건하다. 몇몇의 조선인이 처음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 땅에 도착해 ‘고려인’이라는 명칭으로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 1864년. 150년이 지난 지금, 그때로부터 더 강한 형질의 ‘고려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동시에, 고려인들이 바닥뿐 아니라 사방 벽에도 장식하기를 즐겨하는 카펫의 직조처럼, 수없이 다채로운 색감의 씨줄날줄이 그들의 현재 삶을 구성하고 있었다. 가능한 한, 그 모두를 사진 안에 담고자 했다. 과거와 현재를 관통해, 그들은 하나의 존재로서 살아 있고, 살아가는 중이었다. 이 또한 간절히, 사진에 담고 싶었다. 사물들이 마치, 기억의 흔적들을 담아내듯이.
_ 작가 인터뷰: 〈한금선 말하고, 박미경 듣다〉에서
1 이 책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이루어진 3주간의 만남에 대한 사진 기록이다
그것은 ‘우즈벡 고려인’에 대한 통념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그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과정이었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변변한 준비조차 없이 화물열차에 실려서 우즈벡, 그 머나먼 곳으로 떠나온 이들, 그 과정에서 피붙이를 잃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니, 수만이었다. 어쩌면 그런 참혹함을 겪은 이들의 표정은 어둡고 비장할 법했다. 사진가 한금선도 그런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런 사연을 간직한 어르신들이건만 너무도 강건하고 꿋꿋했다. 속울음을 누르고 삼키고 삶의 자리로 존재했기에, 땅 한 뙈기 없는 곳에서 살아남고 또 오늘을 일구었는지도 모른다. 하여, 그이들의 육성을 옮긴 글은 슬프고 절절하되, 사진은 밝고 힘차다. 간혹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이들의 얼굴과 목소리, 숨결의 사진적 재현이 바로 이 책이다.
운단 말이지. 어디로 가겠냐, 어디로 실어가냐, 어디로 가져가느냐……. 모르지요. 세상 모르지요. 열 살이면 무엇을 알겠소. 울었지요. 눈물이 나지요. 어데를 가지, 어데를 실어가지. 내게 아무. 모르지요. 아무것도 모르지요.
_ 유 따냐
다행히 나처럼 강한 아이들은 살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애들은 중간에 죽었지. 그것은 ……. 어쩔 수 없이 열차가 가는 도중에 미닫이문을 열고 그냥 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살아야 하니까. 애도 버리고 어른도 버리고 그랬습니다. 사람이 좀 쓰러져도 조금 말만 하고……. 늘상 “째르빼니, 째르빼니.”(참아야 해, 참아야 해) 이렇게 왔습니다.
_ 유 따냐
그래 그때 늙은들 세와 놓고 이름을 불러서리 일본들 개라고. 그래 붙들어 갔습니다. 그 영감들이 무슨 일본들 개라고서래이. 허허. 가져가가. 이 어드메로 갔는동 찾지도 못하고 가족끼리 잃어졌습니다. 고저 조선 사람들이니까 그저 일본들과 한가지다 하고서래 붙들어서래 가서 감옥을 가지가고. 그래 그 친척들을 찾자 하니까 모른다 해. 어디로 가지가고. 아부지들 없는 양반들 많았습니다. 아버지 없이 사는 아들 많았습니다.
_ 양 니꼴라이
2 그이들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기도 하고 또 보편 인류이기도 했다
인터뷰 중간중간에 문득 ‘길주’ 등 낯익은 지명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 서울의 어디어디, 경기도의 어디어디에 살고 있는 아들딸 이야기도 흔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성공한 조국, 대한민국에서 느끼는 자부심과 경외감도 곳곳에 가득했다. 또 자신들은 조국의 배신자가 아니라, 시대의 희생자임을 호소했다. 기회만 주어졌다면 누구 못지않은 애국자였을 이들. 비록, 종종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음식과 가구, 복식, 특히 심성에서 딱 한민족이었다. 그것이 너무 고맙고 좋았다.
우리 오마니, 아부지 고려에서 났소. 고려 어디메서 날 줄 아오? 길주! 길주 있소? 거게서. 기래 한 번 고려 가보자, 하오. 근데 모르겠소. 어쩌겠는지. 가겠는지, 아이 가겠는지. 갔다 말 없소. 언제나 가겠나, 하고 기다리오. 입을 하― 벌리고. 가고 싶으오. 세게 가고 싶으오. 한 번 보고 죽었으면 좋겠소. 기래, 고려, 우리 한 번 가보고 죽자 하는데 아이 되오. 세게 가보고 싶으오. 나는 거기다가 언제나 멀었는가 하고 기다리오.
_ 김 나제즈다
거반 다 늙은들이지. 자슥들이 같이 늙은들하고 사는 게 몇이 없소. 일할 게 없다나이 싹 외국으로 해바라났다나이 집집이 집을 재뿌리고 싹 돈 벌러 갔지. 시장 우리 소비에트국가 마사지다나이(무너지니) 일할 데도 없지. 모스크바, 우크라이나, 고려, 외국에 갔지. 우리네 딸들도 그렇지. 러시아 고르노알따이스크에 농사지으러 갔지.
_ 텐 세르게이
난 이런 말 자슥들과도 아이 합니다. 한마디도, 한마디도. 우리 아-들이 하나도 모릅니다. 내 어떻게 자란 거. 난 암말도 자슥들과 아이 말합니다. 야들 모릅니다. 내 어떻게 자랐는지 몰라요. 거 알아서 뭐하겠소. 아이 물어봅니다. 그거 무슨 말할 게 있습니까. 가들이 무슨 신발이 없이 자랐나, 오티(옷) 없이 자랐나. 말해도 모릅니다. 곧이 아니 듣습니다. 말하면 웃습니다. 내 바삐 살다나이 가들도 내 일 알지 말라 난 말 아니합니다. 말해서 거 뭘 하겠습니까.
_ 박 알렉산드로
저희가 과거에 조국을 벗어난 것은 배반감 때문에, 배반을 하려고 해서 벗어난 게 아니고 본의 아니게 고국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저희가 그 당시 상황이 아니라면 계속 고국에 남아 있으면서 아마 고국을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저희가 타지에 와서 살고 있지만은 고려의 문화와 언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_ 김 이리나
3. 이 책은 사진가 한금선의 사진 작업의 전환을 담고 있다
그동안 작가는 소외된 곳, 아웃사이더들의 삶에 몸과 마음을 함께했다. 당연히 늘 ‘인물’을 중심에 놓고서 작업했다. 그런 작업에는 흑백사진이 적절하고 좋았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이번 작업은 우즈벡 정부의 노골적이고 공공연한 감시 때문에 제약이 많았다. 또 인터뷰와 촬영을 함께하는 동안, 인물을 찍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문득 열린 장롱 틈에서 빠져나온 옷가지를 ‘만났다’. 순간, 그 안에 우즈벡에서 간난신고를 겪은 어르신들이 담겨 있음을 ‘느꼈다’. 그때부터 그동안 잊고 있었던, 혹은 배제해왔던 사물들이 주인으로 들어섰다. 인물과 나란히 사진의 중심으로 진입했다. 또 밝고 화려한 그이들의 카펫, 음식, 옷가지 등은 흑백이 아닌 칼라가 적격이었다.

목차
바람에 눕다 15
경계에 서다 39
강 라이사｜김 나제즈다｜김 니꼴라이｜양 니꼴라이｜김 레오니드｜김 미하일｜양 빅토르와 김 이리나｜유 따냐｜허 예까째리나｜텐 세르게이｜현 쎄면｜림 리하르드｜박 알렉?산드르
고려인 173
고려인, 우리의 이야기 213
한금선 말하고, 박미경 듣다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