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이 책은 ‘건축학’이라는 전공 학문의 고유한 가치에 관하여 개인적으로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다. 나는 건축을 공부하고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내내 ‘건축가’ 혹은 ‘건축사’라는 직업이 정확히 어떤 가치 판단 기준에 의해 평가될 수 있는지, 또 어떤 사람이 ‘좋은’ 건축가이고 어떤 건물이 ‘좋은’ 건축물인지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 p.3

어떤 학문이든지 보편적 가치가 없다면 우리는 그 학문에 대해 소통할 수 없고, 소통할 수 없다면 ‘좋다’, ‘나쁘다’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토론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7

인간은 ‘새로움’ 혹은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는데 그 지각능력의 한계가 있으며 오히려 우리의 지각 능력은 서서히 변해가는 일상의 속도에 더 익숙하다.
--- p.16

‘세상을 보는 관점을 건축의 논리로 구축’하는 것은 ‘건물을 구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며 건축가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고 고유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p.20

건축이라는 학문에서 ‘소통’은 시각적인 부분의 아름다움보다 더 중요하고 ‘좋은’ 건축은 일관된 논리를 통해 소통을 돕는 시스템을 갖춘 건축이다.
--- p.28

건축에서 ‘형태’는 소통을 위한 객관적인 매체로 가장 적절한 개념이다.
--- p.41

눈에 명확히 보이고 수량화·수치화가 가능한 ‘형태’는 모두에게 똑같이 느껴지는 물리적 실체이다. 그러므로 ‘형태’는 보편적인 건축의 가치를 소통하고 분석할 ‘객관적인’ 매체로서 매우 적합하다.
--- p.42

건축 또한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 연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형태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런 ‘반복성’과 ‘연속성’은 모네오가 생각하는 유형에 아주 적합한 속성이었다.
--- p.68

건축은 주어진 조건 또는 문제를 기술적으로 풀어야 하지만, 동시에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가치관을 ‘건축적’으로 표현하는 학문이기에 그 가치관의 소통 가능성과 보편성이 중요한 것이다.
--- p.70

건축에서 ‘유형’은 이런 과거의 메시지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환경을 거칠게 단순화시키자면 우리는 유형들로 이루어진 환경과 역사를 경험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 p.75

형태구조는 건축물들 개별 형태를 분석하면 나타나는 공통분모이기 때문에 많은 건물들이 공유하는 DNA 같은 것이고 이 점이 형태와 형태구조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즉, 형태의 가치가 개별성이라면, 형태구조의 가치는 보편성·포괄성이라 할 수 있다.
--- p.83

‘그리드’는 같은 형태이지만 동기가 다른 형태구조 중 대표적인 것인데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사람과 물자의 효율적 분배를 위한 격자 모양 동선 체계로 보는 방식일 것이다.
--- p.95

이미지와 메시지는 어떤 숨은 뜻이 있는 개념이 아니다. 말 그대로 건축가들은 형태나 디자인 프로세스보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라스베가스로부터의 교훈』에서 주장하는데 이는 ‘아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더 귀 기울여야 함을 의미한다.
--- p.127

건축에서 이미지는 오해와 해석의 여지가 적으며, 입면을 통해 가장 쉽게 표현되는 소통매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특성은 예시의 구체성과 맞닿아 있으며 벤투리가 사용하는 예시들은 즉각적이고 효율적 소통을 위한 ‘이미지’들이라 볼 수 있다.
--- p.129

건축은 단순히 ‘디자인’이 아니라 일종의 철학으로서 세상을 생각하는 방식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건축학은 건물을 디자인하고 짓는 것을 넘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가 사는 공간과 환경에 대한 ‘생각을 짓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 p.150

여는 글_ 블록버스터 건축 vs. 보편적 건축

1장 건축과 건축가의 역할

새로움은 좋은가?
건축가가 할 수 있는 고유의 일은 과연 무엇인가?

2장 보편적인 건축의 출발점: 유형과 예시

좋은 건축은 무엇인가?
보편적인 것이 소통하기 쉽다
서양 고전 건축이 보여준 보편성과 소통방식
현대 건축의 보편적 언어는? 유형과 예시

3장 건축을 보편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 형태와 도면

형태의 어원
형태의 기록: 도면
가장 중요한 도면: 평면도

4장 유형이란?

분류학에서 유형학까지
유형은 선험적이고 절대적이다_ 카트르메르 드 캉시
유형은 그 시대의 표준이자 기준이다_ 발터 그로피우스
유형은 경험적인 것이다_ 줄리오 카를로 아르간
유형은 도시를 읽는 단위이다_ 알도 로시
유형은 반복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다_ 라파엘 모네오
유형과 기능주의

5장 유형의 가치

유형: 창작과 역사의 연결고리
과거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추상화가 필요한 이유
추상성: 잠재된 새로움
형태와 형태구조
반복성은 복제가 아니다

6장 유형적 접근법

유형과 유형적 접근법
일반적 형태 vs. 구체적 형태

7장 유형적 접근법의 사례

그리드
아파트

8장 유형과 예시의 상보성

9장 예시적 접근법의 특징들

구체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예외적인 것
지적 환경 조성

10장 로버트 벤투리의 예시적 접근법

로버트 벤투리 건축의 배경
포용주의
예시는 이미지다

11장 뒤랑의 예시적 접근법

예시(사례)조사
역사적 배경
지적 환경: 구성

12장 건축 디자인의 출발점: 유형적·예시적 접근법

맺는 글_ 건축의 철학적 측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