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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는 돌봄 언설만 난무하지, 그것이 어떤 노동이며 누구에 의해 수행되고 누가 혜택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정확하고 필수적이다. 돌봄 공부의 첫 번째 텍스트로 삼아야 할 최적의 책이 당도했다!”
★★★★여성학 박사 정희진★★★★★
사랑이 아닌 착취가 되어버린 돌봄!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돌봄노동의 민낯을 드러내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다.
팬데믹 이후 돌봄노동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지만, 여전히 돌봄은 여성의 전유물이자 노동 시장에서의 지위조차 지극히 평가절하되어 있다. 이는 돌봄이 주로 사랑하는 관계인 가족, 애인 사이에서 ‘무상으로’ 충족되는 경우가 많아, 돌봄을 ‘노동’과 연결 짓는 것을 터부시하는 전통적 인식 때문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관계에서 베풀어지는 돌봄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 돌봄의 숭고함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오해도 이러한 인식을 강화한다.
알바 갓비는 돌봄은 곧 사랑이라는 공식에 거대한 의문부호를 던지고 이 공식이 생기게 된 정치, 경제적 이유를 다방면으로 추적한다. 갓비는 특히 ‘돌봄=사랑’ 공식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자본주의’임을 지적하며, 왜 자본주의가 이 공식의 수혜자일 수밖에 없는지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가족 이데올로기’, ‘로맨스 이데올로기’ 등의 개념을 들어 유려하게 설득해나간다.
우리는 왜 돌봄을 노동이라 부르지 못하는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두 가지 환상
- 가족 안에서만 정서 욕구를 완벽히 충족할 수 있다!
- 진정한 사랑에 의한 돌봄은 베푸는 자에게 보상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가족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우리의 정서 욕구는 가족 안에서만 완벽하게 충족되고 이를 대체할 수단은 없다. 또 이러한 이데올로기 안에서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는 ‘이성애 결혼’에 의한 것이고 가정에서의 삶이 곧 ‘좋은 삶(good life)’이다. 반대로 이 기준에서 벗어나는 동성애나 가족을 벗어난 삶은 ‘나쁜 삶(bad life)’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공동체와 가족은 시장 논리와 상관없는 사생활의 일부다.
로맨스 이데올로기는 진정한 사랑을 찾은 사람이 비로소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이 사랑이 정서적 욕구를 모두 충족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은 대부분 여성이 떠안아야 한다. 그 이유는 여성 본성에는 돌봄에 적합한 성향이 내재되어 있다는 통념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여성의 돌봄 행위는 별로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돌봄을 제공함으로써 여성 스스로 심리적 보상을 받게 된다는 논리다.
보이지 않는 손의 마법: 돌봄을 노동이 아닌 사랑으로 포장한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
알바 갓비는 현재 우리의 삶에 깊숙하게 침투해 있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돌봄의 실체를 어떻게 왜곡하는지 포착한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가족 이데올로기, 로맨스 이데올로기에 뿌리내린 자본주의에서의 돌봄이 왜 사랑이 아닌 착취인지, 여성이나 유색인종처럼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이런 이데올로기에 번롱되어 착취당하는 역할을 맡아 왔는지 역설한다. 또한 이 착취 구조가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버팀목으로 기능하는 메커니즘을 짚어낸다.
돌봄은 사회에 필수적인 일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돌봄 부담을 덜어주는 노동이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작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고통과 긴장, 권태를 줄이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 일은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는 이 세상에 대한 정서적 애착을 만들어낸다. 아이를 달래고, 노인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재생산 노동은 사회적 유대와 감정적 안정에 필수적이며, 이 노동은 흔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는 재생산 서비스 노동을 무상이나 저임금으로 유지하며, 이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강요한다.
이 노동이 주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이유는, 돌봄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고 원래 여성적이라는 통념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에게 있어 돌봄이란 금전적 보상을 받지 않고 수행해야 하는 의무로 여겨진다. ‘여성의 일은 사랑이고, 사랑은 그 자체가 보상이며 돈으로 더렵혀질 수 없다’는 믿음을 많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한다. 자본주의하에서 이익이 극대화되는 원리가 이것이다.
도발적 해결책: 자본주의, 가족, 젠더를 폐지하라!
이 책의 클라이맥스는 문제를 나열하고 그것의 원인을 파악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도발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후반부일 것이다. 이 해결책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이라거나 패륜적이라는 비난의 여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주저함이 없다. 알바 갓비는 사랑으로 포장된 착취를 궁극적으로 사라지게 할 방안으로 자본주의 폐지, 가족 폐지, 젠더 폐지 등을 제안한다.
- 자본주의 폐지
여성들이 임금 노동에 접근할 기회가 늘었지만 비공식적 돌봄 장소인 가정에서는 여전히 돌봄의 일차적 책임은 여성에게 주어진다. 결국 무임금 재생산 노동의 장인 가정이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사적인 것으로 표시되고 개인화된다. 자본주의 제도 아래에서 평등 담론은 단순히 ‘남자 대 여자의 가사 비율을 절반씩 나눈다’라는 식의 일차원적인 담론이기 쉽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재생산 노동 착취의 조건들은 자본주의가 부상하면서 만들어졌다. 또, 젠더화된 착취는 초기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사회 변화를 통해 등장했고, 젠더화된 폭력이 젠더화된 노동을 유지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구실을 한다. 착취에는 폭력이 내재한다. 성폭력과 가정 폭력은 그 자체가 젠더화된 지배의 원인이 아니라 여성의 노동을 통제하려는 욕구의 결과다. 젠더화된 폭력은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는 세계의 지속적인 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발생한다.
- 가족 폐지
가족은 사랑으로 똘똘 뭉쳐 있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는 환상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위계적, 착취적, 배타적인 집단이다. 이러한 가족 유닛이 모여 더 큰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 제도의 근간이 된다. 자본주의는 가족이 돌봄의 주요 원천이 되어야 한다고 암시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손으로 (무상으로) 돌보는 것.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에 자본주의 제도의 계략이 숨어 있다. 돌봄은 사회를 지탱하는 데 필수적인 일이다. 이것을 유급 노동으로 환산하여 정당한 댓가를 지불한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금방 파산하고 말 것이다. 자본주의하의 돌봄은 ‘무료’이거나 ‘아주 값싼 것’일 필요가 있다. 돌봄을 정당한 위치에 올려놓으려면 우리는 재생산의 중심이자 욕구의 사회적 세계로서 가족이 꼭 필요하고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 젠더 폐지
가족 내에서 돌봄을 베푸는 쪽은 주로 여성이다. 돌봄에 필수적인 기능이 ‘여성성’이라는 도식 때문이다. 한 집안의 엄마가 노인을 돌보고, 남편을 돌보고, 아이들을 돌보는 것. 여기에 더한 ‘모성 신화’로 인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포장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여성의 돌봄은 직장으로 확대된다. 여성들은 직장에서도 자신의 내재된 ‘여성성’으로 인해 원래 할당된 노동과 함께 돌봄이라는 포지션을 담당해야만 한다. 그리고 최고의 돌봄 기술 중 하나인 ‘돌보지만 돌본 티를 내지 않는다’는 도식에 의해 자신이 해준 것을 감춰야 한다.
여성이 타고난다는 감정 기술은 남성을 재생산 노동의 책임에서 해방하는 한편 남성이 재생산 노동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한다. 남성성은 돌봄 역량이 부족하고 정서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그 때문에 남성은 다른 사람의 욕구를 무시할 수 있고, 여성의 돌봄을 보답 없이 누릴 권리를 갖는다.
젠더화된 몸은 자연에서 주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노동의 결과다. 이것은 여성이 하는 비물질적 재생산 노동의 일부이다. 결국 여성화된 몸은 젠더화된 노동의 생산품인 것이다.
네오 유토피아: 돌봄을 사랑이 아닌 노동으로 부르는 세상
돌봄이 무상으로 제공되고 친밀한 관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이데올로기적 믿음에서 벗어나려면, 돌봄이 사유화된 사랑이 아닌 생산적 노동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주거, 도시계획, 보건, 교육, 아동 돌봄, 노인 돌봄 분야에서 덜 억압적인고 덜 착취적인 재생산을 일반화하기 위한 대규모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참고되어야 할 것이 퀴어 잠재력과 코뮌 같은 ‘친족이 아닌 사회성 형태’의 집단 군락이다. 퀴어 부모 역할은 법적, 생물학적 부모 신분을 넘어서며, 아이들은 ‘혈연’으로나 법적 양육권에 따라 필연적으로 부모라고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양육된다. 따라서 퀴어 부모 역할은 규범적 친족 유형을 구축하는 감정적 배타성의 제로섬 게임에 저항하며, 한두 사람이 자녀의 정서 돌봄을 책임지는 이성애 가족의 배타적인 전유 논리를 거부한다.
재생산 노동을 공유하고 자녀 양육을 분담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로 구성된 코뮌의 사례를 보면, 이 공동체에서는 성적인 쾌락과 충족, 개개인 사이에서 선택된 사랑의 유대나 낭만적 유대, 부모 자식 간 유대를 차단하지 않으면서 ‘모든 이’의 대인 관계 욕구와 계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작동한다.
우정을 비롯한 친족이 아닌 사회성 형태는 가족 편에 있지 않으며 임금 노동 편에 있지도 않다. 공과 사의 경계를 넘어, 임금 노동과 가족생활의 영역을 넘어 사회성을 개조하려고 하는 정치는 우정의 정치가 지닌 퀴어의 잠재성을 잘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런던에 살고 있는 작가이며 사회 운동가다. 킹스턴대학교의 현대유럽철학연구센터Centre for Research in Modern European Philosophy에서 철학과 현대 비판이론 연구로 석사학위를, 웨스트런던대학교에서 미디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페미니즘 이론, 사회 재생산, 주거, 감정, 가족에 관한 글을 집필해 왔다
서울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고 한때 가톨릭 수사로 살았다.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로 살아간다. 옮긴 책으로는 《바이블》, 《프랑스의 음식문화사》, 《가톨리시즘》, 《페미사이드》, 《미디어의 역사》,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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