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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가족 여행』은 평생 평범한 농부로 살았던 김(金)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다. 어느 일요일, 김은 자신의 집에서 평소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인 전국노래자랑을 시청하다가 노환으로 눈을 감는다. 이후 김의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김을 추모하며, 김과 함께 어떤 여행을 떠나게 된다.
1장에서 김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일종의 중음신(中陰身)의 상태로 바닷가에 있는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간다. 그러나 묘소가 있는 산은 산불로 온통 새카맣게 타버렸고, 김은 달라진 풍경으로 인해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맨다. 김은 불타버린 절에서 타지 않은 불경을 찾는 낯선 노승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어머니의 묘소를 자신들의 부모님 묘소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뒤 마침내 무덤에 도착한다. 그곳엔 돌아가신 부모님을 비롯해 형제들이 모여 앉아 김을 기다리고 있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냐는 타박을 들으며 김은 비로소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장은 김의 막내아들이 쓴 김의 행장(行狀)이다. 이 행장에는 일제강점기 중반에 태어나 긴 세월을 통과해 2000년대를 넘어온 김의 생애가 담겨 있다. 행장의 중심엔 당연히 평생 농부로 살았던, 얼핏 보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김의 농사 철학이 담겨 있고 그 주변으로 김의 가정사가 펼쳐진다. 행장의 저자인 막내아들은 김이 ‘진정한 농부였고 정직한 예술가였다’고 평한다.
3장은 김의 첫 기일에 일어났던 이야기다. 눈 내리는 밤, 자식들은 제사를 지내고 밥상 앞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김의 생전 모습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시청한다. 김은 이 사진과 영상 속 가족의 경조사가 벌어지는 곳곳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떠난 관광여행에서, 농사일하는 밭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사진 속엔 거의 술병과 안주가 등장한다. 한편 김의 자식들은 김이 남긴 유산을 둘러싼 신경전을 멈추지 않는다. 이어지는 4장에서는 이 순간 김의 영혼이 집 안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소설의 말미에는 또 다른 ‘김’이 등장한다. 그는 김의 막내아들이자 소설가이다. 독신으로 살던 막내아들 김도 어느덧 나이가 들었다. 추석날 바닷가 부모님의 산소에 성묘하려고 계획한 뒤 근처에 있는 호텔에 먼저 가 원고를 쓰던 김은 늦은 밤 산책을 나섰다가 기이한 일을 겪는다. 호주머니에 있는 줄만 알았던 객실 키와 자동차 키, 그리고 지갑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신이 묵던 객실 번호와 층마저도 떠오르지 않는다. 들고 있는 휴대폰도 어찌 된 일인지 불통이다. 결국 호텔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김은 해수욕장과 작은 포구, 숙박 시설, 야산 속에 자리잡은 사찰 단지를 유령처럼 돌아다닌다. 김은 날이 밝아올 때까지 순례하듯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오래전 김의 아버지 역시 이 공간의 순례를 마치고 무덤으로 돌아갔다. 김도 그 길을 따라 무덤을 찾아간다.
어느 날은 삶이 많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와 대화하는 것이며 또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김도연의 소설을 읽는 내내 그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깊은 대화를 나눈 느낌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 년 동안 김도연은 “불, 밭, 눈, 밤, 달, 물, 길” 7장으로 구성된 『가족 여행』을 썼다. 이 소설은 우주 속을 떠돌며 여행하는 아버지, 순환하는 세상의 모든 사물에 바쳐진 일종의 김도연식 ‘애도 일기’이다. 『가족 여행』은 방대한 자료와 기억의 답사를 통해 아름답고도 슬픈 가족사를, 가족이 마시던 술의 연혁沿革을, ‘김의 백 년’을 재구성한다. 아버지가 지은 진부집 앞마당에 펑펑펑 내리는 함박눈, 뒤뜰의 돌배나무, 화목난로의 불꽃, 여전히 추운 밤을 지키는 화로의 불씨는 황홀한 비극적 서사의 낭만적 배경이 된다. 나는 소설을 읽다가 잠시 멈추고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곤 했다. 불현 듯 곳곳에서 출몰하는 시간을 초월한 목소리들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내가 붙인 이 소설의 다른 제목은 ‘김의 백 년 동안의 사랑과 고독’이다. 누가 뭐래도 김도연은 빼어난 시인이며 작가다. 『가족 여행』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그가 부려놓은 ‘말(馬, 言語)’을 타고 허공의 별처럼, 공허를 가로지르는 눈발처럼 『가족 여행』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당신의 여행이 될 것이다. 바람이 분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 두 눈 가득 펄럭이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펄럭임을 김도연의 마음이라 하자. 진부에 눈이 내리면 도연을 만나러 가야겠다. 석달 열흘 눈밭을 걸어.
박정대(시인)
나는 이 소설의 원고를 내 부친의 사십구재 기간에 읽었다. 하여, 김도연 작가와 동병상련이 되었고, 작가의 창작 동기를 십분 이해했다. 부모의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죄인이 된다. 나는 술과 노래로 이 죄스러움을 씻어내려 했지만, 김도연 작가는 부친의 행장(行狀)을 소설화하면서 이마저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나는 보내드리려 애썼지만, 그는 남겨드리려 최선을 다했다. 누가 더 효자인지는 구르는 돌멩이도 알 것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포함하여 그동안 ‘여행’이 들어가는 장편을 세 편 발표했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서는 소가 이야기를 이끌었고, 『풍의 여행』에서는 신목(神木)이 주인공을 맡았다. 이번 소설 『가족 여행』에 이르러 비로소 ‘인간’, 그것도 인간 사회의 기본 축인 ‘가족’이 주인공이 되어 긴 서사를 이끌고 있다. 동물, 신과의 여행을 다루던 작가가 돌연 인간, 그것도 가족과의 여행을 다루는 것이 낯설기는 하지만, 작가가 돌고 돌아 마침내 인간 사회로 귀환한 것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작품을 읽는 내내 “한 갑자 돌면 철든다”라는 옛말이 떠올랐다.
이홍섭(시인)
1991년 『강원일보』,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 제1회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빵틀을 찾아서』 『콩 이야기』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십오야월』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장편소설 『풍의 여행』 『마가리 극장』 『누에의 난』 『마지막 정육점』 『산토끼 사냥』 『아흔아홉』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산문집 『평창―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강원도 마음사전』 『패엽경』 『강릉 바다』 『영』 『자연은 밥상이다』 『눈 이야기』 등을 출간했다.
“노승과 헤어진 뒤 산길을 내려오던 김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놀랍게도 검게 타버린 소나무들의 가지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연둣빛 잎들이 빠른 속도로 하나둘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산비탈에 쌓인 검은 재를 뚫고 풀들도 쑥쑥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김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산을 떠났던 들짐승과 날짐승이 돌아오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 김이 산소에 도착하자 언제 산불이 지나갔냐는 듯 주변은 완연한 봄날의 기운으로 생동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검은 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불에 전소된 절들도 복원되었을까…… 김은 어머니 봉분 앞 파릇한 잔디밭에 앉아 노승과 헤어진 능선 쪽을 바라보았지만 울창한 숲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솔잎 사이로 내려오는 따스한 봄볕 탓인지 살금살금 졸음이 몰려왔다.”(70쪽)
“지금도 절을 받고 있지만 그때처럼 수저와 젓가락을 놀려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지는 못한다. 다만 바라볼 뿐이다. 음미만 할 뿐이다. 그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춤도 추었는데 지금은 제사상 앞에 피워놓은 향이 나 대신 흔들거린다. 서러운가? 안타까운가? 화가 나는가? 잘 모르겠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다.”(203쪽)
“모두 다 아름답게 늙은 어느 가족의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여행은 계속 이어지겠지.”(351쪽)
1장 불 ‥ 김의 산 7
2장 밭 ‥ 풀어 쓴 김의 행장 71
3장 눈 ‥ 김과 함께 여행하는 법 137
4장 밤 ‥ 하룻밤의 꿈 181
5장 달 ‥ 밤에 쓰는 편지 233
6장 물 ‥ 저승에서 쓰는 답장 271
7장 길 ‥ 구더기 떼가 그린 만다라 305
작가의 말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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