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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된 스코어, 스코어가 된 디자인』은 그래픽 디자인을 경유해 스코어를, 스코어를 경유해 그래픽 디자인을 탐구한다. 상세한 기술과 구체적인 지시로 완성된 무보舞譜, dance score는 과연 매 시행마다 똑같은 춤과 퍼포먼스로 수행될 수 있을까? 다양한 시각적 기호를 사용하여 춤의 지시를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스코어는 ‘지시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 ‘지시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스코어의 이러한 성질은 지시로 인해 만들어진 수행의 외피와 내피가 확장하거나 서로 자리바꿈하게 하고, 발생하는 에피소드의 부피며 가능성을 자유롭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한편, 기획하거나 상상한 것을 그대로 만들고자 하는 디자인의 절대적이면서도 심미적인 측면과 대비되는 즉흥적인 힘겨루기를 연상케 한다. 이 책에서는 춤이 예절로 여겨지던 시기에 그려진 스코어에서부터 창작의 한 도구로써 출현하는 스코어를 살펴본다. 나아가 그래픽 디자이너 이주현이 창안한 몇몇 스코어 실험을 소개하고, 스코어에 얽힌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불러온다. 스코어를 따르는 개별 수행자가 공동-경험이라는 사건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책은 스코어를 기록이자 도구의 장치로 바라보는 참신한 시각과 스코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는, 열려있는 사유에 주목한다.
1인 출판사 몽타주 프레스를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에 잠재된 갈림길을 찾아 서사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며 작은 흔적들을 늘리고 엮어서 다른 것과 연결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출판되는 책은 모두 이에 대한 실천의 결과물이다.
10쪽-그러나 머지않아 동시대 안무가들은 과거의 춤을 완벽히 되살릴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를 다르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스코어는 애초부터 모든 정묘함과 복잡성을 담아낼필요가 없으므로, 이 한계를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한 또 하나의 실험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15쪽~16쪽-스코어를 제작한 뒤 협업하는 대상에게 스코어를 보여주고 수행하기까지의 결과물을 지켜보는 일련의 과정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작업과는 거리가 있다. 그보다는 한쪽 문은 열어둔 채로 결과를 예측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과 닮았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은 예상하지 못한 미래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또한 결과까지 도달하기 위해 흔적을 남기며 돌아온 그 과정까지를 작업으로 봐야할 것이다.
41쪽-그렇다면 동시대 안무가들의 스코어에서 나타나는 그래픽 양상은 어떠한가? 그들은 도표, 그림, 사진, 기호,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어떤 미래를 불러오고 싶은 걸까? 이 그래픽들은 어떻게 미래의 시간을 구성할까?
54쪽-스코어는 거대한 틀로 보자면 움직임을 발생시키는 주문서 같은 존재다. 스코어를 제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상상하고 있는 움직임을 붙잡아 기록하는 것이라면, 스코어를 읽는 사람에게는 스코어에 적힌 기호를 맘껏 상상하고 해석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두 과정 사이에는 항상 간극이 존재한다. 움직임이 상상한 대로 실현되지 않거나, 한 번 만들어지면 반복 불가능하다. 이 간극이 스코어를 확실히 정하지 아니한 성질, 또는 그러한 상태인 것으로 만든다.
66쪽-그렇게 걷고 멈추고 고민하고 이동하는 행동을 모아서 하나의 순서로 정리한다. 이 모든 것을 머릿속으로만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결과물로 만든다면 그것이 스코어이며 스코어가 발생한 이유이다.
107쪽~109쪽-이렇게 일련의 규칙을 통해서 습관과 화살표를 변형시킨 결과물이 양쪽에 나란히 놓인다. 이 모든 과정은 책을 스코어로 사용하고 그 결과물을 스코어 삼아 다시 책을 만드는 '스코어→수행→스코어→수행'이라는 흐름을 가진다. 규칙을 통해 배열된 지면 위 문자는 어느새 종이 위 도형이 된다. 세상에서 진동하는 모든 음을 가장 가까운 근사치에 묶어 두는 오선보 위의 기호들처럼 누군가는 페이지의 문자를 이어서 이것을 다시 스코어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스코어는 또 다른 스코어를, 그리고 또 다른 스코어를 만든다.
132쪽-'대화하기'가 스코어의 시작이다. (중략) 내가 이곳에 있고 너가 그곳에 있음을 알아차리는 일. 종이 위에 있는 말을 공간에 풀어두는 일.
149쪽-한 명의 디자이너가 행하는 '스코어에 대한 모험'은 이렇게 무대에 오르면서 끝이 난다. 무대에 오르면서 비로소 깨달은 것도 있다. 모든 것이 온전히 같은 공연이 2번 이상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 이 순간이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154쪽-'디자인된 스코어'는 기록을 위해 과거부터 사용된 스코어의 형태와 기능을 분석하고 새로운 기호를 디자인하기 위한 운동이다. '스코어가 된 디자인'은 스코어의 시작과 끝, 그 사이의 수많은 순간을 조율하는 방법에 대한 고찰이며, 다루고자 하는 재료에 따라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디자인한 스코어를 작동시키는 운동이다.
175쪽-(서태리) 끊임없이 재생산을 하면서 이윤을 계속 창출해 나가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서 퍼포먼스의 본질에 더 충실하다는 것은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잠시 머물고, 표류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 저는 그것이 예술이 해야 하는 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206쪽-(신예슬) 결국 '무엇이 음악이고 무엇이 음악이 아닌가 구분점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이었는데요. 그게 같은 자리를 맴도는 질문이었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질문의 출발점을 바꾸어야 했어요. 과거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탈중심이 아니라, 제가 찾고 싶은 다른 중심을 잘 세워보는 일로요. 한 작곡가가 구슬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다른 것을 듣고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저도 그런 전환의 순간을 마주해야겠죠.
215쪽~216쪽-(차르) 항상 제가 먼저 그림을 그려요. 진행자인 저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이고, 저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제 연약하고 여린 모습도 드러낼 준비가 되어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이 평소에는 쉽게 말하지 않는 것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출판publication'이라는 단어 안에도 '공공의public'라는 말이 들어있잖아요. 무언가를 세상 밖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어느 정도 바깥으로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스코어와 단상들
스코어와 기록
시간, 움직임, 기호, 선 Time, Motion, Symbol, Line
스코어 실험
스코어가 가져오는 것들
스코어, 그리고 다음
대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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