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묻지 않았다. 왜 이곳에 왔느냐고...한승오씨의 시골 생활을 보여주는 글이다. 도시에서만 살다가 불쑥 시골로 내려간 한승오씨. 하지만 땅도 그곳의 사람들도 아무말 없이 한승오씨를 받아주었다. 논이란 것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땅이었고 그 누구도 내치지 않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땅이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서툴고, 어설프지만 그가 땅에 기대어 땅과 함께 하는 이야기가 따뜻하다.
출판사 서평
▶‘귀농’ 없는 삶의 일기 - 땅은 묻지 않았다, 왜 이곳에 왔느냐고
이 책을 쓴 한승오는 우리 시대의 보통 사람이다. 1960년 부산에서 나고 자라,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그게 1980년이니? 이른바 386의 견장은 피할 수 없었다. 이후 운동권 386들의 그만그만한(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궤도를 따라 이삼십대를 서울과 그 주변에서 보냈다. 서울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출판사 경영이었다(이에 대해서는 그의 출판사에서 첫 창작집을 낸 소설가 성석제의 정겨운 목격담이 발문 「그 이야기를...
▶‘귀농’ 없는 삶의 일기 - 땅은 묻지 않았다, 왜 이곳에 왔느냐고
이 책을 쓴 한승오는 우리 시대의 보통 사람이다. 1960년 부산에서 나고 자라,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그게 1980년이니 이른바 386의 견장은 피할 수 없었다. 이후 운동권 386들의 그만그만한(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궤도를 따라 이삼십대를 서울과 그 주변에서 보냈다. 서울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출판사 경영이었다(이에 대해서는 그의 출판사에서 첫 창작집을 낸 소설가 성석제의 정겨운 목격담이 발문 「그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에 담겨 있다). 2000년 그는 틈틈이 목수 일을 배우는 한편, 충청도 일대로 이사 갈 집을 보러 다녔다. 목수 학습은 시골 생활을 꾸려가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였다. 시골 가면 강아지를 맘껏 키울 수 있다고 두 아들의 마음을 잡아끈 모양인데(서울에서처럼 수세식 화장실을 쓰게 해주겠다는 공수표까지 발행해가면서), 아내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다만 ‘귀농’이라는 귀한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이 책에서도 귀농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살러 가는 것이었으니까. 조금 멀리 이사 가는 것이었으니까.
몇 달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끝에(청양서껀 몇 군데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가 그놈의 축사 냄새 때문에 고개를 돌리기 여러 번!) 마침내 찾아낸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집. 충남 홍성군 홍동면 구정리 고요마을. 사오 년 비어 있던 집이라 마당에는 허리 높이까지 잡초가 우거져 있었지만, 집 뒤편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 숲이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러나 이 집으로 결정하고 나서 얼마 뒤, 주변을 둘러보니 집 옆의 솔밭 너머가 바로 축사였다). 그렇게 시작한 시골 생활이 이제 4년째를 맞고 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 책은 그 4년의 전반기 보고서다. 그런데 초보 농꾼이 보낸 그 이태는 무슨 경천동지할 각성이나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않은 것 같다. 겸손을 가르쳐주기는 했던가. 그는 쓰고 있다. 그저 땅에 가만 기대어 살았다고. 그 ‘기댐’이 그런데,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한다. 땅에 대해, 흙에 대해, 고추에 대해, 뒷간의 행복에 대해, 똥의 고마움에 대해, 볍씨의 움에 대해, 햅쌀의 기적에 대해, 사람보다 나은 콩에 대해, 나무꾼의 사랑에 대해, 쥐가 가르쳐준 가난에 대해…… 그리하여 다시 한번, 이 책은 ‘귀농’ 일기가 아니다. 신념을 세우고 뜻을 펴는 지사의 기록은 더더구나 아니다. 홍성 시골 땅에 네 해를 기대 산 보통 사람의 희로애락의 기록일 뿐.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낮은 땅’이 내어준 말없는 어깨에 대한 공경(恭敬)의 이야기.

이 책에는 모두 55컷의 사진이 실려 있다. 그는 그 하나하나마다에 맛깔스런 제목을 뽑고 짤막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이 자체가 본문의 글과는 별도로 또 마음의 한 자락을 건드린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신병훈련소 -텃밭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도시놈이었던 나를 농사꾼으로 만들어간 훈련소와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텃밭을 지나치며 내게 한마디씩 툭툭 던졌다. 마치 신병훈련소 교관이 신병을 가르치듯.

**동반자들- 열두발 쇠스랑, 선호미, 그리고 삽. 나는 아무런 농기계의 도움 없이 이들을 가지고 밭두둑과 고랑을 만들었다. 원시적이고 무식하게 농사 짓는 나를 보고 주위에서는 혀를 끌끌 차며 안쓰러워했지만, 이들은 묵묵히 나의 길을 따라왔다.

**설렘 아이들 -곤충채집함을 우편함 대신 매달았다. 곤충 잡는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 채집함을 들여다보았다. 혹시 반가운 소식이 잡혔을까 해서.

**침묵- 물이 말라가면서 우물은 입을 닫았다. 세상의 메마름에 말문을 닫아버린 그 침묵이 나는 늘 두렵다.

**인연- 마을 사람들이 자아내는 인연의 실타래가 헤아릴 수 없는 세월 속에 얽혀서 마을길이 되었다. 이 길을 밟고 다니며 내가 자아내는 인연의 실은 무엇일까?

목차
책머리에
대나무, 네 비록 곧다 하나
한밤중 휘파람 소리에
어! 채송화다!
고추야, 미안하다
뱀, 내 너를 피할 것을
타향살이
바닥난 우물
대문 열어유
태양초를 아시나요?
작은 시골 학교? 가을 운동회
팍팍한 가슴에 무를 묻는다
춤추는 관광버스
상여 따라 떠나는 길에
밥값도 못하는 놈들!
순산
화장실에서 뒷간으로
이장 선거하던 날
하늘의 분노는 깊어만 가는데
여보! 똥 왔어, 똥!
소나무, 그 세월의 무게
비둘기 젖가슴이 나올 때까지
살림의 농사에 오리는 죽어나가고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큰바람이 지나간 자리
작은 햅쌀 한 알이 들려주는 이야기
하늘을 먹고 땅을 먹고 바람을 먹고
백정의 흔적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가난한 봄이여 오라
나무꾼의 사랑
쌀장사
발문 : 그 이야기를더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