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 퍼거>
는 판타지 소설이다. 그러나 단순히 모험과 즐거운 아이템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이 소설이 가지는 함의가 약한 듯 하다. 막 스무 살이 되려는 러스 퍼거는 “판타지 속 대학” 떡갈나무 언덕이라는 뜻의 “오크 힐” 대학교에 입학한다. 입학부터가 그의 자의가 아니다.

그는 평범하고 비교적 정상적인 것을 믿으려는 성격의 소유자로서 오크 힐에 떠밀리듯 입학하게 된다. 커다란 보자기 같은 마늘 가오리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입학선인 핌퍼를 타고 정체불명의 장소인 메런티 섬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는 특별한 교수들과 친구들과 만나게 되고, 하울 필러 문제집을 통과하고 정식 수업을 받으며 점점 오크 힐의 매력에 빠져든다. 어빙 하트 모임, 꼬박꼬박 강낭콩을 키우는 일, 숙모와의 특별한 언어 수업, 끝나지 않는 세계에서의 모험, 그리고 리누머, 필리버스, 유로파의 과정을 겪고 그는 오크 힐을 졸업한다. 졸업 후 그는 오크 힐에서 배운 것들을 스스로 다시 익히고 또다시 새로운 모험에 들어가게 된다. 모든 진귀한 것들을 수집하는 로디커 프레더의 작전에 말려든 그는 오크 힐을 둘러싼 에모리 빈의 가족들, 밀리얼 페페의 정체, 앱솔루트 아이의 존재 등을 파악하고 다시 자기 자신의 자리에 돌아오게 된다. 그가 존경하는 작가인 포니 라벨 씨의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세계가 자신의 편견을 넘어 존재하는 것에 문득 미소를 짓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오크 힐을 떠나 자기 자신의 시야로 형성한 지성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듯
<러스 퍼거>
는 판타지가 가지는 재미있는 아이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스무 살 시절에 형성해야 할 자기 자신의 시선을 수업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재미도 재미려니와 독자에게 그대들은 어디쯤 서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러스 퍼거가 되어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은 모든 러스를 위한 소설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말 한 마디에서
이제는 세상 속으로 걸어가도 될 러스들,
어른이 되어가는 모든 이들이 읽어야 하는 철학 판타지!



성장을 한다는 것은 이전에 가졌던 자신의 부분 혹은 전체를 개선하거나 혹은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십대를 통과한 저자가 말하는 이십대에 이루어야 할 일들 중에 가장 중요한 과정을 저자는
<러스 퍼거>
를 통해 말하고 있다. 하울 필러 문제집에서 학생 각자에게 필요한 문제를 논술하는 것, 자유와 지성에 관한 자신만의 시야를 세우는 것, 각기 과정에서 이루어야 할 일들을 이루는 리누머, 필리버스, 유로파 과정 특히, 창조하는 자의 자리에 서기 위해 파괴해야 할 자신이 쌓아온 것들에 대한 자세, 모험을 통해 얻는 판단력과 결단력, 그리고 가치의 평가 등을 판타지 소설 속에 녹여 놓았다. 저자는 러스 퍼거를 통해 동시에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적 삶이 건조하고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지금 이때, 작가의 사유된 세계 속에서 엮어놓은 재미있는 아이템들을 통해서 즐겁게 읽되, 동시에 독자의 지성에 묻고 동시에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도록 독자의 지성을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러스 퍼거>
를 내려놓고,
<러스 퍼거>
에서 접한 수업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보자. 모두 특별한 수업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위더스인 벤이 가져다 주는 음식조차도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포니 라벨씨가 당부하는 마지막 말을 러스는 이미 오크 힐에 들어올 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겪고 난 뒤의 러스는 그 말을 그의 몸으로 마음으로 전체로 이해한다. 작가는 개념적 사실을 경험적 진실로 바꾸는 과정을 이십대에 해야 할 일 중에서 중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실 속의 우리는 오크 힐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러나 책으로라도 경험할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

그로부터 일곱 해가 더 지나고, 다시 아홉 밤이 지나리라.
빛과 어둠이 네 안에서 질서를 지으리니,
마음은 언제나 변하지 않고 강함이 유지되며,
너는 너를 알게 되며,
그리하여 너는 용기와 예지를 가지게 되며,
네 삶을 네 책임으로 이룰 수 있게 되리라.
나, 더글러스 데리모안이 기록하노라.
p. 210~211

 

최소한의 완성된 지성.
거기에서 계속적인 완성이 나타날 뿐이다.
p. 216

 

“달팽이는 자신의 시간만큼을 살고 껍질을남기고 사라져 버렸지. 그래서 그것이 허무하다고 생각하니? 아니란다. 그 껍질 속엔 달팽이가 산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있고,
달팽이는 영원의 흐름 속으로 돌아간 것 뿐이란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시간과 죽고 난 뒤의 시간이 엉켜드는 영원의 흐름 말이다. 달팽이 껍질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낄 수도 있고 인생의 허망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러스, 우리는 우리가 남길 시간의 흔적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건 바로 학교를 떠나면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 우리의 시간이 모두 지나간 뒤, 우리가 남기게 될 흔적인 껍질에는 무엇이 기록될지 말이다.”
p. 271

 

“때가 되면 우리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함께 살고 있더라도 타인을 존중하되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가 세운 체계로 성립시킨 세계를 바탕으로 매순간 인식하고 판단해서 그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것을 뜻한단다. (중략) 너도 어떤 일을 하게 되든 네가 세운 지성으로 인식하며 이루어 가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것이 판투라 아이도스가 우리 눈앞에 열려 우리를 유혹해도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 가장 큰 보물인 자기 자신이 된 사람을 우리가 가지게 된 걸 뜻한단다. 러스 퍼거, 앞으로 너는 자기 자신이 되길 바란다. 물론, 나는 믿는다. 네가 타인을 존중하고 너의 미래를 빛나는 것으로 열어갈 줄을.”
p. 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