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경쟁법이 마련된 지도 어언 35년이 흘렀다. 그 사이 공정거래법은 이론 면에서나 실무 차원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고, 명실 공히 미국과 유럽에 이어 경쟁법의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이나 부당한 공동행위, 불공정거래행위에 관하여 다수의 심결례와 판례가 축적되면서 우리 나름의 법리가 형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이 법질서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한 법해석론이 정립되어야 하며, 특히 동법상 다수의 불특정개념을 올바르게 해석․적용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법제와 심․판결례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불가피한 것이 현실이다.
  공정거래법의 해석에 있어서 비교법적 접근방법이 매우 중요하고, 특히 우리나라와 비슷한 법제를 갖고 있는 일본의 법리와 심․판결례는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정 공정거래법이 일본의 「사적독점의 금지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고, 그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보다 경제법, 독점금지법, 소비자법 등의 분야에서 일본이 훨씬 앞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199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경쟁법분야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경제법이 사법시험의 선택과목 중 하나로 편입되었고, 그 결과 경제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적극적인 법집행을 통하여 많은 쟁점에 대하여 학계와 법원에 심도 있는 논의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법집행이 미미한 일본의 예로는 우리나라의 복잡한 쟁점을 해결하기에 매우 미흡하였기 때문에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경쟁법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오래전부터 계획해왔던 비교경제법의 대상 중에서 먼저 독일경쟁법을 출간하기로 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공정거래법의 형성 및 발전과정에서 독일경쟁법의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독과점에 관하여 남용규제를 담고 있는 독일 경쟁제한방지법은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규제에 중요한 참고가 되었다. 둘째, 최근 국내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입법례는 유럽경쟁법인데, 유럽경쟁법의 내용이나 집행과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나라가 바로 독일이라는 점이다. 유럽경제공동체조약 제85조와 제86조로 출범하였던 유럽경쟁법이나 독일의 경쟁제한방지법 모두 1957년에 제정되었고, 유럽경쟁법의 법리나 판례 중 상당부분이 독일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유럽경쟁법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독일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셋째, 경쟁법이 추구하는 가치를 둘러싼 논쟁은 경쟁법 해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리고 특히 지난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경쟁법학계나 실무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온 효율성 내지 소비자후생 일변도의 경쟁법 해석은 필자의 경쟁법학에 관한 철학과는 거리가 있고, 경쟁의 자유와 다양성, 힘의 분산 등에 관하여 오랜 세월 고민해온 독일경쟁법의 결과물들은 향후 우리나라에서 논의의 균형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끝으로 필자의 개인적인 동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필자는 독일 중부 마인츠(Mainz)에 소재한 Johannes-Gutenberg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학위를 마치기까지 약 3년 반의 유학기간 동안 독일의 풍부한 학문적 인프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이 책이 그때 받은 도움에 대한 보답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독일경쟁법, 그 중에서도 경쟁제한방지법에 관한 입문서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이 책은 독일경쟁법의 역사와 체계, 기본원리를 비롯하여 무엇보다 경쟁제한방지법의 해석학을 다루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법학으로서의 경쟁법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하였다. 향후 꾸준히 보완하여 독일어에 대한 제약 없이 누구나 독일경쟁법을 충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생각이다.
  모든 면에서 미흡하기 짝이 없는 필자가 지금까지 학자로 살아가는 데에는 많은 분들의 은혜가 있었다. 무엇보다 경제법이라는 지극히 흥미로운 세계로 인도해주신 서울대학교 권오승 명예교수님은 필자가 인격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근본적인 고민과 변신을 해나가도록 끊임없는 교훈과 자극을 주셨다. 그리고 필자의 박사논문 지도교수였던 독일의 드레어(Meinrad Dreher) 교수님은 학문적 성실함과 개방적인 마인드, 그리고 법학자로서의 삶에 관한 한 지금까지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