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희망은 늘 괴로움의 언덕 너머에 있다

장애인 시인 황원교. 그는 군대에서 전역한 뒤 평범하게 회사생활을 하는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1989년 3월, 결혼을 1주일 앞두고 당한 교통사고로 그의 운명은 송두리째 뒤바뀌고 말았다. 그 사고로 인해 그는 머리를 제외하곤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전신마비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그는 사고로 입은 정신적 외상(트라우마)과 후유장애 및 합병증으로 오직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솔직히 단 5분 동안 한 손만이라도 쓸 수 있었다면, 아무런 미련 없이 자신의 목에 칼을 꽂았을 거란다. 오죽하면 가족들에게 차라리 자신을 안락사시켜 달라고 절규할 정도였으니…….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먹고 배설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고, 그마저도 타인의 손을 빌려야 할 수 있는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스스로를 ‘숨 쉬는 시체’라고 부르고, 자신의 삶도 ‘짐승의 삶’이라고 서슴없이 일컫곤 했다. 하지만 가족, 특히 어머니의 헌신적인 병구완과 보살핌 때문에 그는 겨우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차에 7여 년간 그를 곁에서 수발해 주시던 모친의 뜻하지 않은 사고에 그는 또 한 번 극심한 충격을 받아야 했다. 그즈음 그의 남동생이 ‘재생불량성빈혈’이라는 희소난치병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그의 모친이 별안간 현관에서 쓰러지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그와 남동생을 보살피는 어려운 처지 속에서 그만 모친께서 ‘뇌지주막하출혈’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병원에 실려 간 모친은 수술 후 인공호흡기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식물인간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의사는 가족에게 모친에 대한 의학적 사망판단을 내리고, 인공호흡기를 뗄 것을 권유했다. 장애인인 그가 그나마 이 세상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던 모친의 급작스런 별세는 그를 극심한 공황 상태로 몰아갔다.

그 순간 그에게 구원이 되어준 것은 바로 문학에의 열망. 그는 막다른 골목에서 극심한 공황 상태를 극복하고자 어렵사리 입에다 마우스 스틱을 물고 독수리처럼 컴퓨터 자판을 하나하나 찍어가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그 결과 그는 신춘문예 당선과 계간문학지 신인상 수상에 이어 두 권의 개인시집을 출간하면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었다. 이제 문학은 그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고단한 작업임과 동시에 그가 살아가는 보람이자 큰 기쁨이 되었다.
무엇보다 바로 그때, 그가 정신적 공황을 헤쳐 나가고 문학에의 갈망을 풀어갈 수 있게 도움을 준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다름 아닌 지금의 아내. 그가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모친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였다. 그때 아내는 청년 레지오단의 부회장으로서 수시로 그를 찾아와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주거나 다른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억척스런 봉사를 계속했다. 그러다 급기야 수녀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그를 위해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내린 것이다. 이후부터 아내는 그의 아버님과 더불어 그의 지팡이로서, 그의 바퀴로서 그의 곁을 굳건히 지켜주는 존재가 되어주었다.
지금 그는 연로하신 팔순의 아버님과 사랑하는 아내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여전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아마도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도움을 베풀어주신 분들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간직하는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황원교 시인의 산문집 <굼벵이의 노래>에는 이처럼 그의 개인사와 가족사, 그리고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겪게 된 에피소드들이 20여 년의 시차를 넘나들며 담담하게 펼쳐진다. 특히 그가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된 이후 수많은 좌절과 시련을 극복하고서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감동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이 산문집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그의 강렬한 생명에의 의지와 희구이다. 온갖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으며 현재에 이른 그의 삶의 여정도 그와 같은 생명에의 의지와 희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좌절과 시련을 극복하고 난 뒤, 곧 자기부정과 자기긍정을 거친 뒤 그가 이 세상을 향해 부르는 희망의 노래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이 산문집 군데군데에서 보이는 장애인의 인식과 처우 개선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도 분명 그와 같은 자기부정과 자기긍정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사실 하루아침에 뒤바뀐 운명의 삶을 살아야 했던 그만큼 장애인이 지닌 현실적 어려움과 고통의 문제를 제대로 절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기에 황원교 시인은 이 산문집이 자신의 개인사와 가족사에 대한 기록으로서 그치지 않고, 외려 그 자신과 같은 중증장애자와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이웃들에게, 그리고 삶이 고달픈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면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책머리에

우울한 날의 초상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안개의 추억/ 설화雪花/ 산을 바라보며/ 유리어항 속의 나날/ 아침의 단상短想/ 나만의 새해맞이/ 삭발유감削髮有感/ 화양동華陽洞을 그리며/ 굼벵이의 노래/ 군대 이야기/ 대진기행/ 빈센트와 함께 보낸 오후/ 동기라는 이름으로/ 삶은 도전의 연속이다

가족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아버지와 늙은 호박/ 어머니의 종이학/ 성탄절에서 성탄절까지/ 한밤중의 재봉틀 소리/ 봉숭아꽃 물들이기/ 수호천사들과의 한때/ 너 때문에 또 울었다/ 파란색 카네이션과 운동회/ 젖니에서 영구치, 그리고 틀니/ 설탕뽑기나 달고나나/ 햐! 고것들 눈에 밟히네/ 아버지, 차라리 제게 밥을 주지 마세요

내게도 아내가 있다
북촌리의 가을/ 야간고행夜間苦行/ 이를 닦으며/ 국밥 한 그릇의 행복/ 내복과 이불/ 맨드라미야, 맨드라미야/ 특별한 선물/ 손톱을 깎으며/ 아욱죽/ 건빵봉지 속의 별사탕/ 우리 나무/ 방울토마토

누워서 세상 보기
운동화에 대한 추억/ 좌종坐鐘/ 미물들에게서도 배울 게 많다/ 담배 이야기/ 애완견 시대/ 홀로 성당 짓기/ 물 한 방울은 피 한 방울/ 황사 대소동/ 뻐꾸기가 우는 까닭/ 욕서탑暑/ 두 여인/ 우담바라와 길상초가 피었답니다/ 어느 거목의 죽음을 보며/ 어떤 이웃/ 붉은 6월의 신화/ 결코 시시한 사람도 삶도 없다/ 줄기세포 소동을 보며/
<로마의 휴일>
은 여전히 계속된다/ 장애인들은 더 이상 아웃사이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