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잡변》으로 정도전 불교관의 문제점을 읽다

정도전, 조선왕조의 사상적 전환을 이루다
정도전은 조선왕조를 세운 일등공신으로서 역성혁명을 도모한 개혁주의자이자 한 시대를 주도했던 탁월한 정치가요 사상가였다. 계급 구조가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봉건 시대에 민본주의를 부르짖은 그의 혁명적 성향은 만대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선진적 사고이며 실천의지를 보여준 예다.
정도전의 민본사상은 고려 말에 유입되어 조선왕조 500여 년간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한 성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도전은 성리학이 전 조선왕조에서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정도전은 성리학 중심의 왕조 건설을 위해 이전까지 우리나라 사상의 중심 위치에 있던 불교를 과도하게 비판하는 우를 범한다. 이는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집필한 정도전 사상의 결집서 《불씨잡변佛氏雜辨》에 그대로 담겨 있다.

정도전의 불교 비판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다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에서 사회와 역사에 부응하는 승가교육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고상현 연구원은 《정도전의 불교 비판을 비판한다》를 통해 정도전의 불교 사상을 면밀히 살피고 문제점은 없는지 검토한다. 가능한 한 불교 경전에 근거하여 정도전의 불교 비판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또한 《심문心問》《천답天答》, 《심기리편心氣理篇》, 《불씨잡변佛氏雜辨》을 옮긴 부록을 통해 독자들이 정도전의 불교 사상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가 새 왕조의 기틀을 세운 정도전의 여러 사상 가운데 불교관에 초점을 맞춘 까닭은 그에 대한 사상적 평가의 지평을 넓히고자 했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조선왕조를 만들고 지속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이데올로그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 특히 불교 사상과 관련된 평가는 소략하다.
역사적 인물은 공과를 동시에 따져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찬양 일변도나 비판 일변도는 타당하지 않다. 정도전 또한 마찬가지다. 조선왕조 건설의 토대를 닦은 개혁주의자로서만이 아닌, 성리학의 안착을 위해 독선적이고 피상적인 불교 비판을 일삼은 정도전을 살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도전, 사상사적 대전환의 한가운데에 서다

불교, 국가 불교에서 민인民人의 불교로 변화하다
일반적으로 외래사상과 문화는 새롭게 유입되는 과정에서 전통사상과 심한 마찰을 겪는다. 이와 달리 불교는 별다른 마찰 없이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사상과 문화로 발전해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어떤 사상이든 받아들이는 불교의 폭넓은 교리 때문이다. 둘째, 불교가 사회와 시대적 상황에 맞춰 널리 교화하는 걸림 없는 종교라는 점 때문이다. 셋째, 불교를 강제적인 이식이나 주입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불교는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후 고려 말까지 1천여 년 동안 사상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중추적이고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고려 말부터 서서히 지펴진 배불排佛 논의가 조선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정책적으로 펼쳐지면서 불교는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백성들의 삶에 밀착하지 못하고 지배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던 불교는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반면 백성들의 삶과 함께 했던 불교는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그들과 함께하며 조선시대의 불교를 이끌어가게 되었다. 국가 중심의 불교에서 민인民人 중심의 불교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정도전의 사상, 이렇게 형성되었다
고려 말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복잡하면서도 격동적인 시기였다. 100여 년간에 걸친 무인들의 집권(1170~1270)과 몽고[元]의 침입, 그리고 원종元宗 12년(1271) 개경환도에서 자주적 개혁정치가 시작되는 공민왕 5년(1356)까지의 86년간의 몽고 간섭기, 공민왕의 등극과 자주권 회복 등으로 이어지는 복잡다단한 때였다.
이러한 시기에 안향은 원을 통해 성리학을 도입한다. 고려 초기 최승로崔承老와 고려 중기 이규보李奎報 등 고려 말 이전의 유학자들은 삼교정립의 원칙에 입각하여 실용적인 차원에서 불교를 비판하거나 이해하고 있었다. 성리학의 도입 이후에도 유불의 조화론, 소극적 벽불론, 적극적 벽불론이 병존했다. 하지만 점점 불교경전을 읽는 것조차 터부시하는 등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적극적으로 불교를 배척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경향은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심화되어갔다. 정도전은 그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도전 불교를 비판하고, 저자 정도전을 비판하다

정도전의 불교 비판 논리
정도전의 불교 비판은 《삼봉집》 전14권 가운데 권10의 《심기리편心氣理篇》, 《심문心問》？《천답天答》과 권9의 《불씨잡변》에 담겨 있다.
《심문》《천답》은 우왕 원년(1375), 그의 나이 34세에 지었다. 형식은 간단한 운문체로 되어 있다. 내용은 불교의 인과응보설을 부인하고 인간의 요수夭壽와 길흉？화복이 하늘과 인간의 상관관계의 운수[氣數]임을 천명하려 했다.
《심기리편》은 태조 3년(1394), 그의 나이 53세에 저술한 것으로 〈심난기心難氣〉·〈기난심氣難心〉·〈이유심기理諭心氣〉의 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씨잡변》은 태조 7년(1398) 8월에 이방원이 일으킨 무인정사戊寅靖社에 의해 살해되기 직전인 윤5월 16일에 완성한 것으로 그의 벽불사상을 집대성한 것이다. 정도전은 《불씨잡변》에서 불교 교리를 윤회, 인과, 심성, 작용시성作用是性, 심적心迹, 매어도기昧於道器, 훼기인륜毁棄人倫, 자비慈悲, 진가, 지옥, 화복, 걸식, 선교, 유석동이儒釋同異, 벽이단闢異端 등 15항목으로 구분하여 비판한다. 또한 전대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근거로 4항목을 들어 불교에 추가적인 비판을 가한다.
저자는 이 저술들에 담긴 정도전의 불교 비판 논리를 심성론, 윤회인과론, 사회윤리적인 면, 신앙적인 면, 역사적인 면으로 나누어 살피고, 각각의 비판에 담긴 문제점을 불교 경전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먼저 심성설. 정도전은 마음과 본성을 분리해서 보는 성리학의 관점에서 마음과 본성을 동일하게 보는 불교의 심성론을 비판한다.
둘째, 윤회인과론. 정도전은 윤회설을 불교의 세계관 혹은 인생관의 핵심이자 다른 불교 교리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 보고 많은 양을 할애하여 비판한다. 세상의 모든 일과 업이 인과관계로 전개된다는 불교의 인과설 또한 성리학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정도전은 사물의 탄생이나 운명에 있어서 보응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어떤 사람의 운명이나 화복, 나아가 만물의 현상 전체는 천도에 따라 음양오행의 작용으로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일 뿐, 전생의 과업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사회윤리적인 면. 정도전은 인륜을 헐고 깨뜨리는 점, 실체조차 불분명한 지옥설을 퍼뜨리는 점, 승려들이 걸식을 말하면서 오히려 정반대의 생활을 하는 점 등의 사회적 폐단을 저지른다며 비판한다.
넷째, 신앙적인 면. 정도전은 불교 사리신앙의 비유용성과 비실용성에도 강한 어조로 비판을 가한다.

정도전의 불교 비판, 과연 타당한가
그러나 저자는 불교 경전을 면밀히 살피면 정도전의 불교 비판이 피상적이고 소략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불교 교리는 시대에 따라 근본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밀교 등으로 발전되어왔다. 이들 경전에 흐르는 기본적인 사상은 같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는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이를 서로 모순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같은 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 각각의 교리를 별개로 보거나 또는 불교의 교설에 모순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쉽다. 저자는 이 점에 유의하면서 정도전의 불교관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의 불교 비판에 비판을 가한다.
첫째, 심성설. 정도전의 불교 심성론 비판은 주로 논리의 비일관성 또는 논리의 비약, 개념의 혼란 등 논리 전개 방식에 집중된다. 그러나 정도전은 불교의 심성론을 성리학적 입장에서만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판의 예각을 세운 것이었다. 본질적인 비판이 아니라 이단을 배척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정당화하려는 비난이었던 것이다.
둘째, 윤회인과설. 불교의 윤회인과설은 천지 만물의 존재와 변화 그리고 생멸의 현상에 기초한 원리다. 저자는 정도전이 이러한 불교 윤회설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거부한 듯하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불교의 가르침 자체가 아니라 당대 사회와 백성들에게 미치는 커다란 영향력이 중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 사회윤리적인 면. 불교의 윤리관은 출가자와 재가자를 나누어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정도전은 오직 출가자의 경우만을 들어 불교의 윤리관을 비판한다.
넷째, 신앙적인 면. 정도전이 비판한 사리신앙의 유행은 불교의 전통적인 사리신앙에 당대 두 고승의 입적과 사리 출현 등이 더해진 결과다. 그러나 정도전은 이를 살피지 않고 현실적, 실용적인 이유를 들어 비판만 하고 있다.

정도전 개혁의 그림자

정도전, 불교 중심 사회를 유교 중심 사회로 바꾸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이어지는 시기는 국내외적으로 왕조 교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대격동기였다. 정도전은 그 한가운데에서 조선왕조의 새 기틀을 마련하고 통치 이념과 행정 체계를 정립하고 국가 운영의 기초를 닦은 정치가였다.
또한 주자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이단 배척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성리학자였다. 당시 일부 불교계는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사회적 폐단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도전은 이를 빌미로 불교를 비판하고자《불씨잡변》을 저술했다. 정도전의 강력한 불교 비판은 사상사적으로 불교 중심에서 유교 중심의 사회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도전의 불교 비판, ‘비속하고 자질구레할 뿐’이다
고려 말 원나라 간섭기에 수입된 성리학은 유학자들의 불교관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정도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도전은 이 성리학을 자신의 개혁사상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리고 성리학의 안착을 위해 사상투쟁의 일환으로 불교에 가차 없는 비판을 가했다.
하지만 정도전은 이단 배척이라는 사명감에 지나치게 경도된 상태에서 불교를 바라봤다. 불교를 불교 자체가 아닌 성리학적 세계관으로만 살폈다. 제대로 된 불교 교리 이해는 삭제된 상태였다. 그의 불교 비판이 ‘비속하고 자질구레할 뿐’이라고 평가받게 된 이유다.

책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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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불교, 국가 불교에서 민인의 불교로

2장 정도전의 사상 형성의 기반
고려 말 조선 초의 시대적 동향
고려시대 유자들의 불교관
성리학 도입 이전 | 성리학의 도입과 변화 | 성리학의 도입 이후

3장 정도전의 불교 비판의 논리 전개
정도전의 불교 비판의 체계와 동기
《불씨잡변》의 구성
불교 비판의 내용
심성론 | 윤회인과론 | 사회윤리적인 면 | 신앙적인 면
정도전의 불교 비판이 미친 영향

4장 불교 비판에 대한 비판
심성설
윤회인과설
사회윤리적인 면
신앙적인 면
불교 비판에 대한 호법론의 대두

5장 성리학자들의 불교 비판, ‘비속하고 자질구레할 뿐’이다

부록

심문心問·천답天答
서|심문|천답

심기리편心氣理篇
서|심心이 기氣를 비난함|기가 심을 비난함|이가 심과 기를 타이름

불씨잡변佛氏雜辨
불씨잡변설 서|불씨 윤회의 변|불씨 인과의 변|불씨 심성의 변|불씨의 작용이 성이라는 변|불씨 심적의 변|불씨가 도와 기에 어두운 데 관한 변|불씨가 인륜을 버림에 관한 변|불씨 자비의 변|불씨 진가의 변|불씨 지옥의 변|불씨 화복의 변|불씨 걸식의 변|불씨 선교의 변|유가와 불가의 같고 다른 변|불법이 중국에 들어옴|불씨를 섬겨 화를 얻음|천도를 버리고 불과를 말함|부처 섬기기를 극진히 할수록 연대는 더욱 단축되었다|이단을 물리치는 데 관한 변|지|발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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