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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공황장애·불안장애·우울증·조울병·수면장애 등의 정신질환 환자들을 진료·연구하고, 세계 최초로 특정 유전자가 공황장애 발병과 치료반응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규명한 한국의 대표적 정신과의사. 여러 언론매체와 정신의학계로부터 최고의 명의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를 수료한 후 전임의 과정까지 마쳤으며, 성균관대학교 삼성서울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주임교수와 과장을 지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 정신건강의학과 방문교수 및 연구원을 지냈으며,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한국정신신체의학회장·대한수면의학회 이사장·대한불안의학회 부이사장과 공황·범불안장애 연구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유범희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운영하면서 많은 아픈 마음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정신과의사의 필수 덕목은 열린 귀와 따뜻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차분하고 따뜻한 대화와 상담을 통해, 피상담자가 자신의 기억서랍을 열어 스스로 마음을 치유해가기를 원하고 그 과정을 돕고 싶어 한다. 그가 정신분석학에 근거한 심리치료를, 약물치료와 같은 생물학적 치료보다 우선시하는 이유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GSK학술상, 한국정신신체의학회 정신신체의학 학술상, 대한불안의학회 보령학술상, 대한수면의학회 학술상,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우수논문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다. <조선일보>에서 「유범희의 마음읽기」 칼럼을 연재하며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기도 했다. 옮긴 책으로는 『정신병리학의 기초』 『성·꿈·정신분석』 『마인드 머신』 등이 있다.

우리는 종종 어이없는 행동이나 말실수를 무심코 저지르곤 한다. 아무리 꼼꼼하고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일까? 그럴 땐 대개 단순히 부주의했다거나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 그랬노라 변명을 한다. 하지만 정말 그게 다일까.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우리 마음속에 ‘무의식(unconscious)’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했다. 무의식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마음속의 또 다른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의식에서 받아들이기에 너무 불쾌하거나 부담스러워서, 우리 마음속 자동 검열 기능을 통해 잘려나가 버린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묻혀 있다.
매일매일 우리는 많은 생각과 감정을 무의식 속에 묻는 작업을 하면서 살아간다. 사실 그렇게 깊숙이 감춰져 있다 보니 대개 무의식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낼 때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무의식은 종종 의식의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서 우리의 행동에 아주 큰 영향력을 행사하곤 한다. 특히 무의식속에 묻혀 있는 내용물과 관련된 감정이 너무 격렬하게 일어나거나, 아니면 외부에서 무의식을 자극하는 어떤 계기가 발생했을 때 더욱더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전쟁 중 대중 연설을 할 때면 부정적 대상을 묘사하는 형용사로 ‘nasty’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고 한다. 그런데 처칠은 일부러 이 단어를 ‘나치’라는 말과 비슷하게 발음했다. 대중들에게 나치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무의식중에 강화하려는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 <무심코 저지르는 내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중에서
어느 날 경석 씨는 또 박 부장에게 불려가 심하게 야단을 맞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박 부장의 얼굴을 주먹으로 세게 후려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일어났다. 간신히 그 충동을 억누르기는 했으나 스스로도 너무 당황스러웠다. 바로 그때부터 경석 씨의 손 떨림 증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증상은 계속 악화되어 갔다. 경석 씨가 겪는 이런 증상을 정신분석적 관점으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경석 씨가 박 부장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싶었던 그 순간은 이드(원본능)의 하나인 공격성이 너무 커져 이미 통제가 어려워진 상태로 볼 수 있다. 만약 그때 이드 속의 강렬한 공격성이 민낯으로 바깥세상에 드러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자아는 비상수단으로 오른손의 떨림 증상과 마비 증상을 일으켰던 것이다. 손을 마비시켜서라도 무의식 속의 강렬한 공격성이 밖으로 드러나는 걸 막으려 했던 셈이다. 이렇게 이드와 자아, 초자아는 늘 견제와 타협을 반복하면서 정신세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 애쓴다.
- <모든 것은 내 마음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중에서
원시적 방어기제는 자아가 발달하는 비교적 초기 단계부터 만들어지는 것으로, 부정(否定)과 투사(投射)가 대표적이다. ‘부정’ 이란 어떤 사건이 지닌 의미를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부인하려는 것으로, 그 목적은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회피해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불치병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이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병이 다 나으면 크루즈 세계여행을 떠날 거라고 미리 계획을 세우며 즐거워하는 경우가 그렇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끔찍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불치병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버리는 것이다. 또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준비를 제대로 못한 사람이 시험 전날 밤 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노는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시험 준비를 제대로 못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정하고 술을 마시며 시험 자체를 잠시 망각해 버리는 것이다.
때론 개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 차원에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정할 때도 있다. 그럴 땐 사회 전체가 광기에 사로잡혀 자칫 파국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과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의 예가 가장 대표적이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엄청난 전쟁 배상금으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했다. 독일 국민들의 경제적 곤궁이 지속되면서 사회적 불안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의 책임과 현실의 고단함을 빨리 잊고 싶어 했고 과거 강성했던 게르만 제국의 부활을 꿈꿨다. 물론 히틀러 같은 천재적 정치 선동가의 부추김이 있긴 했지만, 독일 국민들의 마음속에 고통스러운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부정 심리가 만연한 탓도 컸다.
- <스트레스와 불안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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