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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 발가락 (2020 여름호)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2,700원
스파이더맨 지퍼
김점선, 정은선
9,000원
시간 가게
이나영,윤정주
12,150원
치킨이 온다 치킨 쿠폰 김경숙 9,000원
국단어 완전 정복 초등 국어 4-2 전위성 16,200원
초등학생들에게 소설 읽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한국대표소설 1 나도향 외 13,500원
초등학생들에게 소설읽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한국대표소설 3 현진건, 계용묵, 김동인 외 13,500원
블루버드 전래동화 6 열두 띠 이야기 한진아 4,050원
초등학생들에게 소설읽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한국대표소설 3 13,500원 (10%↓+5%P)
초등학생들에게 소설 읽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한국대표소설 2 13,500원 (10%↓+5%P)
초등학생들에게 소설 읽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한국대표소설 1 13,500원 (10%↓+5%P)
염상섭
(1897.00.00)1897년 서울에서 출생아여 1917년 게이오 대학 문과에 입학하였다. 재학중에는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기도 한다. 스스로 에밀 졸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그의 본격 작품활동은 1920년 동인의 한 사람으로서한국 최초의 자연주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개벽>에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만세전> <삼대> <두파산> <젊은 세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초기의 자연주의에서 풀발하여 사실주의 경향으로 시종일관한 것으로 특징 지을 수 있다. 그의 사실주의적 작품경향은 본격적인 전형 인물의 설정과 충분한 객관성을 띤 내용에서 분명해지는데 특히 <삼대>에서 침된 이럴이스트의 경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유정
(1908.01.11)1908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고독과 빈곤 속에서 우울하게 자랐다. 고향을 떠나 열두 살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그만두었다. 1930년 늑막염을 앓기 시작한 이래 평생을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다. 유명한 명창이자 기생인 박녹주를 짝사랑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실의에 빠진 김유정은 고향인 춘천 실레 마을에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워 불우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1935년 이무영, 이상, 정지용 등이 속한 순수문예 단체인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고, 같은 해 , <조선일보>에 , <소낙비>, , <중외일보>에 , <노다지>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짧은 문단 생활 중에도 김유정은 병과 가난과 싸우면서 30여 편의 단편을 남기고, 1937년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로 누나 집에서 결핵과 늑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으로는 <금따는 콩밭>, <봄봄><따라지>, <두꺼비>, <동백꽃>, <땡볕> 등이 있다.
김동인
본관은 전주이며, 호는 금동, 금동인, 춘사 등을 사용했다.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인 《창조》를 발간하고,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귀국 후 출판법 위반 혐의로 일제에 체포되었고 사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목숨」(1921), 「배따라기」(1921), 「감자」(1925), 「광염 소나타」(1929) 등의 단편소설을 통해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크게 기여했다. 춘원 이광수의 계몽적인 경향에 맞서 사실주의적 수법을 사용했으며, 1925년 무렵부터 유행한 신경향파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하고 순수문학운동을 벌였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학예부장으로 입사했으나 얼마 후 사임하였다. 우익적 성향의 문인단체 결성을 주도하고, 제헌국회의 부의장을 지내는 등 해방 이후에도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쳤으나 중풍으로 쓰러져 1951년 초 하왕십리의 자택에서 병사했다.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동인문학상’이 1955년 제정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현진건
(1900.00.00)1900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보를 마치고 중국 상해 호강江대학교에서 독일어를 공부하다 3·1 운동을 맞아 귀국하였다. 《개벽》 《동명》 《시대일보》 등을 거치며 세계 문학 사조와 문화론에 대한 견문을 넓혔다. 단편 소설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등을 통해 현실 문제를 세련된 형식과 언어 감각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하며 당대 최고의 기교주의 작가로 꼽혔다. 단편 소설로는 일제하 민족 문제를 포괄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고민에서 점차 장편 소설로 창작 방향을 전환하였다. 그 결과 작가 활동 후반에 이르러 단편 소설의 담박한 문장 구성과 장편 소설의 역사적 시간관이 결합된 장편 소설 『무영탑』을 썼다. 단편 소설의 구성과 언어에 있어 뛰어난 감각을 가졌으면서도 장편 소설의 현실 지향성을 작품 세계 속에 포괄하기 위해 노력한 작가다. 1930년을 전후하여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언론인으로 활약한 바 있으며, 이 시기 ‘일장기 말살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하였다. 1943년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나도향
호는 도향·소정지옹(笑亭之翁)·은하(隱荷), 필명은 빈(彬). 처음에는 감상과 낭만을 주조로 했으나, 차츰 당대 현실문제를 파헤친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을 썼다. 본명은 경손(慶孫). 아버지 성연(聖淵)과 어머니 김성녀(金姓女)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손이라는 이름은 할아버지 병규(炳奎)가 41세에 얻은 아들에게서 회갑에 손자를 얻자 '경사스런 손자'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1914년 기독교청년회관 안에 있던 공옥보통학교를 거쳐 1918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1년 〈계명〉 편집일을 했고, 1922년 홍사용·현진건·이상화·박영희 등과 함께 〈백조〉 동인으로 참여했다. 이듬해 경북 안동에서 1년간 보통학교 교사로 일했다.
최서해
(1901.01.21)본명은 학송이고 서해는 호이다. 1901년 1월 21일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났으며 1911년 성진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가난으로 5학년 때 중퇴하고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하였다. 1917년 간도(間島)로 이주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방랑하다가 1923년 귀국하였다. 1918년 3월 《학지광》에 시 [우후정원의 월광], [추교의 모색], [반도청년에게]를 발표하여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고국]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1924년 1월 28일부터 2월 4일까지 동아일보에 [토혈]을 연재해 소설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1925년 극도로 빈궁했던 간도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탈출기]를 발표해 당시 문단에 충격을 주었다. 특히 [탈출기]는 살길을 찾아 간도로 이주한 가난한 부부와 노모, 이 세 식구의 눈물겨운 참상을 박진감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신경향파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은 모두가 빈곤의 참상과 체험을 토대로 묘사한 것이어서 그 간결하고 직선적인 문체에 힘입어 한층 더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예술적인 형상화가 미흡했던 탓으로 초기의 인기를 지속하지 못하고 1932년 7월 지병인 위문협착증으로 사망한다.
전영택
평양 사창(社倉)골에서 개화파 지식인 전석영과 강순애의 4남 4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대성중학에 입학해 도산 안창호의 영향을 받았으나 가정 형편으로 인해 3학년 때 중퇴했다. 이후 작은형 선택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접했고, 한국 최초의 감리교 목사이자 평양 남산현 교회의 설립자인 김창식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918년, 가우처(J. F. Goucher) 목사가 선교를 위해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 문학부를 마치고, 신학부에 들어갔다. 일본 유학 시절 김동인, 주요한, 김환, 최승만과 교우하게 되어, 이들과 함께 1919년 2월에 최초의 종합 문예 동인지 ≪창조≫의 창간에 참여했다. ≪창조≫ 창간호에 단편 <혜선(惠善)의 사(死)>를 발표해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천치? 천재?>(1919), <운명>(1919), <독약을 마시는 여인>(1921), <화수분>(1925), <백련과 홍련>(1925), <후회>(1929) 등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했다.
전영택은 1923년 아오야마 학원 신학부를 졸업하고 서울 감리교 신학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1927년에는 아현교회 목사로 취임한 이후 목회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흥사단과 연계를 맺고 있는 계몽적 독립운동 단체인 수양동우회에서 활동하는 등 민족운동에도 깊이 개입했다. 하지만 1937년 일제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81명의 지식인을 구속한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후 현제명·홍난파 등과 친일 단체인 ‘대동민우회’에 가입했다. 1944년에는 평양 신리교회 재직 중 설교 사건으로 한때 구금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조선민주당 문교부장, 문교부 편수관, 국립맹아학교 교장, 중앙신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전쟁 중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한국복음신문≫ 주간을 지내다 1953년 귀국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여성 작가 김명순에 대한 독특한 기록 소설인 <김탄실과 그 아들>(1955)에 잘 나타나 있다. 귀국 후 기독교서회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전개해 <외로움>(1955), <집>(1957), <해바라기>(1959), <크리스마스 전야의 풍경>(1960) 등을 발표했다. 1961년에는 한국문인협회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근대문학 초기의 작가적 위상이 복원되었으며, 서울시 문화상(1961)과 대한민국 문화포상 대통령장(1963)을 수상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창작집 ≪생명의 봄≫(1926)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1958)·≪전영택 창작선집≫(1965)이 있고, 논설집으로 ≪생명(生命)의 개조(改造)≫(1926), 전기로≪유관순전≫(1953), 수필집으로는 ≪의(義)의 태양(太陽)≫(1955) 등이 있다.
주요섭
(1902.00.00)1902∼1972. 주요섭은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21년에 등단해 우리 문단의 주요 작가로 활동했다. 그는 한국 문단에서는 아주 드물게,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작가다. 17세에 도일, 청산학원에 다니는 동안 일본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등단작 <깨어진 항아리>를 비롯해 1925년까지 발표한 <추운 밤>, <기적>, <인력거꾼>, <살인> 등이 신경향파적인 색채를 띨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경향파’의 대표적인 작가로 주요섭이 거론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의 학업은 중국 상해 호강대학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학 석사 과정 수료로 이어졌고 1934년부터 1943년까지 북경 보인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다. 작품의 무대는 당연히 한국과 일본, 중국, 미국 등이 망라되어 보통 넓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광복 이후의 활동은 범문단적이다. 피난지 부산에서 발행한 ≪코리아 타임스≫의 주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사무총장과 위원장, 한국문학번역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는 동안 그는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에는 신경을 많이 썼지만 자기 작품의 심화와 확대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해방 이후에는 대학 강단에 섬으로써 작품 쓰기를 소홀히 한 탓인지 일제 강점기 때 쓴 주옥편까지도 문학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린 느낌이 든다. 하지만 주요섭은 1950∼1960년대에 아주 활발히 활동했다. 1935년 작 <사랑 손님과 어머니>가 그에게 준 대중적인 인지도가 1950∼1960년대의 활동에 대한 탐색을 가로막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세 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중편소설은 평가가 전혀 되고 있지 않다. 주요섭론은 이제부터 새로이 쓰여야 하는데 이 책은 첫 단추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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