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필자는 어느 회의석상에서 우리나라 유명 기업의 임원 한분과 우연히 자리를 같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임원은 회사 경영과 관련한 일화 하나를 저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몇 년 전 중장기 전략계획을 수립하던 그는 전략계획을 뒷받침할 새로운 사업기회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말단직원에서부터 수십 년간의 회사생활 동안 오랜 경험에 의해 축적된 나름대로의 경영 육감으로 그 사업의 성공가능성을 직감한 그 임원은 재무부서에게 그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분석을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재무부서로부터 올라온 분석결과는 실로 참담했습니다. 엄청난 총사업비에 비해 편익/비용 비율, 순현재가치, 내부수익률을 포함한 경제성평가지표 어느 하나 좋은 결과는 없고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우며 워낙 불확실성이 높고 위험요인이 많은 사업이라 민감도 분석을 통한 대응전략을 마련하기도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타당성 분석을 근거로 밀려드는 엄청난 내부반발에 직면한 그 임원은 하는 수 없이 그 사업의 추진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그 사업이 대박이 터져 엄청난 파급효과를 창출하게 되었으며 그제야 그 사업에 뛰어들려다보니 이미 진입장벽이 구축되어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때 왜 좀더 적극적으로 그 사업을 밀어부치지 못했는지에 대한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그 임원은 필자에게 꼭 이 말을 학생들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숫자를 믿지 마라.”
DEVIL COMPANY WINS

과거 기업의 성공을 가늠했던 매출, 자본 등의 숫자나, 수요 예측을 위한 통계 분석 기법이 꼭 정답만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소셜미디어와 클라우드 컴퓨팅 등의 최신 IT 기술은 기업의 상품기획, 마케팅, 유통 시스템에 큰 변화를 야기했고,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공급과 수요의 관계가 과거보다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가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발달하고, 재화가 풍족해 지면서 고객들 역시 가격만으로 물건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제품이나 서비스 소비에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는 경영인과 학자들에게 기업 운영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급박하게 변화하는 시대인 만큼 미래 기업의 모습을 예측하는 데 이론적인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은 상식을 깨는 기업들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책입니다.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학생처럼 통계에서 예측된 수요로 생산량을 가늠하고, 예측된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는 착한 기업, 좋은 상품을 착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착한 마케팅 전략이 아닌 이색적인 방법으로 고객을 끌어당기는 매력 넘치는 나쁜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미래의 기업 모습에 대한 힌트를 얻어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다가오는 21세기의 새로운 경제를 창조해야 하는 전환기에 살고 있습니다. EU에서 영국이 탈퇴하고,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많은 것이 변했으며, 중국기업의 비약적인 성장은 세계의 기업 경영 생태계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 스마트폰 등 통신기술의 발달은 고객들이 해외 상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빠른 정보 습득으로 똑똑해진 고객들은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 데 더욱더 새로운
     나쁜 기업이 되라
가치를 찾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 역시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변화될 미래의 기업 경영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 우리에게 미래의 기업경영 형태는 닫힌 기업에서 열린 기업으로, 경영진 중심의 기업에서 고객과 임직원 모두의 기업으로, 상식의 틀을 깨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으로 인식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존의 숫자, 효율성을 따지는 전통적인 경영전략보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역발상의 패러독스 전략입니다. 이제 기업들에게 발상의 전환에 대한 시도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따라서 21세기를 주도할 기업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역발상의 패러독스 전략을 고민해야 합니다.
“만약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사업의 첫 삽을 뜨던 40여 년 전 타당성분석이나 수요예측시스템에 근거하여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했다면 아마 지금의 두 회사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어느 명인의 얘기는 ‘내가 원하는 수요량이 바로 미래의 수요량이다’라는 자신감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경영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패러독스 경영전략에 대한 필자의 평소 지론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을 갖게 해줍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과연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나쁜 기업이 되라고 기업들을 선동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
DEVIL COMPANY WINS
니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최신 기업의 역발상 패러독스 전략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치명적인 매력의 비밀을 알아내고, 그 동안 맹신했던 숫자의 허점을 밝혀 지금 이 시간에도 치열한 경영 현장에서 밤낮없이 고민하고 있는 경영자들과 경영학을 공부하는 예비경영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끔 구성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착한 기업, 저렴한 가격 그리고 통계와 숫자가 아닌 개성과 매력이 넘치는 나쁜 기업의 참뜻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얻으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16년, 여름
연구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