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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8972882208
82쪽
148 x 210 (㎜)
지금 이책은
- 판매지수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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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은
저자 소개
책 속에서
그녀의 옛 동창과 다시 만난 것은 그 며칠 뒤다. 이번에는 그녀도 함께였다. 두문불출하던 그녀가 옛 스승의 저녁 초대에 떠나는 인사 겸 갔더니 거기 그녀의 옛 동창도 와 있었다.
그날 저녁의 일을 일일이 얘기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녀의 가발이 벗겨지던 얘기를 하고 싶다. 그 순간의 모험과도 같은 이상한 체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상에 나온 음식을 고기가 들지 않은 것으로 골라 먹으며 좌석 분위기에 맞추어가고 있었다. 대화 도중 스승은 그녀의 머리에 대해서 얘기했다. 머리가 얼굴을 너무 가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단지 스타일일 뿐이에요.”
내가 말했다.
“이마를 너무 내리덮었어, 이마를 좀 올려봐라 이렇게. 갑갑하지 않나.”
스승은 옆자리에 앉은 그녀의 머리를 걷어올리려 했다.
아아아아아,
그녀는 유머러스하게 스승의 손을 피해 자신의 머리를 가만 놔두라는 몸짓을 지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나는 웃었다. 스승이 그녀의 이마에 드린 머리를 걷어올리려고 손을 가까이 가져갈 때 그녀에게서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마음이 급하여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든 달려가서 막아줄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아주 잘 막아내었던 것이다.
여러 소식들이 오갔다. 몇 사람이 노래도 불렀다. 옛 노래에서 그 시절의 정서가 묻어났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열어놓은 창으로 비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비에서 깻묵 냄새가 풍겼다. 방안의 전깃불은 빗속에서 외등처럼 보였다.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본 뒤뜰에 비가 무섭게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술이 거나해진 스승은 손을 올려 옆에 앉은 순미의 이마에 드린 머리를 거두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말릴 틈도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섰으나 그녀의 가발이 벗겨져 방바닥에 떨어진 뒤였다. 좌석은 뒤늦게 조용해졌다. 한순간이 흘렀다.
가발을 쓰기 위해 속의 머리를 꽁꽁 동여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터진 럭비공을 꿰맨 것 같았다. 그녀는 얼굴의 흉터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한동안 망설이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속눈썹을 내리깔고, 그 속눈썹 끝에 눈물이 이슬처럼 맺히는 것을 나는 숨죽여 바라보았다.
그러나 불빛 탓일 뿐 눈에 맺힌 이슬은 아니라는 것을 곧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떨어진 가발을 줍거나 숨을 곳이 없어 몸을 움츠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가릴 곳도, 가리울 수도 없었다. 오히려 일어선 채로 있는 내가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당신네들, 당신네들 그 남자가 고함치던 소리가 귓가를 쟁쟁 울렸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떨어져 있는 가발을 주웠다. 그 몸짓은 슬로우 비디오의 영상처럼 매우 느렸다. 그녀는 가발을 주워가지고 나가더니 조금 후 다시 가발을 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조용히 앉았다.
순미가 자신을 어떻게 수습하였는지 모른다. 나는 집에 돌아온 후 밤새도록 그녀가 가발을 줍던 장면을 비디오 테이프를 돌려보듯 다시 되돌려 보았다. 고통의 물결이 밀려왔다 지나가고 다시 또 밀려들었다. 새벽녘이 되었을 때 피로감과 공허감에 나는 살아갈 기력을 잃는 듯했다. 무엇이 이토록 회복될 길 없는 수치스러운 상처로 되돌아오는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여러 사람 앞, 더구나 엣 동창까지 있는 자리여서라는 그런 지적은 극히 사소해 보였다. 그것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 그녀의 삶을 지배해왔고 내 삶을 지배해왔으며 모든 사람들의 삶을 지배해온 어떤 것에 대한 무궁한 아픔이었다. 무엇을 숨기려 했는가, 무엇을 두려워한 걸까. 무엇 때문에 발광을 하다가도 삶에게 시치미를 떼는 것일까.
무한한 가능성을 끌어뵈어 주는 다른 어떤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날 저녁의 일을 일일이 얘기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녀의 가발이 벗겨지던 얘기를 하고 싶다. 그 순간의 모험과도 같은 이상한 체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상에 나온 음식을 고기가 들지 않은 것으로 골라 먹으며 좌석 분위기에 맞추어가고 있었다. 대화 도중 스승은 그녀의 머리에 대해서 얘기했다. 머리가 얼굴을 너무 가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단지 스타일일 뿐이에요.”
내가 말했다.
“이마를 너무 내리덮었어, 이마를 좀 올려봐라 이렇게. 갑갑하지 않나.”
스승은 옆자리에 앉은 그녀의 머리를 걷어올리려 했다.
아아아아아,
그녀는 유머러스하게 스승의 손을 피해 자신의 머리를 가만 놔두라는 몸짓을 지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나는 웃었다. 스승이 그녀의 이마에 드린 머리를 걷어올리려고 손을 가까이 가져갈 때 그녀에게서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마음이 급하여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든 달려가서 막아줄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아주 잘 막아내었던 것이다.
여러 소식들이 오갔다. 몇 사람이 노래도 불렀다. 옛 노래에서 그 시절의 정서가 묻어났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열어놓은 창으로 비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비에서 깻묵 냄새가 풍겼다. 방안의 전깃불은 빗속에서 외등처럼 보였다.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본 뒤뜰에 비가 무섭게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술이 거나해진 스승은 손을 올려 옆에 앉은 순미의 이마에 드린 머리를 거두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말릴 틈도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섰으나 그녀의 가발이 벗겨져 방바닥에 떨어진 뒤였다. 좌석은 뒤늦게 조용해졌다. 한순간이 흘렀다.
가발을 쓰기 위해 속의 머리를 꽁꽁 동여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터진 럭비공을 꿰맨 것 같았다. 그녀는 얼굴의 흉터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한동안 망설이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속눈썹을 내리깔고, 그 속눈썹 끝에 눈물이 이슬처럼 맺히는 것을 나는 숨죽여 바라보았다.
그러나 불빛 탓일 뿐 눈에 맺힌 이슬은 아니라는 것을 곧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떨어진 가발을 줍거나 숨을 곳이 없어 몸을 움츠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가릴 곳도, 가리울 수도 없었다. 오히려 일어선 채로 있는 내가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당신네들, 당신네들 그 남자가 고함치던 소리가 귓가를 쟁쟁 울렸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떨어져 있는 가발을 주웠다. 그 몸짓은 슬로우 비디오의 영상처럼 매우 느렸다. 그녀는 가발을 주워가지고 나가더니 조금 후 다시 가발을 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조용히 앉았다.
순미가 자신을 어떻게 수습하였는지 모른다. 나는 집에 돌아온 후 밤새도록 그녀가 가발을 줍던 장면을 비디오 테이프를 돌려보듯 다시 되돌려 보았다. 고통의 물결이 밀려왔다 지나가고 다시 또 밀려들었다. 새벽녘이 되었을 때 피로감과 공허감에 나는 살아갈 기력을 잃는 듯했다. 무엇이 이토록 회복될 길 없는 수치스러운 상처로 되돌아오는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여러 사람 앞, 더구나 엣 동창까지 있는 자리여서라는 그런 지적은 극히 사소해 보였다. 그것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 그녀의 삶을 지배해왔고 내 삶을 지배해왔으며 모든 사람들의 삶을 지배해온 어떤 것에 대한 무궁한 아픔이었다. 무엇을 숨기려 했는가, 무엇을 두려워한 걸까. 무엇 때문에 발광을 하다가도 삶에게 시치미를 떼는 것일까.
무한한 가능성을 끌어뵈어 주는 다른 어떤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걸까.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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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미친 사랑의 노래
작품 해설
작가의 말
미친 사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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