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헐리게 될 낡디 낡은 열 평짜리 아파트로, 죽은 김성만의 여동생 지연이 박선생을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지연은 박선생에게 오빠가 진 사백 만원의 빚을 탕감하는 조건으로 고인의 캠코더와 컴퓨터를 넘겨 준다. 컴퓨터 안에는 박선생 앞으로 남겨진 비망록 파일이 담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김성만의 백일 기도 일기 였다. 박선생은 일기에 씌여진 대로, 퓨전 영매라고 불리워지는 압구정의 한 무당을 찾아나서게 되는데... 1989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박병로의 장편소설이다.
출판사 서평
1. 새로이 발견하는 현대의 민중, 이 땅의 사십대에게서 발견하는 생의 부조리
토속적, 민중적 언어에 바탕한 민중문학적 세계관으로 주목받았던 작가 박병로가 십여 년간의 침묵을 깨고 신작 《님이 오시는가》를 내놓았다. 80년대가 발견했던 민중과는 다른, 변화된 2000년대의 민중을 발견하느라 공백의 기간을 가졌노라고 책 말미의 에서 밝히고 있는 그는 이 책을 발판 삼아 그간 이무기처럼 묵혀두었던 이야깃거리들을 꾸준히 작품화할 생각이다. 작가 자신의 굴곡 많았던 삶 자체가 80년대가 발견했던 민중 그리고 변화된 오늘의 민중의 삶을 그...
1. 새로이 발견하는 현대의 민중, 이 땅의 사십대에게서 발견하는 생의 부조리
토속적, 민중적 언어에 바탕한 민중문학적 세계관으로 주목받았던 작가 박병로가 십여 년간의 침묵을 깨고 신작 《님이 오시는가》를 내놓았다. 80년대가 발견했던 민중과는 다른, 변화된 2000년대의 민중을 발견하느라 공백의 기간을 가졌노라고 책 말미의 에서 밝히고 있는 그는 이 책을 발판 삼아 그간 이무기처럼 묵혀두었던 이야깃거리들을 꾸준히 작품화할 생각이다. 작가 자신의 굴곡 많았던 삶 자체가 80년대가 발견했던 민중 그리고 변화된 오늘의 민중의 삶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가 새로이 발견해낸 민중의 대상은 바로 이 땅의 사십대이다. 기성세대의 일부이면서도 자기 몫을 보상받지도,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도 못하며 무미건조하게 현실을 감내해가는 오늘의 사십대에게서 작가는 생의 근원적 부조리함을 포착해낸다.
무속과 주술, 건강, 취미, 성적 욕망이라는 코드들을 통해 에누리 없이 파헤쳐지는 삶의 한 표본이 자살을 기도하는 한 남자의 백일기도록이라는 다소 이색적인 소재를 통해 부각되고 있다. 사십대는 어느 세대보다도 문학적이라는 작가의 말마따나, 생의 근원적 모순성과 삶과 죽음 사이의 위태로운 경계, 탐욕과 허무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사십대 남성의 인간 내면을 담담하면서도 활력 있는 필치로 담아낸 이 작품은 또 다른 민중문학, 또 다른 세태소설의 한 전형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2.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드라마
《님이 오시는가》는 죽음을 통고받고 또 그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십대 남자가 써내려간 백일기도록, 그리고 그 기도록의 존재를 소개해주는 소설가의 얘기를 액자소설 형식에 담았다.
혼자 사는 이혼남 김성만은 언젠가부터 몸의 이상을 느끼고 죽음을 예감한다. 압구정동의 퓨전 영매는 그가 1년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예언하고, 개운 비방으로 행운의 숫자 7을 늘 가까이 하라는 처방과 백일기도, 그리고 엔도르핀이 샘솟는 생활을 권유한다. 그는 죽음을 운명적·체념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개운 비방을 실행하고 취미 삼아 백일기도록을 적어가며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놀이공원에서 만나게 된 중성적 이미지의 영석이 엄마에게서 느끼는 성적 호감 등으로 삶의 활력소를 얻고, 묻지 마 관광 여행, 경마장에서의 운 시험 등을 통해 삶을 유쾌하게 이어가려 한다. 그렇지만 언젠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과 삶에 대한 근원적 허무가 마침내 그를 자살로 이끄는데 .
퓨전 영매의 처방을 믿으면서도 교묘한 수법으로 돈을 우려내는 영매의 행동에 조소를 날리는 김성만은 모순을 내장한 이 시대 평범한 사십대 남성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온 힘을 다해 사십대에 이르렀지만 돌아보니 그를 필요로 하고 그리워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채 홀로 남겨졌다. 아내는 떠났고 모아놓은 재산은 미미하며 속절없이 나이만 먹었고 그의 가능성을 알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그에게 날아온 소식은 그가 곧 죽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그 예언에 맞서 운명을 돌리기 위해 그는 지극정성으로 백일기도를 해나간다. 무엇보다도 백일기도를 하는 동안은 밝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삶을 유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영매의 충고가 김성만의 삶의 태도를 바꿔놓는다. 때때로 죽음을 전제로 한 그의 상념과 회상에는 마지막을 앞둔 존재의 절박함이 담겨 있지만 삶의 기쁨이 일상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보잘것없고 고만고만한 생활에서 충전되는 것임을 기록한 그의 백일기도록은 소설가 박 씨, 나아가 이 시대의 사십대에게 권하는 작가의 개운 비방록이나 다름없다. '님'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님'을 찾아 나설 것을 작가는 은밀히 권하고 있는 것이다.
3. 만남
\"동의하지 않을 분들이 많겠지만 사십대는 가능성을 하나씩 하나씩 포기하는 시기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사십대 이전에는 무엇이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데, 사십대가 되면 노력해도 이루지 못하는 분야가 있고 끝까지 해도 결국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발견해 나간다는 것이지요. 사십대는 운명론자일 수밖에 없고 운명론적으로 흘러가게 마련입니다.\"
작가 박병로는 에서 자신의 문학 세계의 형성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과거 민중문학을 하면서 추구했던 작품의 경향, 그리고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 작품 세계 형성에 도움이 된 작가들, 등단하게 된 계기 등은 박병로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곧 민중의 이야기임을 깨달아 사십대 남성을 주인공으로 택했다고 말한다.
작가가 밝히고 있듯 가능성을 하나씩 하나씩 포기해가는 사십대는 운명론자일 수밖에 없고 운명론적으로 흘러가게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많지만 한편 언제든 내 한 몸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 즉 세월에 떠밀려 치워질 상황이라면 괴롭더라도 순순히 사라져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사십대라는 것이다. 작가는, 기성세대의 일부이면서도 자기 몫을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고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이 세대에게 인생을 즐기는 법을 연구하라고 권한다. 그런 의미에서 백일기도는 일종의 유쾌한 취미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젊은이의 뜨거운 피가 흐르지도 않고 노년의 쓸쓸함도 없지만 문학적 소재가 되기에 충분할 만큼 정서적으로 변화무쌍한 사십대의 특성을 예민하게 포착했다.
저자 소개
작가 박병로
1957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광주 조선대부속고등학교)를 다니다 가출해 군에 입대하기까지 음식점 종업원, 공장 근로자 생활을 전전했다. 군 입대 직전 직장은 구로공단의 한 가방공장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늘 붉은 원고지 뭉치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문학도의 꿈을 키웠다. 군에서 처음으로 백철의 《문학개론》, 이철범의 《문학론》 등 입문서를 접하면서 대학 진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1980년 제대를 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1983년 스물일곱의 늦깎이로 경기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소설가 지망생 동인을 결성하여 활동했으며, 민중의 언어로 민중의 정서를 반영하는 문학 세계를 펼쳐보리라는 뜻을 세웠다.
1989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한 등단작 는 실직한 운전기사의 애환을 다룬 이야기로 민중적 언어를 구사한 문체의 특이함과 세계에 대한 균형 잡히고 따뜻한 시선 등이 미덕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리고 그 해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두 번째 중편소설 를 발표했다. 역시 문체와 주제가 데뷔 작품과 일맥상통했다. 권영민 교수는 문학평에서 가 육자배기조의 새로운 소설 문체를 실험하는 듯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 뒤 《문학사상》과 《민족과 문학》 등에 1, 2 등 몇 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1991년에는 구효서, 이순원, 박상우, 하창수, 채영주, 엄창석 등 당시 신예작가들의 뒤를 이어 《문예중앙》에 장편소설 《잔인한 신(神)》을 전재했다. 서초동 꽃마을 화재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으나 여러 면에서 실패한 첫 장편이 되고 말았다. 이 작품을 이듬 해 《숨어 있는 신》으로 제목을 바꿔 출간했다.
이후 십여 년 동안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첫 장편의 실패에 대한 반성과 무엇을 쓸 것인지 모색하는 시기였다. 생계 유지에 급급했던 것도 사실이었으므로 . 마침내 2003년 책세상 시리즈 장편소설 《님이 오시는가》를 출간했다.

목차
나에게로의 초대...16
비디오 도어폰...41
들림 혹은 흘림...68
내 일생의 행운...113
님이 오시는가...151
기도를 끝내며...198

(사십대는) 어느 세대보다 문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녀 교육을 위해서 파출부도 마다하지 않는 아내를 지켜봐야 할 만큼 자식을 위해 살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오랜 가부장적 관습에 젖어 윤리적, 도덕적 세태를 한심해하며 살아갑니다. 문학적으로 묘사하기 가장 적당한 존재들입니다. 사회 기성세대의 일부이면서도, 자기 몫을 사회로부터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고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지요. 사십대는 즐길 것이 없습니다. 즐거움이라고 하는 것이 거의 없지요. (...중략...) 김성만은 아마 그런 것들을 갈망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십대에게 즐기는 법을 연구하라고 권하고 싶었습니다. 즐기게 하자, 쉬게 하자, 놀게 하자, 그러면 우리나라 사십대의 사망률도 좀 낮아지고, 보이지 않는 문화적 자산이 좀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합니다.